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닿았을 때만 해도 장선우 감독이 얼마나 외로워하고 있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인 이혜영 감독과 함께 나타난 장선우 감독의 얼굴에는 고요한 평화와 조용한 행복이 감돌고 있었다. 몽골의 마두금 전설을 소재로 만들려 했던 <천개의 고원>이 무산된 2005년, 아내와 함께 홀연히 제주도로 떠난 그는 3년의 세월 동안 조용한 포구가 깃들어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에 살면서 그동안의 비난과 조롱, 질투와 시기, 고통과 분열증을 다 벗어던지고 절대적인 평온을 찾은 듯 보였다. “별채로도 쓰고, 찾아오는 손님도 받고, 유흥비도 버는 차원”에서 카페를 만드는 공사를 진행하느라, 인근 펜션 사장님이 물가에서 잡은 문어를 먹으러 가느라, 5일장이 열린 서귀포에 가서 장 보느라,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와 뭔가 상담을 하느라, 그리고 또 여러 가지의 소소한 일을 하느라 즐거움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선우 감독을 제주도에서 만났다. 그의 답변 안에는 함께 자리했던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요, 지고지순한 사랑인 아내 이혜영 감독의 이야기 또한 녹아들어 있음을 밝힌다.
-충무로영화제에서 장선우전을 엽니다. 특별한 감회가 있으신가요. =음, 특별한 건 없는데. 여기로 기준영이라고, 예전 프랑크푸르트 한국도서전 할 때 한국영화를 틀었던 프로그래머가 왔었지. 그런 행사가 있다고. 사실은 김홍준 전화 받고 하게 된 거지. 예전 부천영화제 때부터 ‘삭제된 영화 모아서 한번 틀까요’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충무로영화제 와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랬지 뭐.
-국내에서 전작전은 처음 아닌가요. =처음이지. 페사로영화제와 똑같더구먼. 13편 다 하는 것 보니까.
-그럼 이번에 상영되는 건 모두 무삭제본인가요. =내가 원했던 건 그거 하나야. 해외판을 다 구해서 틀라고. 그런데 결국 <나쁜 영화>는 못 찾았다는데. <나쁜 영화>는 페사로에서도 못 찾아서 못 틀었어. 하나 남은 해외판 필름이 돌아다니다가 증발했어. 그냥 해외에서 해외로 돌다가 어느 시점에 없어졌어. 아쉽지만 그게 <나쁜 영화>의 팔자니까 어떡해.
-<나쁜 영화>는 편집을 완성 못하셨잖아요. =내가 편집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열이 들어왔거든. 어차피 검열에서 잘릴 텐데 다시 편집하지, 이러고 있는데 왕창 잘렸어. 에이 편집이고 뭐고 싫더라고. 그런데 일본쪽에서 자기들이 상영하기 위해 편집했는데 잘했어. 이건 내가 바라던 편집이다 했어. (웃음)
-그외에는 복원되는 영화가 없나요. =<서울예수>가 <서울황제>라는 이름으로 비디오로 나왔었는데 <서울예수>로 해서 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 그렇게 되려는지….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검열당한 게 괜찮아. 그 당시에는 그래도 가릴 것 가려가면서 찍었는데, 묘사가 더티한 게 많아서. (웃음) 이거 너무 더럽지 않냐 해서 잘린 게 몇 군데 되지. 그래도 그때 김동호 위원장님이 공연윤리위원장이라서 그나마 상당히 봐줬거든.
-아마도 영화제쪽은 감독님의 신작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회고전이라는 이름을 안 붙였을 텐데, 그래도 사실상 회고전 같습니다. 혹시 이제 내가 노땅 취급 받는구나, 이런 느낌은 안 드시나요. =음, 내가 영화를 멀리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회고전 느낌이 들던데. 딴 데서 할 때는 그런 생각 든 적이 전혀 없었는데. 아 이제 나도 물먹어야 하는구나 했지. (웃음) 그렇다고 서글프거나 하진 않아. 어차피 내 스스로 멀리한 건데. 그나마 모아 틀어놓는다니까… 고맙지 뭐. (웃음)
-제주도에 오신 지 벌써 3년이 되셨네요. =어, 7월19일이 딱 3년째 되는 날이었어. 여기는 시간이 빨리 가는 게 문제야. 엄청 시간이 빨라.
