길 잃은 꿈, 뜨거운 사랑, 빛나는 청춘의 이름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시골 청년 ‘라콤 루시앙’은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사이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살게 되어 고향집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지하운동을 주도하는 학교 선생님에게 지하단원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그것도 거절당한다. 루시앙은 우연히 한 호텔에서 독일의 경찰 일을 해주는 프랑스인들과 친해지는데 무심코 고향 학교 선생님을 밀고하게 되어 독일 경찰이 되어 버리고 점차로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게 된다.어느 날 경찰 동료가 ‘알베르 오른’이란 유태인 재단사가 숨어사는 곳에 루시앙을 데려가 양복을 맞춰주는데 루시앙은 오른의 딸 ‘프랑스’를 사랑하게 된다. 오른은 프랑스와의 문제로 루시앙을 만나러 호텔에 갔다가 유태인을 혐오하는 독일 경찰에게 잡혀 어디론가 보내진다. 한편 연합군의 반격으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고 레지스탕스의 공격으로 루시앙의 동료 경찰들은 몰살당한다. 독일군인과 함께 유태인 검거에 나선 루시앙은 독일군인을 살해하고 프랑스와 프랑스의 할머니를 데리고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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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말의 영리한 연출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라콤 루시앙>more
1944년, 사회는 어두워도 청춘은 눈부시다.
“<라콤 루시앙>은 루이 말의 작품 중 가장 야심차고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이 (<도깨비 불>이나 <마음의 속삭임> 만큼) 첫눈에 감동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영원히 수수께끼 같고 영원히 공감하기 힘든 루시앙의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Vincent Canby, The New York Times-
<라콤 루시앙>의 ‘루시앙’(피에르 블레즈)은 루이 말의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의 ‘쥴리엥’(모리스 로네), 그리고 <마음의 속삭임>(1971)의 ‘로랑’(브누와 페로)과 함께 루이 말의 3대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로 손꼽힌다. 특히 <마음의 속삭임>의 ‘로랑’은 15세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세련되게 그려 낸 영화라면 바로 이어 촬영된 <라콤 루시앙>(1974)은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시골을 배경으로 18세 청년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담아 낸 작품이라 더욱 흥미롭다. 시대, 장소,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의 속삭임>과 <라콤 루시앙>은 마치 소년이 남자가 되기까지의 심리적인 동선을 타고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관객의 시선을 낚아 채는 것은 투박하고 순수해 보이는 루시앙의 ‘잔인함’이다. 새를 총으로 죽이고 맨 손으로 닭의 목을 떨어뜨리는 루시앙의 야만적인 모습은 시종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루시앙이 이 때만은 미소를 머금고 있기에 더욱 인상 깊다. 루시앙은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아버지와 형을 본받아 지하 조직에 가입하려고 하지만 그 꿈이 좌절되자 결국 독일 경찰의 하수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그 곳에서 점차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지게 된다. 도덕 관념이 없고 심하게 단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루시앙의 행동은 영화 개봉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어지러운 시대 가운데 그 어떤 도덕 관념보다도 본능에 충실한 미성숙한 청년의 심리로 이해한다면 일견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한다.
그러다 재단사 ‘오른’의 딸인 ‘프랑스’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루시앙은 점차 그녀에게 빠져만 간다. 문제는 그녀가 유태인이었다는 점인데, 루시앙은 그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결국 그녀와 함께 독일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루시앙과 프랑스, 그리고 그녀의 할머니는 스페인 국경 근처로 도주하고 영화의 말미에 루시앙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삶을 위해 다시 새를 잡는다. 처음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이 때의 루시앙은 전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 같은 행동에 정반대의 의미를 담은 이 장면은 인간의 도덕관념과 옭고 그름의 잣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루이 말 감독의 연출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으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루시앙의 캐릭터가 빛을 발하는 영화 <라콤 루시앙>은 사회와 역사,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과 그들의 본능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루이 말이 대중에게 던지는 긴 물음표라고 할 수 있겠다.
1944년 프랑스의 정치 상황과 그 안에 살아 숨쉬는 드라마
1944년 프랑스의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라콤 루시앙>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드라마 가운데 영리하게 녹여 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44년 프랑스는 1940년 수립된 친독일정부인 비시정부 아래 의회 기능이 정지된 반(半)주권국가였다. 약 4년간 유지되어 오던 이 이상한 정부 형태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프랑스가 해방되자 나치의 패배와 함께 붕괴하였다. 루시앙은 독일의 패망이 예견되고 있던 시기에 독일 경찰의 하수인이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셈이었다. 이 때 만난 그의 연인의 이름이 프랑스라는 것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시앙과 오른, 그리고 프랑스가 함께 한 식탁에 있는 장면 이라던지 후에 루시앙과 프랑스가 함께 도주를 감행한 장면 등에서 구체적으로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프랑스는 독일의 패망과 함께 할 루시앙의 앞 날을 예견할 수 있지만 그를 버릴 수도 없고, 한 편으로는 그 외에 다른 선택이나 희망이 없는 심리 상태에서 그와 함께 동거를 한다. 이런 프랑스의 심리는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 상태에 있는 프랑스 정부에 대한 비유에 다름이 아니다. 영화 <라콤 루시앙>은 비극적인 역사 가운데 한 청년의 꿈과 사랑의 이야기를 정치적인 현실 가운데 사실적으로 그려낸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75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상 노미네이트
1975 BAFTA 작품상
1975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