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매몰차게 말하면 <안경>은 이야기라기보다 어떤 라이프 스타일의 프로모션이에요. 그런데 그 슬로우 라이프의 실천을 통해 뭘 비판하려는 건지 모호해요. 이동진: 문제는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동경 자체가 뻔한 돌림노래처럼 불리워지고 있다는 거죠. 뭐 휴식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았어요.
꿈꾸며: 나도 먹고 살아야 되여! 이게 <마이클 클레이튼>의 교훈이기도 함다. -_- 다음 영화는?
메밀밭: <카모메 식당>으로 알려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안경>인데요. 보고 나니 <카모메 식당>과 연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배우도 겹치고요.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에 일본 가정식 요리 레스토랑을 연 여인과 거기 하나둘 모여드는 ‘머무는 여행자’들의 이야기였어요. 말 그대로 인물들이 여행가방을 끌고 영화 속에 당도하죠.
꿈꾸며: <바그다드 카페> 계열 영화라고 할 수 있습죠. ^^<카모메 식당>은 못 봤어요. <안경>을 본 저의 첫 느낌은, “엉뚱한 데도 평범할 수 있다니!”였어요.^^
메밀밭: “평범한데도 엉뚱할 수 있다니!”보다 나쁜 얘기죠?
꿈꾸며: 부인 못하죠. ^^ 전 게으름을 예찬하는 영화라고 해서 영화 자체가 게을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게을러 보였어요. 영화 안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들을
대충 상징이라는 틀 속에 얼기설기 엮어놓고 해석에 목마른 관객이 알아서 우물을 파기를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메밀밭: 사실 <안경>의 주제는 간단히 요약될 수 있죠. 영화에 등장하는 펜션의 주인이 초미니 간판에 손님이 의아해하자 “크게 쓰면 손님이 너무 몰릴까봐”라고 설명하는 대사가 함축하죠.
꿈꾸며: 정신없이 사는 도시인들의 근원적인 판타지를 담고 있죠.^_^
메밀밭: 전작 <카모메 식당>에는 “우린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식당’이다”라는 대사가 있거든요. 작다는 가치를 ‘크다’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 이상으로서 추구하는 거죠.
꿈꾸며: 글쿤요. ^^ <안경>엔 작다는 것뿐만 아니라,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이상화가 담겨 있죠.
메밀밭: 그러나 <안경>은 <카모메 식당>보다 그것을 한편의 영화로 풀어가는 아이디어와 간절함이 달려요.
꿈꾸며: <안경>은 은유나 상징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공식적이에요. 이를테면 팥을 삶으면서 “비법은 서두르지 않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대사는 삶에 대한 너무나 일차원적인 경구로 기능하거든요.
메밀밭: 영화의 전체 그림은 천연섬유, 유기농, 나무로 지은 집. ‘무인양품’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아요. <카모메 식당>처럼 여행 욕구를 부채질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여담이지만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나 <성냥공장 소녀>로 핀란드를 접했다면 그 나라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할 리 만무할 텐데 말이죠.-_-#
꿈꾸며: 그게 외지인과 원주민의 시선 차이라니까요. ^^ <안경>에도 일본의 유럽에 대한 판타지와 콤플렉스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체조에 ‘메르시 체조’란 이름을 붙인다거나 나중에 찾아온 청년이 멋들어지게 독일어 시를 읊는다거나. 뭐, 이젠 영시를 읊는 장면은 너무 평범할 테니까.^^
메밀밭: <마이클 클레이튼>과 <안경>이 통하는 바가 없진 않네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파고든 영화니까.
꿈꾸며: 그렇죠. 그런데 언제나 문제는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니까요. ^^ 그런데 <안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부인 사쿠라(모타이 마사코)는 봄의 상징 같단 생각 안 드나요? 이름 자체가 봄을 연상시키고 영화도 봄바다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청년 요모기(가세 료)가 읊는 “봄바다는 꾸벅꾸벅 조는 것 같다”는 시구였어요. 영화가 시작할 때 두 남녀가 각각 “왔다”라고 탄성을 지르는 것이나, 전체 구조가 사쿠라상의 도착과 떠남,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뒤의 도착으로 이뤄졌다는 것도 그렇죠. 이건 봄맞이 영화야. ^^ (이걸 왜 춘삼월에 개봉 안 하시고.)
메밀밭: 영화의 상징 중 마음에 들었던 건 “뜨개질은 공기도 함께 뜨는 거다”라는 말이었어요. 이건 사실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기도 하죠. 잘하는 뜨개질과 못하는 뜨개질은 실과 실 사이 공기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렸으니까요.
