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으로 중국은 우리 일상의 한복판에 다가와 있다. 영화 역시 거기에 한몫을 하긴 하지만 아직 이 ‘중앙의 제국’을 정면에서 다루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오늘의 중국은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스크린을 통해서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정부가 많은 영화 제작을 주문한 게 사실이다. 그 예로 전세계 영화감독들이 공동으로 만든 일종의 패치워크 작품 <비전 베이징>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볼 만한 작품은 유위강 감독이 요리를 주제로 해 만든 영화 한편뿐이다. 열정을 가지고 편집한 온갖 음식재료들이 화면에서 튕겨나와 대형 프라이팬 속으로 들어가서 신나게 춤을 추다가 소스 안으로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빈대떡 속에 돌돌 말려들어가기도 하면서…. 출연배우 역시 입맛 돋우는 스타들, 때론 양조위가, 때론 서기가, 군침을 흘려가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환기시킨다. 이 작품에 비하면 다른 영화들은 정말이지 싱겁다. 프랑스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는 쓸 만한 각도 하나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채 베이징 시내를 그냥 활보하고 다닌다. 그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다. 연거푸 질러대는 경탄의 함성, “아아아!” “오오오!” 말고는 베이징시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공사장을 보고도 전혀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똑같다. 지평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전진하는 미래), 기공무술 동작을 연이어 하는 노인들(이어지는 전통), 아니면 초대형 올림픽 경기장(승리하는 현대)과 첨단사원(풍요로운 역사)을 몽타주로 겹쳐서 편집한 게 전부다. 회사간부나 노동자, 가장, 가정주부, 대중교통이나 대형 슈퍼마켓 등 도시일상을 이루는 요소들은 스크린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중국은 눈앞에 펼쳐진 꿈이나 저 멀리 신화 속에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번도 중국을 현재형으로 촬영하지 않는다. 하긴 이건 여타 상업영화에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기도 하다.
올 여름에 나온 블록버스터 중 전적으로 중국을 배경으로 제작한 두 작품이 있는데, 이들 역시 금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우스꽝스런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쿵푸팬더>는 무술영화에 나오는 몇몇 주제나 인물을 그대로 재탕해서 만든 작품으로, 중국을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완전히 환상의 나라로 그려놓고 있다. 또한 홍콩 영화배우 이연걸과 양자경을 데려다 중국에서 촬영한 <미이라3: 황제의 무덤>은 20세기 초에 벌어지는 이야기임에도 진시황제의 전설적 지상군단에 관한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크 나이트>는 작품의 일부를 현대의 홍콩에서 찍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있어 홍콩이라는 도시는 다만 사진발이 엄청나게 잘 받는 미래주의형 밑그림, 유리와 강철로 만든 단순한 배경일 뿐이다. 그것이 서울이었든 시드니였든 토론토였든 간에 등장인물이 똑같은 모험을 했을 건 자명한 일이다. 이런 흥행작들은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전혀 손색이 없다. 게다가 중국이라는 나라가 분명 영화 스튜디오의 상업정책과 시사의 한복판에 와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할리우드가 관객에게 중국을 이야기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중국 문화의 코드를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거다. 중국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이야기와 인물을 새롭게 창조하고 새로운 모험과 로맨스와 코미디를 써내려가는 건 거부하면서도 말이다.
산업 차원의 협약을 염두에 두면서 혐오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작품에 사로잡혀 있는 관객은 어쩌면 중국에 대해 다소 양면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미래의 창설자, 아니면 공해로 잔뜩 부푼 허상, 중국은 우리에게 많은 미래를 약속하는 만큼이나 위험성을 내포하는 나라다. 할리우드는 그래서 이 나라를 조심스레 선회하는 게다. 하지만 영화가 이젠 합성 이미지 인형의 눈을 보기보다는 이 신제국의 두눈을 똑바로 정면에서 봐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