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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명장>을 보고 단상에 잠기다
주성철 2008-02-22

<명장>을 보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명장>의 오리지널 작품인 장철 감독의 <자마>(1973)는 그의 영화 가운데서도 유독 특이한 작품 중 하나다. ‘장철의 아이들’이라 할 수 있는 적룡과 강대위는 <복수> <신독비도> <권격> <보표> <무명영웅> <십삼태보> 등에서 언제나 형제 혹은 친구로 등장해 남성적 의리의 세계를 보여줬는데, <자마>에서는 처음부터 그 둘이 남남으로 등장해 결국은 대립 끝에 죽기 살기로 싸운다. 당시 그 팬들 사이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마>의 조감독이 바로 오우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오우삼이 장철에게 영향받은 점이 바로 그 무한 우정과 의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오우삼 스스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이라 늘 말해왔던 <첩혈가두>(1990)가 바로 그 의리의 부서짐을 그렸던 <자마>에 대한 오마주였다.

진가신이 <자마>를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점에서 우려가 됐다. 먼저 멜로영화의 울타리를 벗어난 진가신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아서였고, 과거 적룡 역할을 대신할 이연걸이 (물론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다. 지난번 <조폭마누라3>에 우정출연을 하고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적룡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자마>가 대만 금마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 중 하나라고 말한 적 있다. 그에게 처음으로 액션배우 그 이상의 평가를 안겨준 영화가 바로 <자마>였던 것이다. 더불어 <자마>에 출연하던 당시의 적룡은 <명장>의 이연걸과 달리 거의 최고조로 외모가 빛나던 미남자였다. 영화 속에서 진관태의 아내가 그에게 반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역시 진가신은 진가신이었다. <자마>에서 적룡이 진관태의 아내를 거의 빼앗다시피하는 반면, <명장>의 이연걸은 유덕화의 아내와 이전까지 알고 지냈던 첫사랑의 안타까운 느낌으로 등장한다. 진가신은 로맨티스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연걸과 유덕화의 이미지를 보면서 <명장>이 또 다른 면에서 꽤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이연걸은 <영웅>(2002)에 이어 또 한번 천자 앞에 다가서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마치 그가 입은 갑옷이 그를 꽁꽁 묶어놓은 듯한 형상이듯이 그는 또 한번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귀여운 파이터’ 이미지로만 늘 각인돼 있던 그의 일그러진 욕망을 가장 처절하게 드러낸 영화가 바로 <명장>이다. 한편, 유덕화 역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또 죽는다. 과거 유덕화는 늘 황비홍 역할을 하고 싶어했던 배우였다. 그래서 서극 감독이 <황비홍>(1991∼) 시리즈를 기획할 당시 황비홍 역할을 탐내다 결국 이연걸에게 내준 아쉬움이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유가량 감독의 <취권3>(1994)에서 기어이 황비홍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뭐 어쨌건. 그러다보니 그 이연걸에게 아내까지 빼앗기고 언제나 그랬듯 죽으면서 클라이맥스를 완성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유덕화가 주연한 액션영화들 중에서 그가 마지막에 안 죽는 영화를 찾기란 너무 힘들다), 마치 <명장>이 현재 홍콩 영화계에 대해 지독하리마치 자기파괴적인 영화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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