-바쁜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시간이 왜 빨리 갈까요. =아니 너무 바빠. (웃음) 시간이 두배 이상 빠른 것 같아. 여기선 내 의도대로 살지 못해.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계속 만남을 가져야 하거든. 계획하지 않았던 만남들이 많고. 그나마 계획했던 것도 날씨에 의해서 많이 바뀌기도 하고. 하여튼 의도대로 되지 않아. 뭐 원래 의도를 갖고 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조용히 알차게 자기를 돌아보고 공부도 좀 하면서 은둔의 재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전혀 못해. (웃음)
-마을 주민들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한다고 그러시던데 그것 때문인가요. =마을 사람들도 포함해서 주변지역 사람들의 왕래가 엄청 많아졌어. 누가 누구를 데려오고, 또 그 사람이 누굴 데려오고. 그래서 카페를 열 생각을 한 거야. 집에서는 손님 치르기가 너무 힘들고, 차라리 내놓고 돈 받으면 좀 덜 오지 않을까. 어차피 조용히 살기는 글렀으니까 차라리 내놓고 살자는 거지. 뭐 손님이 와도 고맙고, 안 와도 고맙고. (웃음)
-만나는 분들의 층위도 다양하다고 하시던데. =지역의 훌륭한 분들도 많이 오셔. 나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여기 내려와 사는 사람이 상당히 많거든. 그분들과도 어울리고. 듣고 배울 것도 많고. 그러다 보니 교우가 굉장히 넓어. 내가 20여년 동안 영화하면서 만난 교우보다 여기서 3년 동안 만난 교우가 훨씬 다양하고 넓어. (웃음) 잡초 뽑으러 밭에 나갔다가도 호미 내려놓고 사람들 만나서 놀고 한다니까.
-특별한 수입이 없는데 뭐 먹고사세요. =먹는 것은 진짜 걱정이 없어. 마을 한 바퀴 돌면 사람들이 이거 있는데 가져가겠냐고 한다고. 수확 다 끝낸 뒤에 밭에 떨어진 것 주워서만도 먹고살 수 있어. 바당(바다)에 나가도 먹을 게 많고. 그런데 술은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웃음) 쌀도 자급자족해야 하고. 우리 집이 화목보일러를 쓰는데 마을 분들이 땔감까지 가져다줘. 다른 집들은 기름보일러를 쓰는데 틀기 아까우니까 아주 춥게 살지. 그래서 우리 집만 오면 따뜻하니까 할머니들이 오셔서 안 가시고 죽치고 앉아계셔. 그러면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웃음)
-그래도 이래저래 현금이 많이 나가지 않나요. =많이 나가지. 재산이 없으니까 세금 내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나가지. 인터넷 사용료니 공과금이니. 자동차도 써야 하고. 여기 내려올 때 통장에 돈이 약간 있었는데 집 수리하고 나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 어떻게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나도 미스터리야. (웃음)
-그럼 카페는 무슨 돈으로 수리하세요. =몇천만원 드는데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준 거야. 내 수입이라는 건 일년에 한두번 끌려가서 특강한 거. 그리고 시나리오 한번 고쳐준 거. 뭐 그런 수입 정도 조금 있었어. 아마 이 사람(이혜영 감독을 가리키며)이 자기 집 전세금 빼고, 빚 받을 것 받고. 동생 등치고 뭐 이런 것들 아닌가. (웃음)
-목공은 왜 배우시는 건가요. =카페 공사를 하다보니까 모르는 데서 발생하는 시행착오가 많더라고. 그러다가 목공예교실을 다니던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필 받은 거야. 선생님도 아주 마음에 들어. 또 못을 하나도 안 박고 나무를 짜서 목공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지금은 제주도에서 나는 삼나무와 제주도서 나는 흙 갖다가 다시 공사하는 거야.
