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지수 ★★★ 폭소유발 지수 ★★ 슈퍼히어로 지수 ★
왜 안 나오나 했다. <에어포트>와 <제로 아워!>를 패러디한 <에어플레인!>(1980) 이후 본격화된 패러디영화가 바야흐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슈퍼히어로영화에 손을 대지 않았던 건 차라리 의외다. 제목 그대로 슈퍼히어로영화를 마구잡이로 뒤집고 제멋대로 짜깁기한 <슈퍼히어로>는 <스파이더 맨>을 원전으로 삼는다. 주인공 릭 라이커(드레이크 벨)는 <스파이더 맨>의 피터 파커처럼 왕따 고등학생이다. 한 연구소를 견학갔다 슈퍼잠자리에 물린 그는 잠자리처럼 단단한 피부와 빠르고 강한 능력을 얻게 되고 평소 흠모해왔던 여자아이 질(사라 팩스턴)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이제 ‘드래곤플라이’(잠자리)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인 그는 다른 이의 정기를 빨아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악당 ‘아워글래스’(크리스토퍼 맥도널드)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는다.
<슈퍼히어로>는 다른 패러디영화가 그랬듯, <스파이더 맨>에서 파커가 벽을 타거나 여자아이와 키스하는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했을 뿐 아니라 다른 슈퍼히어로영화의 요소들을 끌어다 집어넣는다. 릭의 부모가 살해되는 장면은 <배트맨 비긴즈>를 패러디했고, <엑스맨>의 자비에르 박사, 울버린, 스톰이나 <판타스틱4: 실버 서퍼의 위협>의 미스터 판타스틱, 인비지블 걸 등도 ‘우정 출연’한다. 이외에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야구선수 배리 본즈, 가식적인 톰 크루즈, 그리고 프로도를 비롯한 <반지의 제왕> 속 호빗들까지 괴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분명 재미있을 법한 설정인데다 패러디영화계의 선구자 데이비드 주커가 제작했고, <무서운 영화> 3, 4편의 시나리오를 쓴 크레이그 매진 감독이 연출을 했으며, 패러디영화계의 대부 격인 레슬리 닐슨까지 조연으로 출연하건만, <슈퍼히어로>는 그닥 웃기지 않는다. 그저 한번 웃자고 만든 영화에서 정치·사회적 전복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만, 이 영화가 가진 유머의 날은 무뎌도 너무 무디다. 죽어가는 릭의 아버지가 “구글 주식을 다 팔고 그 돈으로 엔론 주식을 사거라”라고 유언하는 장면이나 절박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호킹 박사의 무미건조한 기계음 정도를 제외하면 기발한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슈퍼잠자리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나태함까지 느껴진다. 이미 <무서운 영화> 시리즈가 장수한데다 <데이트 무비> <에픽 무비> <디재스터 무비> 등 비스무레한 기획물이 양산됐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슈퍼히어로>는 좀더 치밀하고 세심한 웃음을 설계해야 했다.
tip/ 이 영화는 다른 영화나 대중스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 또한 패러디 대상으로 삼았다. 유튜브, 페이스북, MD넷, 구글, 마이스페이스, 위키피디아 등 현대 미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웹사이트를 유머의 재료로 삼는 것. 하지만 이들 사이트는 왜곡되지 않은 채 등장하는 탓에 PPL이 아닌가 하는 의심 또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