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가족을 먼저 잃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먼저 죽는다. 닉(케빈 베이컨)은 그게 질서라고 믿는, 혼돈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그런 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문득 경이를 표하던 보험회사 중역이었다. 어느 날 그의 자랑이던 장남이 갱단 신고식의 제물로 희생되고 닉은 아들을 가슴에 묻는 대신 (진짜) 복수의 칼을 든다. 물론 그런 식으로 그가 바라는 세상의 질서가 되찾아질 리 없다. 초보 갱에게도 가족은 존재하는 법. 장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아들이 프로 하키 선수가 되는 것도 꺼리던 소심한 가장과 할렘 갱단의 죽음 따위 신문에도 나지 않는 현실에 분개하던 조폭 두목은 서로의 가족에게 사형선고(death sentence)를 내리고, 말 그대로 죽도록 싸운다.
<올드보이>가 복수극이라면 <브레이브 원>은 응징극이다. 복수극의 플롯이 만화적이라면 응징극의 플롯은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화두를 던져준다. 둘의 공통점은 비장함에 있다. <데스센텐스> 역시 비장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자신의 두눈으로 목격한 살인자가 고작 5년형 선고에 그칠 것이라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자력구제는 대부분의 경우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응징극이 복수극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심약한 백인 중년 가장이 우락부락한 갱단을 상대로 대등한 액션을 펼치는가 하면, 살인범을 짐승이라고 부르던 흑인 여자형사는 멋대로 전쟁을 시작한 닉의 백인 중산층적인 객기를 묘하게 꾸짖는다. 미국 백인 중산층의 몰락을 그린 현실극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장르적이고, 끝을 보는 한판 복수극이라기엔 그 말투가 너무 근엄하다.
그럼에도 <데스센텐스>는 제작진이 의도치 않았던 숨은 재미를 곳곳에 품은 영화다. 그중 압권은 폐허가 된 교회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총격전. 비둘기떼가 없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홍콩영화의 클리셰를 차용한 장면인데, <쏘우> 시리즈로 일약 돈방석에 올라앉은 20대 후반의 제임스 완 감독의 야심과 한계가 명확하다. 시나리오는 장르별 맞춤 작성기를 통해 쓰여진 것처럼 반듯하고, 비극적 운명을 강조하는 광각과 앙각의 화면은 미끈한 CF를 연상시킨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홍콩영화가 단지 몇몇 과잉된 폭력의 미학과 몇 마디 의미심장한 대사로 우리의 피를 끓게 했던 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