-직접 만드신 작품도 있나요. =카페에 놓인 테이블이 내가 만든 거야. 그리고 그 위에 놓여 있는 도마처럼 보이는 찻상이 실습작품 1호. 열심히 이 길을 가다보면 난 목수로서 거듭날지도 몰라. 목수 장가. (웃음)
-영화평론가 하시다가 절필한 이정하씨가 생각나네요. 목수를 하신다던데. =이정하가 부러웠거든. 이젠 대목수가 됐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소목으로 대성해야겠다, 이러고 있지.
-왜 제주도를 택하셨나요. =워낙 제주도를 좋아하니까. 산 있고 바다 있고 따뜻하고. 좋은 섬은 많지. 하와이, 발리, 피피, 몰디브 뭐뭐. 그런데 단조로워. 적응도 잘 안 되고. 다 3개월용이야. 여기는 매일 기후가 다르고 하늘이 다르고 물이 달라. 그리고 여기는 내가 꿈꿔온 남태평양과 바이칼호를 다 충족시켜줘. 오름에 올라가면 초원의 느낌도 있다고.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내겐 행복의 이미지가 2개 있다고 얘기했는데, 그중 하나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마지막 장면이야. 예쁜 여자와 야자수있는 바닷가에서 살잖아. 통장에 돈은 계속 들어오고. 또 하나는 선방 같은 데서 졸고 있는 거거든. 졸고 있는 스님들 보면 행복해 보였다고. 그런데 여기선 그 2개를 다 누리거든. 요즘엔 바빠서 못 졸지만 그전엔 계속 졸았거든. 그러니까 난 더이상 바랄 게 없는 거야.
-대신 통장에 돈이 안 들어오잖아요. =그게 문제야! (웃음) 그러니까 카페를….
-제주에서도 이 마을을 고르신 것은. =모든 땅은 자기 인연이 있어야 돼. 이 사람이 인터넷으로 고르다가 이쪽 면이 좋겠다 싶었는데, 친절한 면사무소 직원이 소개해줬어. 산 위에서 이 마을을 보니까 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편안하고 예뻤어. 또 마침 빈집이 있었는데, 마당에 팽나무며 납작한 모양새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거야.
-3년 살아보셨으니 제주도 사는 참맛을 느끼시겠어요. =아는 사람이 강화도에 집 하나 얻어 고치고 살면서 잘난 척을 하는데 하루하루가 암환자처럼 기적 같다는 거야. 암환자는 순간순간을 최대한 100%로 사는 거잖아. 나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이 기적 같은 삶이 계속되는구나. 삶이 거의 기적이구나. 새로운 게 계속 춤추듯이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고 먹을거리도 땅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막 나오니까 그것을 즐길 줄만 안다면 기적 같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날씨도 한번 같을 때가 없어. 어떻게 보면 황홀한 삶이야.
-심심하고 답답할 때는 전혀 없으신가요. =천일 넘게 있는 동안 심심한 날이 하루 이틀이나 있었을까. 그런데 그 심심한 날이 너무 좋은 거야. 심심한 게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웃음)
-이렇게 내려와 계신 건 혹시 스스로에게 내린 유배인가요. 아니면 속세 탈출이나 상처 치유 차원? 그것도 아니면 사랑의 도피? =여기 온 건 거의 운명이야. 사람은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살아가는 것뿐이거든. 나는 여기 오게 돼 있었던 거야. 그래도 과정을 굳이 따지면,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천개의 고원>이야. 몽골에서 바로 이리로 내려왔으니까. 오래전부터 별러왔으니까 운명적이라는 거고. 이 사람이 같이 있지 않았으면 못 내려왔을 테니까 사랑의 도피도 맞는 얘기고. 상처 치유? 그건 아닐 것 같아. 그건 절에 가도 되고 수행을 해도 되고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에. 해도 되고. 속세 탈출? 여기가 엄청난 속세인데. 그런데 유배라는 느낌은 좀…. 여긴 유배지니까. 너무 죄가 많아서 스스로 난 유배당해야 돼, 유폐돼야 해, 그런 느낌은 약간 있지. 자기를 가두자는 생각은 좀 있었지.
