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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껴보라”
김혜리 문석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8-07-2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 인터뷰

-요즘 무슨 꿈꾸나. =꿈꿀 시간이 없다.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다.

-뭐가 그렇게 걱정되나. =그렇게 크게 걱정하는 게 아닌데, 내가 더 할 게 없을까 하고 생각을 한다. 이문세 노래가 생각나면서.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웃음)

-VIP시사 반응은 어땠나. =보러 온 사람들이 영화 찍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잖나. 많이 놀라워들 하더라. 이걸 어떻게 찍었냐, CG냐 뭐냐면서. 예를 들어 귀시장에서 창이파와 싸울 때 도원(정우성)이 밧줄을 타고 빙빙 도는 것을 카메라가 쫓아가잖나. 그런데 그걸 보고 합성 아니냐고 묻는 거다. 아니 무슨 소리하냐고 하면 카메라가 날아간 거야 하고 묻는다. 촬영감독이 카메라 들고 와이어에 매달려 날았던 건데 말이다. 누군가 그날 나온 얘기를 함축적으로 정리했는데, “이렇게 순수 오락영화에서 광기 서린 것은 처음 봤다”는 말이 그거다. 찍던 당시 우리가 임했던 환경이나 정신상태에 딱 들어맞는 말이더라. 우린 오락영화를 만들려고 한 건데 그 당시를 생각할 때 광기가 없었다면 못 찍었을 거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무엇이었나. =후반부의 대추격신이다. 허진호 감독은 “나는 원래 이렇게 (가슴이) 뛰는 사람이 아닌데 추격전을 보니까 막 뛰더라”고 하더라.

-가장 나빴던 반응은. =나쁜 얘기는 거의 안 했던 것 같은데, 대평원의 추격신 뒤가 약간 긴 듯하다고 하더라. 우리가 일반 모니터 시사를 한번도 안 했기 때문에 기자시사나 VIP시사를 모니터 시사라고 생각했고, 이 또한 관객과 만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 삼아서 뒷부분을 약간 덜어냈다.

-어디를 편집한 건가. =어젯밤(7월8일)에 편집을 했는데, 태구(송강호)가 일본군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 터널 같은 곳을 폭파하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약간 더 시원한 느낌이 있다. 아깝긴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가 한계를 모르는 관객을 위해 이렇게 미친 듯 해왔는데 그 정도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본편보다 더 재밌는 DVD 서플먼트를 기대하면서. (웃음)

-또 다른 편집본도 계획 중인가. =토론토영화제용을 만든다. 칸영화제 버전의 업그레이드판이 토론토영화제 버전일 것 같다. 아마 그게 해외 판매용 프린트가 될 듯하다.

-편집본을 다 붙였을 때 시간이 얼마나 나왔냐. =이야기도 다 들어 있고,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2시간35분, 40분 정도 되더라.

-그것 말고도 촬영분이 정말 많지 않나. 혹시 찍으면서도 이게 다 들어가지는 않고 이중에서 취사선택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가. =내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살아가는 스타일이더라. 집에서 사무실 나갈 때 한남대교를 탈 때도 있고 동호대교를 탈 때도 있는데 한남대교를 타면 뭐가 좋고 동호대교를 타면 뭐가 좋고, 이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보는 스타일이다. 그런 경우의 수가 촬영할 때부터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영화가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가는 게 아니다 보니 무언가를 집어넣었을 때 느낌이 확 올라오고, 무언가가 부족했을 때 힘이 확 떨어지는 게 많았다. 특히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스타일리시한 느낌이 있어서 음악이 들어가면서 놀랄 만큼 살아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음악이 들어가서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계속해서 칸영화제 버전과 많이 다를 것이라고 얘기한 것은 그런 리듬감과 영화적 요소들에 의해서 바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더라. 나는 사운드와 균형감, 리듬감, 컷의 매칭감을 얘기한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칸 버전에서 어떻게 바뀐 건가. =엔딩이 좀 바뀌었다. 그리고 칸 버전은 약간 이야기의 개연성과 관계없이, 설명도 없이 인물들이 막 들어오는데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좀 극단적인 엔딩이랄까. 그래서 칸 버전은 하드록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비해 지금 버전이 칸 버전보다 좋아진 것은 균형감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칸 버전은 태구가 주도적으로 몰고 갔다면 여기서는 세 사람의 감정적 밸런스가 맞고, 관계가 좀더 잘 설명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세 사람이 붙었을 때 칸 버전보다 액션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좋아진 게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영화를 귀납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를 이루는 여러 조각들이 있고 또 관절을 연결하는 부위들이 있어서 덜거럭덜거럭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는데 이 조각들이 수시로 교체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어떤 고정된 전체에 대해서는 집착을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될 건가 궁금해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아닌 것 같다. 큰 원칙과 그림은 당연히 있다. 그 안에서 여러 버전의 경우의 수가 있는데 이것을 끄집어냈을 때 어떤 느낌이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게 더 잘 맞을까, 이런 것에 대한 고려는 있다. 그런 게 재미있고 불안하기도 하다. 약간 마술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매료되는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했고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또는 예측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는 것을 영화 안에서 계속 맛보고 느끼는 것이 좋다.

