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와일러를 <벤허>(1959)의 감독으로만 기억한다면, 이는 그의 아주 일부만 본 것이다. <로마의 휴일>(1953), <수집가>(1965), <화니걸>(1968) 등 서로 너무 다른 작품들을 함께 떠올리면 와일러라는 감독의 정체성은 혼란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가주의 비평이 큰 영향을 미친 이후로는 영화의 ‘신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를 웨스턴의 존 포드나 코미디의 프랭크 카프라 같은 거장들과 동급으로 비교하는 영화인들은 드물다. 대신 마이클 커티즈처럼 할리우드라는 공장에서 날랜 솜씨를 자랑하던 ‘장인’ 정도로 대접할 때가 많다. 와일러는 <벤허>의 성공으로 부귀영화라는 세속의 행복을 다 맛보았지만, 대신 ‘작가’들이 누리는 신뢰까진 얻진 못했다.
발군의 멜로드라마 작가, 윌리엄 와일러
그러나 전쟁 이전에 그가 만든 멜로드라마들을 본다면 아마 이런 평가가 아주 편협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발군의 멜로드라마 작가였다. 그 정점이 바로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이다. 감독 윌리엄 와일러, 프로듀서 새뮤얼 골드윈, 카메라 감독 그레그 톨랜드로 구성된 ‘3인조’가 빚어낸 걸작이다. 와일러는 1936년 <세 여자들>(These Three)을 만들며, 이들과 의기투합했고, 세 사람은 10년 이상 함께 일하며 감정표현을 세심하게 그려내는 드라마로 명성을 쌓았다.
특히 윌리엄 와일러와 그레그 톨랜드 사이의 협업은 할리우드의 리얼리즘 미학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일 역할을 했다. 그레그 톨랜드는 1941년 한해에 와일러와 <작은 여우들>을, 그리고 오슨 웰스와 <시민 케인>을 촬영했는데, 두 작품에 나타난 딥포커스와 롱테이크 화면은 지금도 리얼리즘 관련 텍스트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현실감을 확보하기 위한 앙드레 바쟁의 ‘금지된 몽타주’(한 화면에 두개의 다른 사건이 동시에 진행될 때는 편집을 하지 말 것)와 심도초점의 전범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웰스와 작업할 때 톨랜드는 바로크적 어둠의 심리를, 반면 와일러와 작업할 때는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를 표현하는 데 특별한 솜씨를 보였다. 그런 쓸쓸함이 극점에 이른 작품도 <우리 생애 최고의 해>이다. 영화는 2차대전이 끝난 뒤의 세 병사의 귀향을 그린다. 세 남자는 계급, 세대, 사회적 배경 등으로 극명하게 대조돼 있다. 육군 하사관인 알(프레드릭 마치)은 중년 남자로 전쟁 전에는 은행원이었다. 고향의 고급 아파트에는 아내와 처녀가 된 딸, 그리고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공군 조종사인 프레드(다나 앤드루스)는 대형마트에서 음료수를 팔던 하층민 청년이었다. 결혼한 지 한달 만에 전선에 나왔고, 고향에는 여전히 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운 부모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해군 병사 호머(해럴드 러셀)는 전쟁에서 두손을 잃었다. 미식축구를 하던 그에겐 그를 기다리는 중산층 가족과 연인이 있지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두렵다. 이들 참전 군인들이 어떻게 시민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지에 영화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참전 군인들의 보통 사회 적응기
호머 역으로 나온 해럴드 러셀은 배우가 아니라 진짜로 전쟁 때문에 손을 잃은 군인이다. 상처만 남은 전후 미국 남성의 극적인 상징인 그는 가족과 애인이 자기에게 친절하면 친절할수록 더욱더 바깥으로 겉돈다. 팔을 잃은 축구선수, 미래에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그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말없이 의수를 벗고, 잠자리에 들기 전 혼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깊은 체념으로 보인다. 호머의 쓸쓸함은 몽타주를 줄이고, 그냥 조금 거리를 둔 채 그를 따라가는 ‘단순한’ 카메라에 의해 더욱 간명하게 표현돼 있다.
프레드는 전장에선 공군대위로 제법 대접을 받았는지 몰라도 다시 돌아온 사회에선 배경없는 하층민 청년일 뿐이다. 다시는 마트에서 음료수 파는 일은 하지 않겠다던 그가 그나마 얻은 직업은 여전히 그런 자리뿐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려던 그가 비행장에서 잠시 시간이 나, 활주로를 따라 산책을 가니 자기처럼 용도폐기된 전투용 비행기들이 끝없이 버려져 있다.
프레드와 은행원 알의 딸인 페기(테레사 라이트) 사이의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잇는 끈의 역할을 한다. 딸과의 만남을 중지해달라는 알의 부탁을 듣고, 그가 있는 데서 프레드가 전화를 거는 장면은 딥포커스의 전범으로 자주 소개된다. 알은 화면의 앞에서 다른 남자들과 즐거운 척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화면 뒤에선 프레드가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걸고 있다. 와일러는 두 남자를 동시에 보여주어, 관객이 감독의 의도에 따라 조종되는 관습을 지양하고자 했다. 어느 남자와 동일시를 하든, 혹은 집중하든 산만해지든 그것은 관객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발표하며 창의력의 최고치를 보이던 와일러는 이 작품을 정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동료 그레그 톨랜드가 1948년 44살의 젊은 나이로 죽은 것도 큰 이유가 됐을 것이다. 어쨌든 이후의 와일러는 ‘작가’ 또는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는 연출자로 변신했다.
다음에는 멜로드라마의 ‘작가’로 꼽히는 더글러스 서크의 <바람에 쓴 편지>(Written on the Wind, 1956)를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