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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클로버필드>
김도훈 2008-01-22

사상 최대의 떡밥이었다. 2007년 7월 미국 <트랜스포머> 시사회에서 갑자기 티저 예고편 하나가 공개됐다. 값싼 캠코더로 찍은 듯 거친 입자의 흔들리는 화면에 담긴 예고편은 아파트에서 송별파티를 하는 일단의 친구들을 담고 있다. 홈비디오인가? 그런데 갑자기 지축이 울리고 건물이 정전된다.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자 맨해튼 끝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사람들은 길거리로 뛰쳐나간다.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나고 그들 옆에 무언가가 떨어진다.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 비명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반년간 철저한 비밀 마케팅으로 궁금증 폭발

대담무쌍한 트레일러가 유튜브로 흘러들어가자 난리가 났다. 거칠고 조악한 홈비디오로 찍은 재난의 현장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누구의 프로젝트인가. 구체적인 정보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것이 J. J. 에이브럼스가 제작 중인 영화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J. J. 에이브럼스가 어떤 인물인가. 21세기 최고의 ‘떡밥의 제왕’ 아니던가. 그가 창조한 드라마 <로스트>는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채 끝없이 떡밥만을 던지며 시즌3을 계속해왔다.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 <미션 임파서블3>도 마찬가지다. 이단 헌트가 목숨을 건 스턴트와 액션을 벌이면서 훔쳐냈던 ‘토끼발’의 정체는 영화의 가장 거대한 맥거핀이었다. 문제는 영화가 끝나도 토끼발이 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모두가 J. J. 에이브럼스의 떡밥에 걸려들었다. 전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론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실사화한 영화라고 했다.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나오는 괴물 크툴루라면 맨해튼을 완전히 휘젓고 다닐 수 있을 테니 충분히 가능성있는 이야기였다. <트랜스포머>의 시사회에서 첫 공개된 터라 (한국에서는 <백수왕 고라이온>으로 잘 알려진) 로봇 아니메 <볼트론>의 실사화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외 유력했던 설은 <고질라>의 새로운 속편과 <로스트>의 스핀오프 극장판이라는 것이었다.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는 정신이 홀린 듯이 정보를 수집했지만 J. J. 에이브럼스와 파라마운트는 완전히 입을 닫고 비밀 마케팅을 계속했다.

없던 제목은 곧 <클로버필드>(Cloverfiled)라는 가제로 바뀌었고, <슬루쇼!>(Slusho!), <치즈>(Cheese), <제목 미정의 J. J. 에이브럼스 프로젝트> 등으로 끊임없이 변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16일이 되어서야 좀더 구체적인 장면들이 덧붙은 두 번째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제목은 가장 처음에 등장했던 <클로버필드>였다. <버라이어티>는 영화의 감독이 J. J. 에이브럼스와 함께 드라마 <펠리시티>를 만들었던 맷 리브스이며 제작비는 3천만달러라고 보도했다. 배우들의 인터뷰도 슬금슬금 등장했다. 그러나 그들도 아는 게 별로 없었고 말할 수 있는 건 더욱 없었다. “제작자들은 캐스팅하면서도 어떤 영화인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대본은 모두 밝은 붉은색의 수위표(水位標)라서 복사 불능이었고, 그날그날 찍을 분량의 대본만 현장에서 받고 나중에는 다 거둬갔다.”