-30억원짜리 영화를 만들 때는 몰라도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만들 때는 좀더 경우의 수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반칙왕>을 만들 때, 현장상황에 맞춰서 이것저것을 무수히 바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가 나온 것 같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반칙왕>을 촬영하기 전에 했던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애초의 생각과 영화가 똑같더라. 그러니까 내가 내 안에서 논 거다. <달콤한 인생>이나 <장화, 홍련>에서도 배우의 컨디션, 공간의 느낌, 카메라의 컨디션 등을 고려해서 만들어냈는데 나중에 다시 보면 ‘아 내가 이것을 하려고 했었구나’ 하는 게 있었다. <놈놈놈>에 대해서 훨씬 더 통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좀더 계획적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었나 하고 얘기를 하는데 결국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에 꿈꿨던 것을 한 것이고, 막 바꾼다고 해서 위험요소를 가져간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리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하면서 바꾸지, 무조건 이것으로 할래 하면서 막무가내로 하는 것은 아니니까. 답답하니까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장면은 멋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멋있지 하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해보자 하고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주인공도 셋인데다 주변 인물도 많고, 삼국파나 귀시장파처럼 여러 세력도 나온다. 뒤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우려가 있긴 했지만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혼란이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설명을 하면서 카오스적인 느낌을 덜 주는 것보다는 친절하지 않더라도 혼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맞다고 봤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세한 설명을 하려면 2시간40분 정도는 돼야 했다. 가장 적합한 선을 찾으려 한 것이 이 결과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에서 장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선택하는 영화는 <놈놈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나. 그때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종의 이야기와 주제도 같이 선택한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한 것 같다. 당시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관해서는 시각적인 지점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기에 웨스턴이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때도 말했지만 웨스턴은 스페인 여행을 하다가 떠올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웨스턴을 만들고 싶다는 영화적 로망은 있었는데, 그런 벌판을 보니 일종의 해방감이나 막 내달리고 싶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저 멀리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구 내달리고자 하는. 영화 안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꿈이나 욕망, 집착을 갖고 뭔가를 쫓아갈 때 그것을 또 쫓아오는 인생의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집착이나 욕망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런 광활한 대평원을 배경으로 웨스턴영화 안에서 보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뭔가를 쫓아갔다가 그것을 보고 다시 어떤 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쫓아와서 다시 거기서 벗어나 다시 무언가를 쫓아가는…. 인생은 이런 추격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엔딩의 대추격전에 인생의 카오스와 혼란과 아비규환을 집어넣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쫓겨난 선조들도 만주라는 대륙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로또당첨을 바라는 식으로 그 공간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태구라는 인물도 이를테면 알량한 로또 번호를 받은 건데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끝까지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하는 거다. 로또나 지도나 한낱 종잇조각 아니냐.

-그런 추격전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나갔나. =내가 영화를 만들 때는 어떤 이미지, 영화적 순간들을 가장 우위에 두고 거꾸로 만들어간다. 여기에 이르려면 무엇을 거쳐야 하나 하면서 거꾸로. 단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놈놈놈>은 결국 마지막에 대평원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다. 물론 이야기를 직조하는 과정이 부실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부분보다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도 작은 영화에 스펙터클이 없는 게 큰 하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이런 오락영화에서 이야기가 탄탄하면 더 좋겠지만 내러티브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럼 관객이 이 영화에서 이런 점을 꼭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가장 공들였던 장면이 기차신, 귀시장 전투장면, 그리고 대평원의 추격신인데,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뽑아내려 했다. 건방진 소리지만 <벤허>나 <매드 맥스> <불리트> 같은 엄청난 아날로그 액션장면이 있는 영화를 이미 수없이 봤고, 또 보면서 ‘이것보다 더 뛰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더 생생하고 더 역동적이고 더 다이내믹하면서 더 박진감 넘쳐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내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한 주문이 그거다. ‘더 빨리, 더 힘차게!’

