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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은근과 끈기의 카리스마
장미 사진 오계옥 2007-12-20

<용의주도 미스신>의 이종혁

직접 보니 184cm라는 키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에선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발산했던 카리스마가 얼핏 전해지는 것도 같았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그 꼭대기를 장악한 선도부장 역으로 주목받은 이종혁에게도 의외의 면은 있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약간 쑥스러워한다든지, 농담을 건네면서 가끔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는다든지. 그러니까 한예슬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용의주도 미스신>에서 맡은 이른바 “실장 캐릭터” 역시 그의 성정에서 그리 먼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은 뭐, 제가 로맨틱코미디 이런 건 별로 안 해봐서요. 약간 도전의 느낌도 있고요. 좀 편안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던하게 말을 이어가다가 영화를 이미 봤다는 이야기를 흘리자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눈치다. “재미있어요? 전 아직 못 봤거든요. 별로 안 까칠하죠? 너무 딱 떨어지게는 안 한 것 같은데. 조금 풀어지게 했는데. 차가운 느낌으로 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종혁이 연기한 한동민은 문어발식 연애를 펼치는 신미수의 행각을 한심하게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그녀와 정이 들고 마는 인물. “전형적인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설정된 연기가 없”어서 “‘노말’하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 “거의 무술팀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거쳤으니 웬만한 스트레스나 고통은 견딜 만하지 않을까. 물론 <용의주도 미스신>에도 그가 “액션신”이라고 지칭한 장면이 등장한다. 호텔 로비에서 신미수와 인연이 있는 세명의 남자가 한데 뭉쳐 난투극을 벌이는 신이다. “재미있었어요. 너무 오랜만에 촬영하는 액션신이라. (웃음) 뭐, (김)인권이랑 호흡은 잘 맞았고요. (손)호영이가 약간 힘이 세서 긴장했고. 거기서 하루 종일 찍었던 것 같아요. 밖에는 비오고. <숙명>의 (권)상우, 놀러와서 구경하고. ‘비와서 접었다’면서. (웃음)”

스크린에 데뷔하기 전 이종혁의 주력 무대는 대학로였다. <쉬리>와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지만 연극 <라이어> <19 그리고 80>, 뮤지컬 <의형제> 등에 출연하면서 부지런히 연기력을 쌓아갔다. “그때 멀리 본 게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쪽에서 조·단역을 하면서 계속 얼굴을 알리기보다 연극을 하면서 내공을 쌓자고 생각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선택한 차기작이 드라마 <비천무>. 중국에서 어렵게 찍었지만 지금까지 전파를 타지 못한 불운한 작품이다. “차기작으로 뭘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비천무>를 7개월 동안 촬영했는데 그 사이에 시나리오가 3편이나 들어왔어요. (웃음) <말죽거리 잔혹사> 찍고 나서 큰 변화는 없었어요. 피부로 와닿는 건 그때 잠깐이었던 것 같아요. ”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그는 ‘한번에 한 걸음’이라는 원칙을 꾸준히 지켜온 배우에 가깝다. <신석기 블루스> <미스터 소크라테스> <어느 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바람피기 좋은 날> 등으로 액션이며 코미디, 호러 등을 차츰 섭렵했고, 드라마 <그린 로즈> <안녕하세요, 하느님> <사랑에 미치다> 등에 캐스팅되면서 브라운관에서도 낯익은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신성우, 신성록과 함께 드라큘라 역을 맡아 오랜만에 무대경험을 되살리기도 했다. “거의 폭발적이었죠. 다른 역할도 많았지만 제가 했던 역 중 최고였어요.”

2008년은 아마도 새로운 이종혁을 발견하는 해가 될 듯싶다. 우선 우여곡절 끝에 <비천무>가 SBS에서 1월18일부터 방영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1월31일 개봉할 <라듸오 데이즈>에선 이전과는 다른 “완전 웃기는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뮤지컬 <싱글즈>에서 영화에서 김주혁이 맡았던 수헌 역에 캐스팅돼 이제 막 연습에 돌입했고, 영화 <홍당무>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슬픈 인물”이라는 방송국 음향 담당 K를 연기한 <라듸오 데이즈>와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라고 못 박긴 했지만 두 여교사에게 사랑받는 남자 교사로 출연할 <홍당무>를 언급하면서는 “캡 재미있다”거나 “진짜 웃기다”는 자화자찬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끊임없이 자기 영역을 확장해온 이종혁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뭘까. 2004년 인터뷰할 때 그랬듯 여전히 <올드보이>의 오대수 같은 역할을 가장 탐나는 캐릭터로 뽑을까. “그건 제 나이에 해도 못할 거예요. 연륜이 있어야지. 뭐랄까, 많은 장르나 캐릭터를 해봤는데 나한테 맞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건방지게 들릴 것도 같지만 잘 안 어울린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색하지 않았어, 괜찮았어, 잘하는 편이었어, 이런 정도였거든요. 일단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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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협찬 겐조, 티어리, 타임·스타일리스트 최무선, 이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