꿈꾸며: 이 영화의 대사들은 인디언의 지혜를 다룬 뉴에이지 계열의 서적 같은 데서 영향받은 듯해요. 펜션 주인이 그려준 지도를 보면, 그냥 길 하나 쭈욱 그려놓은 밑에 “슬슬 불안해질 때쯤부터 80m 더 가서 오른쪽으로 가세요”라고 적혀 있잖아요? 다르게 사는 삶에서는 아예 언어의 형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인데, 그게 좀 우스꽝스러워요. 무슨 말이냐면 “슬슬 불안해질 때쯤”이라고 쓰려면 “80m”라는 말은 뒤에 붙이면 안 된다는 거지요.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말하는 언어가 되려면 “슬슬 불안해질 때쯤부터 어깨가 뻑뻑해질 때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같은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거죠.
메밀밭: 저런, 너무 결벽하세요. ^^
꿈꾸며: 그게 아니라면 아예 처음부터 “좌회전해서 200m 간 다음에 80m 더 가서 오른쪽으로 가세요”라는 식으로 말하든가요. 영화 속 대사는 인디언 지혜도 아니고 문명의 합리어도 아니여. 괜히 제스처만 취하는 대사라는 말씀.
메밀밭: 매몰차게 말하자면 <안경>은 이야기라기보다 어떤 라이프 스타일의 프로모션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겐 매혹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겐 김밥 옆구리 터지는 영화가 될 수도 있죠. 얼마 전 미국 드라마의 파티장면에서 한 남자가 ‘F**K YOGA’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걸 봤는데 T-T 그런 사람이라면 <안경>을 소 닭 보듯 하겠죠. 슬로 라이프의 가치는 매우 귀중하다고 믿어요. 얌전하고 소극적인 생활양식 ‘슬로 라이프’의 실천은 기실 어떤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거든요. 그렇다면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당연히 따를 텐데, 그 대목에서 이 영화는 모호해요.
꿈꾸며: 문제는 슬로 라이프에 대한 동경 자체가 뻔한 돌림노래처럼 불리고 있다는 거죠. 재즈 카페는 호황이어도 재즈 음반은 안 팔렸던 이상한 재즈 열풍처럼 말입니다.
메밀밭: ‘슬로 라이프’는 환경문제와 세계화 광풍에 대한 반문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비슷한 예로 <메종 드 히미코>처럼 대안적 공동생활을 그린 영화는 <안경>보다 훨씬 힘이 있거든요. 그건 그 둥지에 모여 소수자적 라이프 스타일을 택한 사람들이 애초 무엇으로부터 탈출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겠죠. <안경>을 보면서 저들은 어떻게 기본적 생계를 해결하고 영업을 지속할까 궁금해지는 저는 너무 속물일까요?
꿈꾸며: (패리스 힐튼이 아닌 이상 그런 생각이야 당연하지. -.-) 뭐 저는 이 영화 자체가 휴식 같다는 느낌을 주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어요. 최소한 평일 마지막 회로 극장에서 보고 집에 가면,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관람 체험이라고 할까요.
이동진: <열한번째 엄마>는 이야기 자체에 상상력이 약해요. 제목을 짓고 나서 불치병, 학대받는 아이, 놀이공원, 면회장면을 자동적으로 집어넣어 만든 것 같아요. 김혜리: 유일하게 흥미로운 건 배우 김혜수였어요. 김혜수씨는 직접 보면 처량하고 쓸쓸하면서도 아기 같은 면도 있는데, 보통 영화에선 볼 수 없던 그런 면모를 보여주니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메밀밭: ^_^ 저도 <마이클 클레이튼>을 얘기할 때 긴장했던 근육이 <안경>을 이야기하며 이완됐어요. ^^ 그럼 다시 번뇌가 있는 영화로 돌아갈까요? <열한번째 엄마>에서 여자를 팔아 넘기는 건달 아빠(류승룡)와 둘이 사는 소년(김영찬)은, 아빠가 잠깐 집에 데려왔다 데려가는 여자들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러다 열한 번째 ‘엄마’(김혜수)와 사랑하게 되죠. 하지만 그녀는 병이 중합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고 배우들도 시나리오에 감명을 받아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참신하게 감수성을 건드리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측면이 없어서 좀 의외였습니다.
