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야>는 홍콩, 일본, 타이의 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한 남자를 놓고 갑자기 돌아온 전 애인, 그리고 옆집에 살고 있는 현재의 애인이 얽힌 삼각관계가 초래한 비극을 그리는 <이웃사람>과 한 여자가 어릴 적부터 상상 속에서 키워온 괴물 이야기인 <어둠>,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한 여자가 기억을 찾아가는 <잃어버린 기억>으로 구성됐다. 3국 감독들이 모여 아시아만의 독특한 공포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으로 제작된 <흑야>는 분명 <쓰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쓰리>는 작품간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고잉 홈>이나 <메모리즈> 등 공포장르라는 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흔적이 눈에 띄었지만, <흑야>는 소재와 연출 면에서 세편 모두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 <흑야>의 감독들이 선택(혹은 취합)한 건 자신들의 국적에 걸맞게 그동안 만들어진 아시아 공포영화의 잔영들이다. ‘물’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세편의 작품은 모두 <검은 물 밑에서>에 깊게 감명받은 듯 보이고, 사다코와 토시오의 형제자매들이 출연하며 다중인격, 부분기억장애 등의 익숙한 소재는 역시 익숙한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공포에 다른 의미를 끼워넣으려는 무리한 시도는 아예 없지만, 그것이 미덕으로 보이지는 않는 공포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