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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빛낸 올해의 장면들 ②
김도훈 주성철 문석 2007-12-20

올해의 요리, <카모메 식당>

콱 베어먹고 싶은 오니기리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는 “왜 메인 메뉴를 오니기리로 했냐”는 미도리의 물음에 답한다. “오니기리(주먹밥)는 일본인의 솔푸드(Soulfood)니까요. 1년에 2번 운동회랑 소풍 때 아버지가 오니기리를 만들어주셨죠. 오니기리는 자기가 직접 만드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게 더 맛있다고 하시면서요. 사실 다른 아이들의 벤토에 들어가던 계란부침이나 소시지는 없었어요. 연어, 매실, 가다랑어. 딱 세 종류의 오니기리밖에 없었거든요. 크기도 크고 모양도 별로였고. 근데 그게 또 아주 맛있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카모메 식당>의 오니기리가 인생의 철학이 담긴 음식이어서 ‘올해의 요리’로 선정하는 건 아니다. 진짜 이유? 혀에 고인 침이 쇄골까지 흘러내리도록 맛나 보인다는 것. 심플 이즈 베스트.

올해의 뮤직비디오, <M>

몽롱한 꿈속의 이미지

특별히 영화에 대한 공과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강동원의 프로필은 그 자체로 훌륭하고 이연희의 풋풋함도 사랑스럽다. 모두가 이야기에 매달리는 시대, 이른바 ‘중견’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도 계속 이미지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이명세 감독의 열정도 반갑다. 심지어 <M>은 <형사: Duelist>에서 보여줬던 비주얼 이펙트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더욱 확장한다. 더불어 <M>에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와 <첫사랑>(1993)을 떠올리게 하는 꿈같은 사랑을 향한 그의 오랜 테마도 녹아 있다. 그가 얘기한 것도 ‘꿈같은 혼돈’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은 그가 말한 꿈의 체험에 동참하지 못 했다. 그의 실험은 여전히 머물 곳을 찾지 못한 발없는 새의 운명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들과 이 글을 쓰는 나 모두가 미래영화의 입구에서 거절당한 운나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귀환, <다이하드4.0>

브루스 윌리스 대단하십니다

누구나 한 대머리 아저씨의 객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다이하드4.0>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들 중 가장 시대착오적으로 보였다.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3편과 4편 사이의 공백이 무려 12년이라는 점은 기대보다 우려를 키웠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시대의 블록버스터들을 점령한 것은 <엑스맨> <스파이더 맨> <판타스틱4> <슈퍼맨> <트랜스포머> 등 하나같이 슈퍼히어로들이었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초능력 경연장이 됐다. 이제 1억달러 이상의 예산을 지닌 영화에서 하드보디 영웅을 만나는 일은 영화사의 객기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경찰’로 돌아온 아저씨 브루스 윌리스는 오랜 세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잊고 지내던 헝그리 정신을 멋지게 되살렸다. <록키 발보아>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더불어 그는 올해 가장 아름다운 인간승리를 보여줬다.

올해의 주연도둑, <만남의 광장>

승범 오빠의 익살은 아무도 못 말려

따지고 보면 류승범의 잘못은 아니다. 조연도 아닌 카메오 주제에 류승범이 관객의 배꼽을 잡게 하면서 주연들이 받아야 할 웃음과 찬사를 훔쳤다는 ‘혐의’를 받게 된 건 엉뚱한 쪽으로 기운 이정표 때문이거나 지뢰 제거작업을 철저히 하지 못한 인근 부대장 탓일 게다. 허기에 지친 상태에서 개구리가 갑자기 기어나오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고 부르짖은 게, 그래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 게 과연 그의 죄란 말인가. 물론 길을 잘못 들어선 류승범 때문에 엉겁결에 교사 노릇을 하게 된 임창정 또한 억울함이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친분을 통해 류승범에게 카메오 출연을 제의한 것도 그였으니 다 업보 아니겠는가. 억울하면 류승범이 주연하는 <라듸오 데이즈>에 카메오로 출연해 관객 마음을 뺏으시라니깐.

