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을 모은 <별별이야기2: 여섯빗깔 무지개>는 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다. 인권과 영화의 특별한 만남을 주선해온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여섯개의 시선>을 시작으로 <별별이야기> <다섯개의 시선> <세번째 시선> 등 차별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여섯 번째 프로젝트인 <시선 1318>은 이미 완성되어 올해 전주영화제 폐막작으로 정해졌다. 과거와 달리 <별별이야기2>의 보도자료에 “계몽적이지 않고 재밌게” 만들었다는 강조가 없는 걸 보면, ‘인권영화’라는 표식만으로 뒷골부터 부여잡는 관객은 이제 없나 보다. ‘당신이 나라면’(If you were me)이라는 의미심장한 가정이 슬슬 약발을 발휘하는 건 아닐까.
‘여섯개의 무지개’라는 부제를 단 <별별이야기2>의 문을 여는 작품은 안동희, 류정우 감독의 2D애니메이션 <세번째 소원>. 28살 시각장애인인 명선 앞에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앞을 보게 해달라는 것”만 빼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에게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지만, 동시에 공포의 연속이기도 하다. <세번째 소원>은 거리에 나선 명선의 불안한 심리를 사운드와 이미지만으로 독특하게 표현한다. 누군가의 배려조차 명선에게는 폭력으로 작용한다는 설정이 주는 깨달음도 크다. “꿈 속에서도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아서 좋다”는 독백은 그녀의 입 속에서 맴돌던 세 번째 소원일 것이다.
두 번째 무지개는 <아주까리>. 코믹한 제목에서 뭔가 연상되지 않나. 맞다. 포경수술을 둘러싼 부자(父子)간의 신경전이 줄기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압박에 시달리는 준이. ‘아주 까야’ 진짜 남자가 된다며 첫눈 오는 날 포경수술을 시키겠다는 아빠의 고집 때문이다. 엄마는 준이의 의사를 존중하자고 달래보지만, 아빠는 모형자동차를 미끼로 거사를 추진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준이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모자라도 되는 양 거시기에 종이컵을 쓴 인물들의 수다도 재미나고, 기막힌 소품을 활용해 올 누드 장면을 소화하는 것도 귀엽다. 그동안 숨겨왔던 ‘아빠의 청춘’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잘못된 성지식이 편가름을 낳고 또 세대가 지나서도 여전히 작동함을 지적한다.
<아주까리>가 남성 콤플렉스가 빚어낸 소극(笑劇)이라면, 세 번째 무지개 <아기가 생겼어요>는 출산과 육아라는 이중고를 홀로 져야 하는 여성을 불안한 앵글로 한없이 응시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둘째아이를 갖게 된 회사원 은수는 출산휴가를 내다 퇴사를 종용하는 상사와 다투게 되고, 퇴근길에 산통을 느낀 뒤 갑자기 앰뷸런스에 실려간다. “전에 마초들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번엔 여성들에게 접근해보고 싶었다”는 이홍수, 이홍민 감독은 “엄청난 차별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짜증을 갖게 되는 임신부들의 감정선을 따라잡는 데 집중했다”고. ‘아기가 생겼어요!’라는 축복을 바라는 기대조차 품을 수 없는 현실을 먹먹하게 그려냈다.
네 번째 무지개 <샤방샤방 샤랄라>는 그래도 현실에 출구가 보인다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은진은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똑순이로 통하는 씩씩한 소녀. 매사 당당한 은진이지만 필리핀 엄마를 닮은 곱슬머리만큼은 감추고 싶어한다. 한국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에 달하고, 다문화가정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실을 실감나게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은진의 곱슬머리가 학교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꿈장면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아이의 심리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돈 벌려고 시집왔다”는 핀잔과 동정 앞에서도 언제나 묵묵부답이던 엄마가 딸 은진을 위해 다른 학부모와 맞장을 뜨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극중 엄마의 목소리는 실제 이주여성 펠라씨가 맡아 느낌이 생생하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무지개인 <메리 골라스마스>와 <거짓말>은 2D애니메이션이 아닌 클레이(찰흙)와 절지(종이)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먼저 <메리 골라스마스>. 언뜻 보면 차별이라는 주제와 그닥 연관이 없어 보인다. 산타클로스 선발 이벤트가 열리는데, 진짜 산타클로스는 모두 고배를 마시고 어리숙한 가짜 산타클로스가 선발된다는 내용이다. 대사도 많지 않아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의 잣대를 문제삼는다. “사람들을 구별하는 선별” 기준은 턱없이 부실하고, 결국 해프닝만을 낳을 뿐이다. <거짓말>은 계약결혼을 통해서만 진실을 지켜낼 수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 등 젊은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다. 거짓을 앞세우고, 진실은 언제나 들러리서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