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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다시 만나는 큐브릭의 정수,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
김도훈 2007-11-21

11월26일부터 12월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서 열려

스탠리 큐브릭

소싯적에 영화 좀 봤다는 영화광들의 리스트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점점 빠져나간다. 대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큐브릭이 완벽한 테크니션이긴 한데 뭔가 영화적인 감흥은 시간이 갈수록 덜한 것 같다는 아련한 이유. 말하자면, 너무 지독하게 스타일이 완벽한 나머지 빈틈을 재미있게 찾아 메우는 영화광적 작업의 묘미가 덜하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둘째. 너무 자주 봐서(혹은 본 것 같아서) 이젠 좀 질렸다는 거다. 후자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968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개봉했을 때 유명하고 알찬 평론가 폴린 카엘은 “기념비적인 상상력의 빈곤”이라고 말했다. 영화적인 감흥이라곤 없는 기술자의 영화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씨네21>과 교류를 맺고 있는 저명한 업계지 <버라이어티>는 먼저 나온 몇몇 SF영화들과 비교했다. “<금단의 행성>의 휴머니티는 상실됐고, <다가올 세상>보다 상상력은 부족하고, <Of Stars and Men>의 간결함을 따르지 못한다. 이것은 조지 팔과 일본인들이 이미 선점한 기술적으로 번지르르한 영화들 장르에 속할 뿐이다.” 폴린 카엘이라는 평론가의 특징을 꼼꼼히 본다면 그녀가 왜 그런 불평을 늘어놓았는지는 금방 알 법도 하다. 하지만 <다가올 세상>(Things to Come)의 근대적 상상력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미래적인 상상력을 비교한 <버라이어티>의 평론은 어째 낯이 뜨겁다.

그러니까 질문은 예나 지금에나 계속된다. 큐브릭은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완벽해서 재미없는 영화적 A.I인가. 스타일과 테크닉에의 집착을 위해 이야기를 희생한 얄짤없는 완벽주의자인가. <배리 린든>에 특수 카메라 담장자로 참여한 에드 디기울리오는 “창의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순전히 테크니션의 위치에서” 큐브릭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최대광량을 확보한 뒤 캐논이나 칼 자이스에서 생산하는 고품질의 슈퍼-스피드 렌즈로 찍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장면 아닌가요?” 큐브릭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이거 보쇼. 무슨 눈속임 재주 같은 걸 부리고 싶어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오. 고성의 고풍스러움과 자연스러운 느낌을 그 시절 그대로 영화에 담아내려고 하는 짓이오.” 큐브릭은 18세기 그림 속에 담긴 빛의 운율을 참조하고 NASA에서 만들어낸 우주 탐사용 렌즈를 개조한 뒤 오로지 자연광과 촛불만으로 <배리 린든>의 장면들을 담아냈다. 그건 ‘테크니션의 위치가 아니라 순전히 창의적인 예술가로서’ 멸종된 시간을 프레임 속에 재현하려는 예술가의 고집이었다.

큐브릭의 영화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인생의 베스트 리스트’에서 슬금슬금 지워온 팬들이나 오래된 추종자들, 혹은 큐브릭을 처음으로 대하는 팬들에게 2007년은 확실히 ‘스탠리 큐브릭 재발견의 해’다. 1968년부터 99년까지 큐브릭의 작품들을 모은 <스탠리 큐브릭 컬렉션: 특별판> DVD가 향상된 화질과 근사한 부가영상을 갖추고 출시되자마자 큐브릭의 진면목을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는 11월26일부터 12월2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이 바로 그 기회다. 상영작은 모두 여섯편. 큐브릭의 명성을 처음으로 미국시장에 알린 스릴러영화 <킬링>(1956)으로부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리타>(196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폭력과 자유의지에 관한 악명 높은 우화 <시계태엽 오렌지>(1971), 18세기 아일랜드 청년의 귀족사회 탐방기 <배리 린든>(75),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영화로 종종 거론되는 스티븐 킹 원작의 <샤이닝>(1980)까지, 스탠리 큐브릭이 창조적인 절정에 올랐던 시기의 걸작들이 모두 관객을 찾는다.

조금 아쉬운 점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50년대 초기작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초창기 다큐멘타리 데뷔작들인 <시합날>(1951)과 <플라잉 파드레>(1951), 큐브릭 자신이 “아직 못 봤다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불평했으나 운이 좋지 않길 바라게 되는 장편데뷔작 <공포와 욕망>(1953), TV로 종종 방영됐으나 극장에서 볼 기회가 드물었던 <스팔타커스> 정도는 함께 리스트에 올라 있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여섯편의 걸작을 감상한 뒤에도 허기가 진 관객을 위해서는 쟁쟁한 현직 감독들이 참가하는 ‘시네 토크’가 준비된다. 11월30일(금) 저녁 <샤이닝> 상영 뒤에는 봉준호, 임필성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고, 12월1일(토) 오후 3시30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상영 뒤에는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과 <첼로>의 이우철 감독이, 12월2일(일) 오후 3시 <배리 린든> 상영 뒤에는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각 영화에 대한 감상을 관객과 나눌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02-741-9782, artcinem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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