-제주도 내려오시느라 여쭤보지 못한 건데, <천개의 고원>은 왜 엎어지게 됐나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끝나고 몽골에 가서 말 타고 놀다가 필 받아서 여기서 영화 하나 하자고 선동을 했지. 그래서 재미있는 소재 좀 얘기해달라고 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두금에 관한 전설이 딱 당기더라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깊이 들어가다보니 무대가 점점 커지더라고. 그때가 흉노족이 번성할 때거든. 만리장성도 흉노 때문에 생긴 거잖아. 한무제가 포로로 붙잡히기도 했고.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예산보다 늘어나는 거지. 처음에 200만달러로 시작했던 게 나중에는 400만달러는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데 해외자본은 200만달러 정도밖에 안 들어왔고 국내에서는 투자를 하나도 못 받아온 거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후유증이겠지. 그런데 PD는 돈 없이는 슛을 못 간다는 입장이라 시나리오를 200만달러에 맞춰달라더라고. 그래서 난 못한다, 촬영 앞두고 와서 그런 말 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지. 헌팅이며 미술이며, 몽골 아이들까지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거든. 그래서 엎어야 한다고 했지.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어. 애들이 얼마나 우는지. ‘애 울리고 잘된 사람 없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는데 내가 또 무슨 죄를 짓나 싶더라고. 그래서 그때 영화 다시는 안 한다고 결심한 거야.
-다시는 영화를 안 만든다는 마음은 여전히 굳은 건가요. =그럼. 그래서 유배했잖아. 유배.
-시나리오 작업도 안 하세요. =시나리오는 임종재 감독이 준비하는 <순이삼촌> 각색을 같이 한 적이 있지. 여기 살면 4·3을 외면하기는 어려워. 좋은 기회다 싶어서 공부할 겸 해서 한번 했어.
-감독님 영화는요. =난 영화 안 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어디선가 시나리오 쓰신다는 이야기가 들리던걸요. =아아. 우리 방에서 졸다보니 내가 붓다를 정말 제대로 알지 못했구나 하는 계기가 생겼어. 여기 불교인재개발원이라는 모임에서 엠티를 왔는데, 초기불전에 관련된 분을 만난 거야. 그분과 교우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됐지.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붓다, 내가 알고 있는 불교가 문제점이 많은 거야. 잘못돼 있거나 빈약하거나 허황하거나. 공부를 1년 넘게 하다보니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처님을 사랑했던 제자 아난다 입장에서. 아난다가 얼마나 부처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는지. 그 입장에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완성 못했어. 틈틈이 하고 있어. 영화는 또 언제 될지 모르는 거고. 그래서 웬만큼 정리됐다 싶으면 책으로 묶어서 낼까도 해. 지금까지 미완으로 만들었던 <바리공주> <천개의 고원> <순이삼촌>, 그리고 이것까지. 지금 가제가 <타타가타 가버린 자>야. ‘타타가타’가 인도말로 여래란 뜻이거든.
-이게 아니라면 그 약속을 뒤집을 수 없단 말일 수도 있나요. =모르지. 그렇게 심각하게 사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꼭 자기를 구속할 이유도 없으니까. 앞일은 사실 모르는 거고. 내가 제주도에 10년쯤 살면 제주도에 대해서 영화가 아니더라도 서사를 그리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성불하신 것 같나요. =길은 찾았으니 성불할 날이 멀지 않았네.
-카페를 하면 성불하긴 어려워질지도 모르는데. =어려워. 죽어라고 불만 때고 있으면 성불할지 모르겠다. (웃음)
-카페를 하셔도 걱정인 게 돈이나 제대고 받으실까 의심스럽네요. =내가 받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받는 거라니까. 이 사람은 사장, 난 삐끼인데. 우리 집 주방에 가면 ‘부다 바’라고 써놓았거든. 거기는 손님이 나 혼자지만, 이 사람이 주는 저녁 메뉴에 따라서 술을 골라서 마셔. 3년 동안 한 사람 상대로 장사를 했는데, 이왕이면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거지.