꿈꾸며: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 일단 이야기 자체에 상상력이 아주 약하다고 느꼈으니까요. <열한번째 엄마>라는 제목을 짓고 나서 불치병과 학대받는 아이와 놀이공원과 면회장면을 자동적으로 집어넣어 만든 것 같은 스토리잖아요. -_- 이야기의 골격과 구체적인 에피소드의 면면까지,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관성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메밀밭: <열한번째 엄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흥미로운 존재는 김혜수 배우와 그녀가 분한 뜨내기 여인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이 캐릭터를 영화가 대접하는 방식이 더 아쉬웠는지도 몰라요. ‘열한 번째 엄마’는 영화에서 재수와 그 아버지에게 주기만 하고 결국 스러지죠. 심지어 이름도 없지 않나요? 전 못 들었는데요 “그년” 아니면 “엄마”, “아줌마”로 불렸죠.
꿈꾸며: 이 영화에서 김혜수씨 모습은 좋더라고요. 하지만 영화 자체가 매력이 떨어질 때, 배우 혼자 빛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메밀밭: 최근 김혜수씨는 90년대 초·중반 <닥터 봉> <미스터 콘돔> 같은 로맨틱코미디에서 본인이 맡은 캐릭터의 반대말 같은 역에 부쩍 끌리는 것 같아요.^_^
꿈꾸며: 영화에 관한 한, 배우 김혜수씨는 요즘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정말 그러기 쉽지 않은 데 말이죠. 벌써 배우 경력 20년째잖아요?
메밀밭: 김혜수씨를 직접 봤을 때 생각보다 작고 처연한 느낌이 있어서 놀랐거든요. 어딘가 허랑하고 쓸쓸하면서 좀 아기 같은 면도 있는 인상인데, 보통 영화에선 볼 수 없던 그 얼굴을 <열한번째 엄마>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위에서 보여주니 눈을 뗄 수 없더군요. 또 김혜수씨는 따뜻한 포옹을 잘해주기로 유명하잖아요. 모성이 강해 보이죠. 이 영화는 그런 면을 활용했어요.
꿈꾸며: 저는 김혜수씨의 연기에 있는 기묘한 인공성에 끌려요. 좋은 배우를 이야기할 때 몰입의 정도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 항상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요. 김혜수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그 장면 속에서 두개의 자아를 함께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김혜수씨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과 바로 옆에서 그 캐릭터를 바라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김혜수씨의 존재가 함께 느껴진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영화에서 기묘한 입체감을 줄 때가 있어요.
메밀밭: 김혜수씨의 연기에서 관건은, 감수성과 에너지의 유무가 아니라 이미 넘치는 그것을 컨트롤하는 밸브가 적절히 기능하느냐에 있죠. ^^
꿈꾸며: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은 재수 아빠 같지 않아요? 일단 이 인물을 그리는 영화의 태도가 모호해요. 어떤 장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존재감이 강한 반면 여자가 집을 잠시 떠났다 돌아오는 중요한 과정에는 아예 등장을 안 해요.
메밀밭: 편리하게도요.
꿈꾸며: 관객은 불편하죠. 아들이 아버지를 면회하는 장면도 이상했어요. 그 장면에서 아버지에게 인간미를 강하게 불어넣어 묘사하는데 그게 이야기 전체로 보면 아주 이상한 입김이거든요. 인물의 다면성을 묘사한다고 그게 꼭 좋은 캐릭터 조형술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비슷한 유형의 인물인 <천하장사 마돈나>의 아버지와 비교해보면 좀더 아쉽죠.
메밀밭: 마지막 장면이 주는 불편함의 뿌리는, 영화가 끝난 뒤 재수와 아버지가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꿈꾸며: 벚꽃이 휘날리고 소년이 활짝 웃는 마지막 화면도 이상해요. 무엇을 위한 웃음일까요. 그나저나 한국영화에서 이제 면회장면이 좀 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
메밀밭: 혹시 <마이 파더>로 일년치를 다 보셔서? ^^
꿈꾸며: 영화마다 면회장면을 극적인 감정을 빚는 정점으로 너무 편하게 과소비한다는 느낌이 있다는 거죠.
메밀밭: 아이디어 있어요. 이런 기획 어때요? ‘한국영화 빈출장면 50’을 뽑는 거예요. 노래방, 화투판, 면회실, 한강 둔치, 회사 옥상 등등. 건축가, 작가의 도움말도 붙이고, 빈출장면 찍는 스탭들의 노하우 매뉴얼도 넣고. ^^
꿈꾸며: 저도 예전에 하고 싶었던 기획이에요. 한국영화 클리셰 사전 특집이죠. ^_^ 예컨대 고스톱판이 벌어지면, 꼭 누군가가 ‘설사’를 합니다(전문용어임다). -.-
메밀밭: 목차부터 짜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