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한국인이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홍보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요즘 같이 한국 영화계가 힘들 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한국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홍보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이나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미국 중서부에 사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생애 첫 한국영화를 접하게 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해외 마케팅을 여러 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 영화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건 그중 첫 번째 단계뿐이다. 그 첫 번째 단계란, 국제적인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구입해서 자국 내에서 개봉하거나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소규모 혹은 대규모 배급업자들이 주요 타깃이다. 이런 배급업자들과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한국영화 세일즈 회사들은 선전용 자료를 만들고, 영화제에 부스를 세우고, 필름마켓과 영화제 상영을 준비하며, 많은 양의 이메일을 보내고, 판매 가능한 새로운 한국영화를 알리기 위해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한다.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홍보용 자료를 만들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등 다른 국가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에 가담하고 있다. 또 한국영화 세일즈 회사들과 영화진흥위원회는 전세계 영화 커뮤니티에 한국영화 소식이 퍼질 수 있도록 <버라이어티>나 <스크린 인터내셔널> 같은 국제적 영화잡지들과도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국영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사들은 위에 설명한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영화가 해외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두 번째 단계는 신문과 TV광고, 포스터, 예고편, 현지 영화평론가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실제 관객에게 한국영화를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홍보는 대부분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난 2002년 홍콩에서 <엽기적인 그녀>가 큰 성공을 거뒀을 때 현지 마케팅을 관할했던 것은 홍콩 배급사 에드코(EDKO)였다. 일본에서 <외출>이 개봉했을 때나 미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개봉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끔 한국의 스타나 감독들이 영화 홍보차 외국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이런 활동 역시 보통은 외국 배급사들이 준비한다. 한국 영화사들이 해외에서 효과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고 싶다면 영화 홍보를 잘한다고 평판이 나 있는 바이어를 고르는 게 최상의 선택이다(물론 해당 바이어가 한국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미국 중서부에 살고 있는 남자 고등학생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마도 세 번째 단계, 즉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외국영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만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결정하는 데 훨씬 더 수동적이다. 인터넷이 한 사람의 열광적인 선호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쉽게 전달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효과적인 홍보방법은 역시 가까운 지인의 추천이다. 이에 대한 과학적 통계자료를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지금까지 받은 느낌으로 유추해보면 많은 북미인이나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접하는 건 친구집에서 본 DVD를 통해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한국영화는 지난 1996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국인 교환학생 친구가 보여준 <서편제>였다.
그러니 외국에 나가 있는 수많은 한국인 교환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현지인들과 친해져 입소문을 퍼뜨리시라! 한국영화 해외 홍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