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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지중해에서 취향을 생각하다

‘국가 영화상’ 후보 오른 모든 그리스영화 상영하는 테살로니키영화제

제49회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이 영화제는 동남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다. 올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동유럽과 남아메리카영화 프로그램들이었고, 영국의 테렌스 데이비스, 벨기에 다르덴 형제와 헝가리의 벨라 발라츠 스튜디오 회고전이 열렸다.

한국영화로는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노영석의 <낮술>과 김동주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상영됐다. ‘신인 혹은 두 번째 영화를 만든 감독을 위한 경쟁부문’에 초청된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이번 상영이 해외 첫 상영이었다. 두명의 김씨 성을 가진 감독들뿐만 아니라 올리버 스톤과 기타노 다케시도 게스토로 초대됐다. 기타노 다케시는 황금 알렉산더 명예상을 받았다.

300만유로(약 50억원)가 소요되는 이 영화제는 상영작 수, 게스트 초청과 자료 정리와 출판 면에서도 일등급 영화제다. 이 아름다운 지중해 도시의 호텔, 극장, 식당들은 몇분만 걸으면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상영장마다 일반 관객이 꽉 들어차기 때문에 종종 바닥에 앉아서 영화를 봐야 할 정도다. 학생들에게 아침과 오후 상영은 무료다.

그러나 영화제 프로그래밍에서는 상업영화보다 아트하우스영화쪽을 지향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지난해 이 영화제에서 내가 본 최고의 영화는 폴란드의 <트릭스>와 세르비아의 <트랩>이었다. <트릭스>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초대됐으며, <트랩>은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올해 본 최고의 영화 두편 또한 동유럽영화다. 루마니아의 <기묘한 피크닉>과 <부기>.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공개된 <기묘한 피크닉>은 자신들이 차에 치어죽인 줄 알았던 한 창녀와 갑작스럽게 호숫가로 소풍을 가게 된 한 커플에 대한 이야기다. <부기>는 중년의 위기에 처한 세 남자가 호텔 방에서 한 루마니아 창녀와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1992년까지 이 영화제는 그리스영화만 상영했다. 그러다 1994년 발칸지역 영화를 소개하면서 좀더 국제적이고 야심찬 영화제로 진화했다. 현 위원장 데스피나 무자키의 체제 아래 영화제는 2006년부터 한국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허우샤오시엔의 전편 회고전을 개최하고 현대 중국영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좀더 많은 아시아영화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제는 아직도 그리스영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23편의 장편영화를 열흘간 소개하는 데 더해 디지털영화,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들도 소개된다. 그리스 장편영화들은 영화제 주요 영화관들에서 상영되는 가장 중요한 상영작들로 프레스 스크리닝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영화들은 영화제의 심장이지만, 종종 영화제의 제한된 자원이 가장 많이 낭비되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 방콕, 부산영화제는 자국의 영화를 찾아내고 꼼꼼히 다 보여주는 데 인색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편 흥미롭게도 테살로니키영화제의 그리스영화 프로그램은 영화제가 직접 선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규제하에 (테살로니키영화제가 끝나고 바로 열리는) 그리스의 ‘국가 영화상’ 후보로 오른 모든 영화들을 영화제에서 상영해야만 한다.

영화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2008년이 그리스영화가 특별히 좋은 수확을 거둔 해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어쨌든 테살로니키는 게스트들이 스스로 좋은 영화를 결정할 기회를 줬다. 다음달에 열리는 자카르타국제영화제는 (예산상의 이유로) 통상적으로 그해 만들어진 모든 자국영화를 보여주던 규칙을 깨고, 이번에는 단지 열편의 자국영화만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이건 내가 계획했던 자카르타 여행을 취소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나는 현대 인도네시아영화를 내 마음대로 탐험하고 발견하기를 바란다. 누군가 뽑아놓은 몇편의 영화만 보도록 남의 취향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