-그런 액션에서 추구했던 스타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우리가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귀시장은 사람들이 결과물만 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반 헬싱>이나 <스파이더 맨>에서는 다 와이어캠으로 찍은 것이잖나. 그런데 우리는 와이어를 매단 사람들이 직접 했으니까. 그러니까 슈퍼크레인이라든가 와이어캠이라든가 도기캠이 해야 할 것들을 슈퍼맨, 와이어맨, 도기맨이 했다. (웃음) 이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가. 여러 재밌는 장면이 많은데, 지붕 위의 도원을 찍으면서 아래로 뛰어내리니까 카메라도 같이 뛰어내리고 다시 아래서 창이를 잡으면서 뒤로 빠지는 식의 촬영은 <스파이더 맨>에서도 없었을 거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렇게 만들어낸 것은 어떤 영화에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세 차례의 액션신이 컨셉과 추구하는 바가 각각 달랐을 텐데. =우선, 열차신에서는 세 사람이 모이는 모티브를 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고, 사건이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세 사람을 어떻게 등장시킬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기차라는 공간이 진짜 힘들더라. 폭이 좁고 길어서 촬영이 힘들었다. 굴렁쇠도 만들고 가마 같은 특수한 장비도 즉석에서 만들어서 찍어야 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찍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가 아슬아슬하게 바깥에 매달려 찍기도 했다. 오락영화에 진심을 담으려 했다는 얘기도 그런 의미에서 했던 거다.

-귀시장신과 대평원은. =도원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멀리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캐릭터다. 태구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을 치고 가는 게 아니라 그가 세력 분포를 파악한 뒤 하나씩 잡아가는 전문가스러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중으로 올라가야 했다. 도원은 도르레 장치로 위에 올라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수의 열세를 극복해나간다. 도원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수직과 하강의 동선을 짰던 거다. 대평원은 아까 말했듯 욕망의 집합체, 카오스적인 상황을 정신없이 보여주기 위해 대폭발을 시켰던 것이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당신 스스로 이야기해왔던 두편의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 하나는 <석양의 무법자>와 <쇠사슬을 끊어라>다. =<석양의 무법자> 같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 서부극을 만들고 싶다는 영화적인 로망을 줬다면, <쇠사슬을 끊어라>는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방법을 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모태는 그 두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와 <쇠사슬을 끊어라>는 별로 닮아 있지 않더라. =왜냐하면 (웃음) 나는 <쇠사슬을 끊어라>를 절반만 보다가 뛰쳐나왔다. 아, 이건 가면 되겠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웃음) 결국 그 두편을 다 모태로 하지만 그 두편 어느 쪽과 닮지 않은 영화가 나온 거지.

-그래도 <석양의 무법자>에는 오마주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세 사람이 대치하는 장면은 오마주라고 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장면 아닌가. 세명이 서로 싸우는 관계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보면서 받은 강렬한 느낌은 비사회적이고 반영웅적인 인물들을 갖고서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힘이다. 여기서도 그런 악당을 묘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황야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인상을 찌푸린 지저분한 얼굴을 통해 건너편 사람을 보여주고 하는 카메라의 풍경에 대한 오마주도 있었다. 그 세 사람의 대치장면을 찍을 때는 여태까지 가져왔던 캐릭터나 감정을 다 증발시키고 그 신에만 충실하도록 요구했던 부분도 있었다.

-이 영화 속 만주, 특히 귀시장은 30년대 만주라기보다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 같은 느낌이 난다. 그리고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또 누구는 <블레이드 러너>와도 유사한 공간이라고도 하고.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대개 지저분하고 막 산 아저씨들인데 정우성은 이상화시킨 버전으로 잘 빠져 있고, 세트도 웨스턴은 가난한 버전인데 여기는 꽉꽉 들어차 있잖나. 와불도 나오고 코끼리도 나오고. 그런 것 때문에 어디에도 없는 테마파크 같은 인상이 강하다고 느낀 것 같다. =우리도 비오는 귀시장 장면을 찍을 때 ‘왜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가 돼버렸지?’ 라고 농담삼아 얘기한 적이 있다. 귀시장은 이를테면 청계천 같은 공간이다. 어렸을 때는 청계천 상가에서 잠수함이나 인공위성까지 만든다는 설도 있었다. (웃음) 그런 청계천의 만주식 변용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온갖 것이 다 있는 거다. 그 거대한 불상은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찍으려고 만들어뒀던 거다. 그런데 그게 들어가면 작가인 양 보일 것 같아서 뺐다. 그래서 길에 코끼리와 함께 뭔가 큰 게 지나갔으면 해서 불상을 집어넣었다.