올해의 면회신, <마이파더>

교도소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다

황동혁 감독의 <마이파더>는 가족영화가 아니라 선택의 기로에 선 한 인간의 이야기다. 영화가 말하는 ‘파더’는 피로 맺어진 게 아니라 편견 혹은 선입견과 싸워서 얻어낸 어떤 인위적인 ‘관계’다. 그 모든 사건들은 교도소 면회장면을 통해 펼쳐진다. 사형수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이 원하는 엄마의 사진을 얻기 위해 교도소 내에서 혹독한 싸움을 벌이고, 아들은 아들대로 드러난 진실을 거부하고 가짜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벌인다. 그렇게 각자의 싸움을 벌이던 그들은 교도소에서 가끔 얇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장 진실된 모습으로 마주한다. 그 창 하나를 경계로 두고 셀카를 찍는 두 사람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 역시 사실은 성스런 교회가 아닌 교도소의 면회소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이들의 면회장면을 통해 지금의 한국영화가 어떤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올해의 쌩얼, <우리학교>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배웁니다

도대체 누가 미리 예상이라도 했을까.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가 7만5천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이며 한국 독립영화의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가슴속으로 도리없이 차고 들어오는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의 순수하고 씩씩하며 수줍지만 기운찬 얼굴이야말로 바로 그 원동력임을. 그들의 분칠없는 해맑은 얼굴 안에서 수십년 동안의 뒤틀린 역사와 진실의 순간을 발견해낸 김명준 감독의 노력 또한 큰 역할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올해의 커플

영화 노사협상 타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이 손을 맞잡은 일은 신성일-엄앵란의 결혼만큼이나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커플’의 탄생을 의미한다. 올해 4월18일 제협과 영화노조가 영화산업 2007 임금협약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영화 역사 100년 동안 온갖 희생을 강요받았던 스탭들은 당당한 ‘영화노동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임단협은 스탭들이 2001년 인터넷 카페 ‘비둘기 둥지’를 결성한 지 6년 만에 이룬 투쟁과 협상의 성과물인 셈이다. 물론 결혼식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부부들이 다 그렇듯, 이들 또한 순탄치만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애초 7월1일부터 예정됐던 임단협의 시행은 한국 영화계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차일피일 미뤄지다 10월 초 <연인>을 시작으로 비로소 본격화됐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서로가 필수적인 존재란 사실이 자명하기에 이들의 ‘2인3각’ 발걸음은 꾸준히 계속될 것이다.

올해의 NG

부산영화제 개막식 찾은 정치인들

올해 한국 영화계 최고의 NG는 배우들의 몫이 아니었다. 더불어 스크린 속에 있지도 않았다. 바로 지난 10월4일 1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에서 벌어졌다. 화려한 배우들의 레드 카펫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선두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로 인해 행사가 1시간 이상 지연된 것은, 가뜩이나 악천후로 심기가 불편했던 관객을 더 큰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영화제쪽은 ‘공식 초청장을 통해 숙박과 항공권을 제공한 분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한나라당 의원이기도 한 허남식 조직위원장과 이명박 후보가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은 어딘가 ‘예정’된 인상을 풍겼다. 정치색의 배제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던 부산국제영화제로서는 올해 꽤 수습하기 힘든 NG를 낸 것이다.

올해의 O.S.T

노래의 힘

‘작은 영화의 성공’이라는 이름은 좀 구태의연하지만, <원스>의 성공에는 꽤 놀랄 만한 구석이 있다. 지난 9월20일 개봉한 이 아일랜드산 록영화는 지난 11월20일까지 모두 16만48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서울 9개관, 전국 16개관의 소규모 상영으로만 이룬 성과다. 더 기겁할 만한 것은 사운드 트랙의 판매량. <원스>의 O.S.T는 현재까지 모두 2만3천여장이 판매됐으며 아직도 찾는 사람이 끊이질 않는 2007년 최고의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음악적인 진솔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원스>의 팬시상품화가 절정에 이른 요즘은 길거리 카페와 옷가게마다 터져나오는 글렌 한사드의 목소리에서 그 옛날 <보디가드> 열풍이 떠오를 지경. <원스>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콜드플레이의 옛 앨범이나 다시 듣겠노라 불평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휘트니 휴스턴의 고음 공격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