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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데루유키] 배우가 되기 전에 진짜 히키코모리였다

<도쿄!>의 가가와 데루유키

10년차 히키코모리(집안에만 틀어박힌 은둔자)의 일상은 평화롭다. 텔레비전은 보지 않고 잡지를 읽는다. 식사는 테이블에서 하지 않고 서서 먹는다. 집 안은 남자 혼자 산다고 말하면 안 믿을 정도로 깨끗하게 잘 정리정돈되어 있다. 필요한 물건은 전화 한통이면 다 배달된다. 게다가 토요일마다 시켜 먹는 피자는 삶의 또 다른 낙. 그런 그 앞에 여자 피자배달원(아오이 유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히키코모리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11년 만에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주인공 히키코모리를 연기한 배우는 가가와 데루유키. 그는 최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유레루> <키사라기> <20세기 소년>에서 개성 넘치는 역할을 맡아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평소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좋아했다는 그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오늘의 사건사고>)의 소개로 봉준호 감독을 처음 만나게 됐고, 감독의 신작 <도쿄!>에 참여하게 된 것. 서민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가 한국의 봉준호 감독을 만나 어떤 연기를 선보일까.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가가와 데루유키를 만났다.

-(몸으로 보여주며) 당신의 전작들을 보면 ‘종종걸음’을 하는 장면이 많더라. 습관인가. =(웃음) 전부 다 연기다. 처음 캐릭터를 맡을 때 그 인물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사람은 이렇게 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행동을 한 건데 비슷하다니 신기하다.

-<도쿄!> 시나리오를 받고 캐릭터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달리는 모습’을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초반에는 정적이지만 후반에는 역동적으로 변한다. 그때, 달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영화 속 히키코모리가 1~2년차가 아닌 10년차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10년차 히키코모리는 방도 깨끗하고, 오히려 더 일상적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인물이 히키코모리로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현장에서 감독과 이견이 생길 경우 어떤 식으로 조율했나.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 가장 많이 부딪혔나. =일단 나는 레벨이 높은 감독과 일을 할 때는 감독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 봉준호 감독과 작업할 때는 그로부터 연기 레슨을 받는 기분이었다. 가장 의견이 달랐던 부분은 히키코모리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인물의 행동이 순간마다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봉준호 감독은 그냥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원했다.

-영화 속 당신의 연기는 감정의 폭이 작다. 대신 근육, 눈 등 신체의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 표현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는 배우가 되기 전에 히키코모리였다. 물론 지금도 히키코모리처럼 산다. 정말 내성적이다. 그나마 배우가 되면서 몸으로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법들을 익히게 된 것이다. 40년 동안 지금까지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던 경험이 이번 영화의 캐릭터에 축약된 것 같다.

-이번 영화를 비롯한 전작의 당신의 모습을 보면 상대배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 =일본의 국민성인데, 오히려 쳐다보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감독이 “상대배우를 똑바로 쳐다봐! 시선이 맞지 않잖아”라고 하지 않나. 한국에서는 시선처리 때문에 NG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감독들도 눈을 쳐다보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남자배우들과 작업을 하다가 청춘스타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그녀와 함께 일을 해보니 어떻던가. ‘인간 가가와 데루유키’의 답변을 듣고 싶다. =(웃음) 감사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고>(2001), <오늘의 사건사고>(2003))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일본영화의 흐름상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가와 데루유키와 아오이 유우의 조합이 이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일본 감독들은 아직 ‘나와 아오이 유우’식의 조합을 해내지 못했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이런 조합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개인적으로 전작을 통틀어 <유레루>의 초반부 방문을 사이에 두고 오다기리 조와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때 카메라는 빨래를 개는 당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당신은 대사만으로 두 사람의 심리, 인물의 캐릭터 등 모든 정보를 한번에 보여주더라. =당시 감독이 뒷모습으로만 보여주자고 했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장면을 찍기 전에 오다기리 조와 단둘이서 배우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뭐가 대단한가. 그냥 어른이 애들 놀이를 하는 거잖아. 그런데도 배우들은 잘난 척하고 다닌다. 이게 다 거짓이다. 우리도 거짓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대화를 그와 공유하면서 서로 믿음을 쌓았던 것이 그 장면이 나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20세기 소년> 3부를 촬영할 계획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촬영이 끝난 작품이 있다. <쓰루기다케>라는 제목으로 101년 전 ‘칼’(쓰루기) 모양의 산에 최초로 올랐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와 아사노 다다노부가 주연을 맡았고, 다카쿠라 겐 감독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기무라 다이사쿠가 68살의 뒤늦은 나이에 감독으로 입봉한다. 2009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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