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酒邪) 경종 지수 ★★★★ 취중진담 지수 ★★ 카메오 활용 지수 ★★☆
잘나가는 인터넷 소설가라고 우기는 정유진(예지원)은 대책없는 30대 싱글녀다. “술이면 언제나 OK”인데 “마셨다 하면 필름 Out”, 매번 뒷수습하느라 ‘인생 Down’이다. 급기야 술김에 상사에게 삿대질했다가 곧바로 회사문 닫고 쫓겨난 유진. 술친구 철진(탁재훈)이 운영하는 커피숍에 떼를 써서 백수를 간신히 면하긴 하지만 외려 상전 노릇을 하는 바람에 친구들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안하무인, 무사태평 유진에게 실직이란 하늘이 내려앉는 시련이 아니다. 동창회에 나가서 나홀로 기분 내다 또다시 대형사고 친 그녀. 근사한 스위트룸에서의 누군가와 하룻밤을 보낸 것까진 좋았는데, 다음날 상대가 2백만원이 넘는 방값도 계산하지 않고 매너없이 줄행랑을 쳤음을 알게 된다. 빈털털이인 자신의 몸과 호주머니를 유린한 파렴치범을 찾아내기 위해 유진은 용의자 추적에 들어가지만 매번 망신살 뻗치는 해프닝만 겪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동명의 할리우드영화를 떠올려선 곤란하다. 오해와 망각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근사한 로맨스는 애당초 기대해선 안 된다. ‘막 달리는 취중 코미디’라는 컨셉에 충실한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부제는 ‘당신이 취한 사이에’가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전반부는 안면 몰수 마스크를 쓰고 범인을 기필코 잡아내고 말겠다는 유진의 못말리는 소동이 계속된다. 하지만 이같은 우당탕 소란이 흥미롭진 않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라는 1차적인 호기심만으로 관객의 시선이 달궈질 리 없다. 중요한 건 ‘그날 밤 일’이 아니라 ‘그녀’가 아닐까. 대책없고 고민없는, 그저 별스러울 따름인 유진의 ‘X보이프렌드’ 추적에 동참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취중진담이 있긴 하다. ‘올드미스’ 유진은 결국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어린왕자’를 확인한다. 그리고 사랑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볼 수 있는 별이 아니라 당신이 취한 사이에 기댈 수 있는 나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진담과 농담 사이에 균형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들의 속사포 대사로도, 개그맨들의 깜짝 출연으로도 로맨스와 코미디 사이에 팬 깊은 골은 메워지지 않는다. <자카르타> <튜브>의 조감독이었고, HD영화 프로젝트 <어느날 갑자기: 죽음의 숲>을 연출하기도 한 김정민 감독 작품.
TIP/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촬영 도중 감독과 여배우가 교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제작사인 KM컬쳐에서 자신의 아이템을 준비했던 김정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예지원이 유진 역으로 나서면서 새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감독과 배우가 손발을 맞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