-세 주인공 중에서 도원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는 현상금 때문에 뛰어들었지만, 누군가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다는 뉘앙스도 있고, 독립군과의 연관성도 있는 듯하다. =애초의 도원 캐릭터는 마적단에 휘말려 독립군 부하를 모두 잃은 독립군 출신이었다. 그런데 그 사연을 넣는 게 구차하기도 하고, 도원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턱없이 나와서 그냥 돈 쫓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원뿐 아니라 태구도 탐욕스러운 인물이면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가 지도를 쫓는 목적도 조금 애매하다. =태구와 도원이 달밤에 두런두런 말하는 장면에서 다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래왔지만, 인물을 다루는 게 너무 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불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면 좀더 드러났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르영화를 하면서도 인물의 심리와 내면에 많이 들어가려고 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건 순수 활동사진의 쾌감을 더 주고 싶었기 때문에.

-민족과 역사에 대해서도 쿨하다. =그런 문제를 좀 걷어내는 것이 인물을 설명하고 인물로 다가서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 같다.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시니컬하게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를 취할까. 태구의 “우리 같은 놈들 양반들 밑에서 사나, 일본놈들 밑에서 사나 무슨 상관이냐”라는 비관적인 대사도 몸으로 얘기하는 것이었고.

-장르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영화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나. =백수 10년, 영화감독 10년을 보냈는데,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느낌으로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것도 나만 아는 것일 수는 있지만, 태구가 창이한테 “모든 것 다 잊고 가라, 이왕 갈 거면 시원하게 가야지” 라고 하는 대사도 그런 생각을 담았다. 이것을 안 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놈놈놈>은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통해 뭔가를 이뤄봐야겠다,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영화다. 그래서 여태까지 했던 누아르, 코미디, 약간은 호러틱한 느낌들, 코믹잔혹한 것들을 군데군데 섞었나 보다.

-촬영 도중 후회한 적이 많지 않았나. =기획을 할 때 세 배우가 모였는데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하고. 나는 그냥 송강호와 아기자기한 오락 웨스턴을 찍으려고 했었는데. 세 사람이 모이니까 갑자기 커져버린 거다. 기대감이 커지면서 제작비도 상승한 거다. 찍으면서도 많이 후회했다. 특히 딱 중국에 갔는데, 내가 여기에 왜 온 거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불가항력이라는 것이 있잖나. 내가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안 되는 게 있다고 하면 ‘이게 왜 안 돼’ 막 이랬는데, 분명히 안 되는 게 있더라. 그런데 내 욕심 말고도 스탭들과 배우들의 욕심 또한 대단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을 모든 배우와 스탭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배트맨> 시리즈처럼 나쁜 놈을 바꿔가면서 속편을 만들 가능성을 열어놓은 게 아닐까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놈놈놈2>가 아닐 거다, <년년년>이라면 몰라도. (웃음) 사실 2탄보다는 만주액션, 만주활극이라는 욕구가 있고 풀었다는 데 의미를 둔다. 그동안 액션활극에 대한 기대는 많았는데 조폭영화만 너무 많이 나왔다. 이 영화로 만주 웨스턴을 수십년 만에 부활시킨 건데, 이런 장르가 다른 감독의 영화적 로망을 실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다찌마와 리>도 어떻게 보면 그것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사실 서부극에 대한 로망을 가진 감독님들이 많다. 우선 오승욱 감독이 위대한 만주 웨스턴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고, 최호 감독도 서부극에 대한 로망이 강렬하더라. 이명세 감독님이나 박찬욱, 김성수 감독님도 그런 것 같다. 이런 만주활극이 자리매김하는 의미에서도 상업적으로, 산업적으로 손해보지 않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김지운의 ‘제2기’에 대한 구상은 있나. =이제부터는 어떤 이야기에 어떤 장르가 맞을까 생각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장르영화에 대한 숙련기를 거쳐왔는데, 이제는 비로소 어떤 장르를 해도 시행착오 없이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는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을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내 영화에 대해 2%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이제야 영화를 좀 알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내가 영화를 너무 공간에 치우쳐서 만들어왔다면 <놈놈놈>을 하면서는 영화가 시간성의 매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10년도 의미있는 작업이었지만, 앞으로 맞이할 10년이 더 궁금하고 더 의욕이 넘친다. 더 좋아질 것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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