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영화의 오랜 친구다. 영화가 목소리를 갖기 이전부터 음악이니,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고 영화제를 여는 시도는 매우 자연스러울 수밖에.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 각각의 가능성을 새롭게 사고하도록 만든다. 오는 12월23일부터 31일까지 KT&G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음악영화제는 장·단편과 극·다큐멘터리를 망라하고 음악을 주인이라 부를 수 있는 스무편의 영화를 모았다. 국내 인디 밴드의 산실 격인 홍대입구 근처에 위치한 건물, 공연장과 인디영화 상영관이 한곳에 모인 건물에서 열리는 행사로는 더욱 제격이다.
개봉 3달이 되어오도록 여전한 기세를 자랑하는 <원스>를 비롯한 <린다 린다 린다> <벨벳 골드마인> <헤드윅>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익숙한 국내 개봉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반갑지만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각기 다른 섹션에서 선보였던 두편의 국내외 극영화가 ‘음악’이란 이름으로 모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칸영화제를 거쳐 부산영화제로 건너온 <밴드의 방문>(에란 콜리린)과 ‘뽕짝’의 감각적인 재구성으로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인디밴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리더 김민홍이 음악감독을 맡은 <여기보다 어딘가에>(이승영)가 그 영화들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이집트 경찰악단이 겪는 하룻밤을 다룬 <밴드의 방문>이나 영국으로의 음악 유학을 꿈꾸는 취업준비생과 밴드 기타리스트인 복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이야기의 특성상 음악에 가까이 서 있는 영화일 뿐, 전통적인 의미의 뮤지컬이나 음악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밴드의 방문>은 때때로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고즈넉하고 썰렁한 유머를 음악을 통해 완성하고,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마지막까지 화끈한 희망을 손에 넣지 못하는 이들의 현실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구슬픈 음악으로 극대화한다. 영화가 음악에 얼마나 깊숙히 빚지고 있는지를 문득문득 상기시킨다.
음반으로만, 혹은 이름으로만 접했던 뮤지션의 육성과 실물을 근접조우할 수 있는 음악다큐멘터리도 빼놓을 수 없다. 1970, 80년대 펑크의 전설 클래시(Clash)(<클래쉬의 전설: 조스트러머>)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콘트롤>), 아이슬란드의 시규어 로스(Sigur Ros)(<헤이마>), 1980년대 LA의 인디펑크그룹 엑스(X)(<X: 언헐드 뮤직>)가 이번 음악영화제 라인업의 한축을 이룬다. 음악영화계의 거성 줄리언 템플이 연출한 <클래쉬의 전설: 조스트러머>는 정확히 5년 전(2002년 12월22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클래시의 보컬 조 스트러머를 통해 재구성한 펑크록의 연대기다. 스트러머의 생전 모습을 비롯하여 보노, 믹 재거 등의 전설적인 뮤지션, 짐 자무시, 조니 뎁, 브리지트 바르도, 스티브 부세미 등 쟁쟁한 영화인들의 증언을 함께 담는다. 1980년 23세로 자살한 포스트 펑크록 밴드 조이 디비전의 멤버 이언 커티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콘트롤>은 굴곡 많은 뮤지션의 삶을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영화제에서 반드시 스크린을 통해 빵빵한 사운드로 감상해야 할 영화로, 2006년 여름 전세계 투어를 마친 시규어 로스가 고국의 팬을 만난 콘서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헤이마>를 꼽고 싶다. 한여름에도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땅의 창백한 빛을 닮은 전반적인 화면톤부터, 시종일관 차가운 열정으로 가득한 시규어 로스의 음악, 아이슬란드의 눈부신 풍광이 느슨하게 어우러진다. 시규어 로스의 공연, 아이슬란드 여행 등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두 가지 희망사항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음악과 사람과 땅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새로운 형식의 음악단편애니메이션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영화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상상마당 카페와 라이브홀에서 직접 음악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각종 이벤트도 마련했다. 주변이 요란하여 마음이 더욱 쓸쓸할 수 있는 연말, 음악과 영화를 든든한 동행삼는 것도 좋을 듯하다(문의: www.sangsangmad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