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49번째는 고 이만희 감독의 차녀인 영화배우 이혜영이 기증한 이만희 감독의 유품입니다.

1931년 서울 왕십리에서 출생한 이만희는 집 근처의 광무극장, 동화극장, 동도극장에서 많은 영화를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자유만세>(1946)를 보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 1955년 군 제대 뒤 배우 수업과 함께 연극무대에서 활동했으며, 안종화 감독의 조감독 황학봉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준 것을 계기로 안종화, 박구, 김명제 감독의 문하에서 5년 가까이 연출 수업을 받았다. 1961년 데뷔작 <주마등>을 시작으로 1962년 뛰어난 연출역량을 보여준 스릴러영화이자 출세작인 <다이얼 112를 돌려라>를 내놓았다. 이어 1963년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해였다.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가 출연했고 전투신의 스펙터클과 휴머니즘을 강조한 가작으로 서울에서만 22만8천명의 관객이 들어 이후 흥행감독의 대우를 받으며 많은 작품을 연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964년에는 뛰어난 장르영화 <마의 계단>과 <검은 머리>를, 1965년에는 문희의 데뷔작 <흑맥>, 1966년에는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며 신화가 된 영화 <만추>와 백결이 각색한 문예영화 <물레방아>를, 1967년에는 <귀로> 등 한해에만 무려 11편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고 이념의 벽 너머의 화해를 이야기했던 이만희에게 검열은 큰 시련이었다. <7인의 여포로>에서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감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영화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여군>으로 개봉했다. 대형 국책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검열과정에서 편집권을 잃어 더이상 그의 영화가 아니었으며, <휴일>은 결말을 신성일이 군대에 가는 것으로 바꾸라는 검열당국의 요구를 거부해 개봉도 못한 채 창고 신세를 져야 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은 1975년 45살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영화사에 선명한 이름을 새긴 이만희 감독의 유품 중 섬세한 감수성이 묻어나는 친필 편지와 <만추>로 받은 백마상 감독상 상패를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