1월8일 비밀 시사 통해 첫 공개

도대체 <클로버필드>는 무엇에 관한 재난영화일까. 떡밥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국 개봉(1월24일)과 미국 개봉(1월18일)을 앞둔 지난 1월8일, 비밀리에 진행된 제한 시사를 통해 마침내 전모가 공개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J. J. 에이브럼스는 모두를 멋지게 한방 먹였다. 영화는 첫 공개된 트레일러로부터 시작된다.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다음날이면 일본으로 떠나게 될 주인공 롭(마이클 스탈 데이비드)을 위한 깜짝 송별파티가 열리고 있다. 파티를 개최한 릴리(제시카 루카스)는 허드(T. J. 밀러)에게 카메라를 주며 “롭에게 전할 마지막 인사를 담으라”고 부탁한다. 물론 그때부터 허드는 <클로버필드>의 모든 재난을 담아내는 우리의 카메라맨이 되고,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던 그 순간이 다가온다. 갑자기 천지를 흔드는 괴성이 들려오고, TV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유조선이 전복했다는 뉴스 속보가 들려온다. 그리고 트레일러에서 익히 본 것처럼 맨해튼은 지옥으로 변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완벽한 9·11의 재현이다. 거대한 괴물이 빌딩 사이를 지나가자마자 빌딩이 무너지고, 9·11 당시 뉴스 화면처럼 무시무시한 연기가 사람들을 덮친다. 세상은 흐릿하고 공포는 먼지 사이를 감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앙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보다도 거대한 괴물이 맨해튼을 모래의 성처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맨해튼 바깥으로 도망치려던 주인공들 앞에서 브루클린 다리가 산산조각나 무너져내린다. 게다가 롭의 휴대폰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에는 미들타운에 살고 있는 연인 베스(오뎃 유스트먼)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남겨져 있다. “살려져, 롭. 살려줘.” 이제 롭과 일행은 괴물이 본격적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있으며, 군대의 미사일과 탄환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맨해튼 중심으로 들어가 베스를 구해내야만 한다.

<블레어 윗치> 형식의 제작비는 불과 3천만달러

3천만달러라는 겸손한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블레어 윗치>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영화는 모든 재난이 끝난 뒤 센트럴 파크에서 군부에 의해 발견된 캠코더 테이프를 아무런 편집없이 공개한다는 방식으로 상영된다. E. H. H(Extreme Handheld)라는 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은 촬영자의 숨소리마저 그대로 담은 채 흔들리고 야간장면의 입자는 매우 거칠다. 하지만 <블레어 윗치>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J. J. 에이브럼스와 그 일당이 결코 떡밥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인공들은 무너지는 빌딩과 괴물의 다리 사이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그들의 눈(캠코더)으로 비일상적인 존재들의 광란이 여과없이 담긴다. <클로버필드>의 재미있는 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와 형식이 맞부딪히면서 생성하는 묘한 영화적 흥분감이다. 영화 속 맨해튼의 정경은 <CNN>으로 방영되는 9·11 뉴스장면들처럼 극도로 현실적이다. 모든 일이 실지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 손에 땀이 흐르고, 신경이 곤두서고, 비명이 목에서 스며나온다. 하지만 재난을 불러일으키는 괴물은 할리우드적인 평균과 비교하더라도 지나치게 크고 기괴하다. 이렇게 현실적인 배경과 비현실적인 소재가 아무런 경계없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스릴을 즐기고 있노라면 <클로버필드>가 새로운 장르를 하나 창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름하야 유튜브와 9·11 시대에 태어난 ‘재난-SF-시네마베리테’.

그러나 괴물 크기는 상상초월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버크는 <SCI FI Wire>와의 인터뷰에서 <클로버필드>가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고지라>에 대한 미국의 대답이라고 말한 바 있다. “J. J. 에이브럼스 <미션 임파서블3>의 홍보 투어를 위해 일본에 갔을 때였다. 아들 헨리와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그는 고지라 장난감들에 탄복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에이브럼스는 미국이 자신만의 고지라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킹콩이 있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괴물 아닌가. 고지라에게는 어떠한 익살도 없으니까.” 하긴 <클로버필드>에 익살은 없다.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는 관객의 멱살을 끌고 불타는 맨해튼의 지하와 지상과 마천루의 꼭대기로 숨차게 내달리며 믿을 수 없는 묵시록의 폐허를 눈앞에 던져놓는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모아 물어볼 질문이 남아 있다. 고지라에 대한 미국의 대답이라는, 그토록 거대한 괴물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지금으로서 가장 최선의 대답은 이것이다. 지상 최대의 떡밥은 거두절미하고 덥석 물 만한 가치가 있다.

* 좀더 자세한 <클로버필드>와 J. J. 에이브럼스 기획기사는 씨네21 638호에(1월22일 발행)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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