-간판에 물고기 하나 덩그러니 그러져 있던데 공식 이름이 뭔가요. =거기 자세히 보면 ‘…’이 있어. ‘…물고기 카페’지. 원래는 ‘올래를 헤엄치는 물고기 카페’였는데. 올래가 제주도 말로 집으로 가는 돌담길, 골목길을 의미하거든. 그런데 길어서 그냥 ‘…’을 찍었어. 이 물고기를 그려주신 분이 변시지 선생님이라고 제주도 출신 화가신데, 아주 좋아. 내가 사람들에게 바닷가에 가서 횟집한다고 그랬었는데, 성불해야 할 사람이 회 칼질을 못하겠고 해서 그림이나 하나 그려놓자 한 거지.
-감독님은 항상 세상 이슈의 중심에서 도발해왔잖아요. 지금은 도발하고 싶지 않으세요. =도발? 이젠 넘어섰지. 아까 말했던 대로 이제 내가 머리 숙일 수 있는 진짜 스승을 만났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다녔는데 이 질문의 끝을 보여줬다는 거야. ‘부다 바’ 차리고 3년을 술 먹다보니 부다를 만난 거야. 내가 아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아난다구나. 붓다를 사랑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아난다도 80살이 돼서 깨닫거든. 나도 희망이 있구나. 이 생에서 끝날 수도 있겠구나. 길을 봤으니까. 스승을 만났으니까. 행복. 이 행복. (웃음)
-이전에 비해 한 단계 나아가신 것 같긴 하네요. =나 스스로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만은, 하여튼 그렇게 암중모색하는 느낌은 아니야. 막 여기 찔러보고 저기 찔러보고 헤매고 방황하는 모습이 아니라 어느 길을 향해 차근차근. 조금 늦췄다가도 또 그리로 가고…. 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느낌은 있어. 전에는 좌충우돌 우왕좌왕했는데 지금은 길을 보면서 가. 그것만 해도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그래서 여기 생활이 편안할 수 있는 거야. 없어도 초조하지 않고.
-그동안 <서울예수>부터 <성소>까지 11편을 연출하셨는데 돌이켜볼 때 가장 애정이 가는 영화는 뭔가요. =내 생각에 가장 팔자 센 영화가 <나쁜 영화>야. 세상에 그런 영화는 없거든. 아무것도 없다는 영화는. 3개월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해봤더니 리듬이 있어. 그리고 나는 울림도 있었어. 내가 ‘열린 영화’라는 이야기를 들고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걸 들고 실험해본 거잖아. 도덕적인 문제로 시비를 많이 겪었지만 여전히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또 공식적으로는 최근작이 나한테는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얘기해왔는데 그건 지금도 유효한 것 같아. 그런 점에서는 만들지 못한 <천개의 고원>이 제일 좋은 거고. 앞으로 붓다에 관한 영화를 한다면 그게 제일 좋은 거야.
-가장 아쉬운 작품은 뭔가요. =대표적인 게 <화엄경>이야. 그 당시엔 뭐 그게 대단한 것인 양 우쭐거리고 했는데 지날수록 직접화법으로 표현한 것들은 가치가 없는 거야. 공부를 해보니까 그런 건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윽… 창피해. 공부 열심히 하자, 가 되는 거지.
-이번 행사가 감독님의 영화 인생의 1부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 1부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동안 놀만큼 놀았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그래서 회고전이라는 게 좀 민망하지. 한 것도 없는데 무슨 회고전이야. 쪽팔리지. 쪽팔린데도 가는 건 토니 레인즈 때문이야. 그 먼 데서 와서 참석한다는데.
-현재 받아드신 화두는 뭔가요. =사띠! 사띠야. 사띠란 말이 뭐냐면 깨닫고 있는 거거든. 알아차리고 있는 거야.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고 타인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딴 생각을 흘리지 않고 깨닫고 있는 것. 그게 거기에도 나온다고 하더만.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 거기 여자 아이 이름이 사띠잖아. 매순간 깨닫고, 그것을 유지하다 보면 집착이 없어지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열반에 드는 건데 한번 정진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