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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여탕, 때는 안 밀어요
장영엽 2008-10-29

올해에도 남성출입금지 핑크영화제, 11월1~28일 전국순회 상영

“여탕에 간 기분이었다.” 지난 2007년 11월, 핑크영화제를 찾은 한 관객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소감을 전했다. 하긴 이제까지 여성이 다른 여성의 벗은 몸을 ‘당당하게’ 볼 공간이 여탕 말고 또 있었던가.

2007년 씨너스 이수가 단기 기획전으로 마련했던 ‘핑크영화제’는 한국 여성들이 멀티플렉스라는 열린 공간에서 핑크영화를 감상하며 성과 에로스를 마음놓고 즐기는 흔치 않은 자리였다. 관객과 여성계의 적극적인 지지로 제2회 핑크영화제를 준비한 씨너스는 영화제 기간을 7일에서 28일(11월1~28일 전국 순회상영)로 늘리고, 상영관도 전국 네개 지점(이수·오투·대전·이채)으로 확대하는 등 본격적인 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프로그램의 정비도 눈에 띈다. 핑크 사천왕, 핑크 최전선, 핑크 하드코어, 추모상영으로 구성된 핑크영화제의 네개 섹션은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핑크영화를 조명한다. 1년 전과 비교해 변하지 않은 건 개막일을 제외하고 ‘남성 관객을 받지 않는다’는 한 가지 원칙뿐인 듯하다.

영화제가 가장 자신있게 추천하는 프로그램은 ‘핑크 사천왕’이다. 1990년대 작가주의 핑크영화를 표방했던 네명의 감독, 제제 다카히사와 사토 히사야스, 사노 가즈히로와 사토 도시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이 섹션은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영화로서의 핑크영화를 소개한다. <가물치>와 <아나키인 재팬스케>는 에로티시즘 못지않게 사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제제 다카히사의 작품이다. <가물치>의 여주인공은 불륜 상대에게 버림받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며, <아나키인 재팬스케>의 여주인공은 섹스와 사랑에 상처받은 뒤 아이를 유괴한다. 이에 비하면 사토 도시키의 <단지부인: 옆집소리>는 조금 더 발랄하게 일본사회를 비판한다. 배우자의 불륜에 맞바람으로 대처하는 두 남녀를 통해 <단지부인…>은 결혼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핑크영화계의 오스카인 ‘P-1 그랑프리’의 초대 챔피언답게 코미디와 풍자를 절묘하게 조합하는 사토 도시키의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다이너마이트로 자살하려는 소년소녀의 모습을 그린 강간·폭력 핑크물의 대명사 사토 히사야스의 <생일>과 각본·연출·연기를 도맡아하기로 유명한 사노 가즈히로 감독의 <돈 렛 잇 브링 유 다운> 등이 준비되어 있다.

‘핑크 최전선’은 ‘핑크 사천왕’ 섹션과 대비되는 프로그램으로 핑크영화의 현재를 조명한다. 인기 최고의 AV(Adult Video) 스타 아오이 소라가 담임 선생을 유혹하는 여고생으로 출연하는 <아오이 소라의 츠무기>와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주부의 이야기를 담은 <오사카 러브 스토리>, 노인들의 성을 과감하게 다룬 <황혼: 몇살이 되어도 남자와 여자>와 핑크영화계의 아이돌 요시자와 아키호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디저트를 만드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등장하는 <유혹> 등 총 7편의 최신작이 상영된다. 핑크영화 배우 출신의 여감독 요시유카 유미의 <불륜중독>은 여성의 성적 판타지에 더욱 충실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핑크 하드코어’ 섹션 또한 핑크영화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섹스클럽에서 일하던 여자가 괴한의 총탄을 맞은 뒤 아리스토텔레스와 수전 손택을 논하는 천재로 변신하는 <하나이 사치코의 화려한 일생>은 전쟁다큐멘터리와 핑크영화의 조화가 인상적인 작품. <뉴욕타임스>가 ‘두말할 나위없는 걸작’이라 평가한 이 영화는 우디네영화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 7개 영화제에서 상영된 수작이다. 사토 오사무 감독의 <노예: 누가 뭐래도 좋은 나의 이야기>는 AV계의 스타급 배우 히라사와 리나코의 세미다큐멘터리로, 피학적인 성향의 마조히스트 여성이 사디스트인 사장으로부터 남자 동료와의 정사를 주문받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6월 타계한 핑크영화계의 거장 무카이 간 감독을 기리는 추모상영은 한편으론 1960년대의 1세대 핑크영화를 볼 좋은 기회다. “촬영·연출·정사 연기의 3박자를 고루 충족시켰다”는 평을 듣는 무카이 감독의 <블루 필름의 여자>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에게 농락당하는 여자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의 일본사회를 비판한다. 체제와 사회에 저항하는 도구이자 무기였던 1세대 핑크영화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편 영화제쪽은 지난해에 이어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했다. 변영주 감독과 핑크영화배우 출신 감독 요시유카 유미가 함께하는 핑크토크, 네명의 한국 아티스트가 그린 한국·인도·중국·일본의 춘화를 소개하는 <4인 춘화: 사인사색전>이 그것. 더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cafe.naver.com/pinkfilm)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