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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철없는 청춘, 첫사랑의 열병을 앓다

<모던보이>의 해명, 박해일

박해일이 <모던보이>의 해명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연애의 목적>의 유림을 떠올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양락 목소리를 내는”, 그리고 감독의 말로는 “파렴치한 쓰레기”인 유림과 한없이 가벼운 한량 해명이 그럴싸하게 어울려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해명은 오히려 순진무구한 사랑의 열정을 불태우던 <소년, 천국에 가다>의 네모와 가까운 남자다. 네모는 사랑하는 여인의 어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화염으로 휩싸인 극장으로 뛰어들고, 자신은 하루에 1년씩 늙어가면서도 무모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부숴가며 연인을 찾아 헤매고 그녀의 유일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해명은 분명 네모와 같은 온도의 피를 가진 남자다. 사실 두 남자 모두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차적인 설명은 필요없겠지만. “말하자면 해명은 철이 없는 거다. 방정맞게 여러 여자를 훑고 다니다가 드디어 심장에 꽂힌 거지. 그때부터 현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명은 분명 첫사랑을 겪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인생을 걸지 않았을까? (웃음)”

<모던보이>의 현장에서는 정지우 감독이 박해일을 편애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감독으로서는 <해피엔드>와 <사랑니>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남성의 시각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 영화이기 때문일까 싶었다. 박해일은 “워낙 잘 알아서 감독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 김혜수와 달리 자신은 “가지도 치고, 여러 가지를 미리 잡아줘야 했기 때문에 생긴 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편애를 한 건 박해일이었다. 영화보다는 감독이었다. 정지우 감독이 <사랑니> 이후 준비하던 <두사람이다>를 함께하기로 했던 박해일은 당시 정지우 감독이 보여준 기운을 기억했다. 그와 달리 해명은 낯선 남자였다. 주위 사람들이 “처음부터 박해일을 놓고 만든 캐릭터 같다”고 말할 때도 의심스러웠다. 그의 아내가 “너 찌질이 캐릭터 잘하잖아”라고 이야기할 때도 웃어넘겼다. 그에게 해명은 실제로 만났다고 해도 “그리 친해지지 않았을 사람”이다. “어쩌다 술자리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정을 줄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 같으면 연인이 내 돈을 훔쳐서 달아나면 일단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지 않았을까 싶다. (웃음)” 그럼에도 박해일은 해명의 철없는 선택에서 진심을 읽었다. “그는 풍족하게 사는 남자다. 가진 것이 많은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에 깊게 빠질 수 있었을 거다. 만약 피곤하게 사는 인생이었다면 무엇에 매력을 느끼든 자기 처지부터 생각했겠지.” 그는 해명의 선택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점점 궁금해졌다. “친한 친구가 모든 걸 버리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올인하기로 했다면 뜯어말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에게 상처가 됐든 기쁨이 됐든 변화의 국면마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었을 거다.” 낯선 남자에게 느낀 연민은 그에게 접신의 기회가 됐다.

미루어 짐작했던 것 하나. 아마도 박해일은 해명을 연기하는 동안 신이 났을 것 같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좇아 마음껏 난동을 부리는 남자이니까. 게다가 영화 밖의 남자들에게 사랑에 올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자신의 사랑을 낭만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욕망은 진짜 낭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은 낭만이었다고 애써 설명하게 만드는 법이다. 하지만 해명은 자신에게서 열정적인 사랑을 품은 멋진 남자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건 오로지 난실뿐이다. “일정 부분은 인정한다. 더 능동적이어야 했고, 맹목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경쾌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해명은 어디까지나 한 여자를 향한 매혹 때문에 매 순간 부딪힌다. 감정상 버거울 때도 많았다.” 촬영이 끝난 지 이제 열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박해일은 “<모던보이>를 통해 이제 철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연인 박해일은 사실 바닥을 헤엄치는 시간들이 많다. (웃음) 그래서 이제는 끈기있게 버틸 수 있는 자생력을 갖고 싶어졌다. 하지만 워낙 그런 의지가 부족해서….” 혹시 해명의 소란스러운 성장사를 통해 경험한 것일까. 아니면 해명의 지독한 사랑이 부러웠던 걸까. 그의 다음 작품이 가져올 변화의 국면에서 다시 듣고,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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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정주연(D12)·헤어&메이크업 라 뷰티 코아(청담점)·의상협찬 Null, 타임 옴므, 송지오 옴므, G.I.L homme, 이신우 옴므, 미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