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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중견들을 위한 젊은 기술

HD영화를 중견 감독들에게 권함, 제작비 회수 부담 덜하고, 폭넓은 관객 만날 확률 높아

신기술은 항상 젊은이들의 장난감이 되어왔다. 십대들은 30대나 40대는 절대로 따라할 수 없을 방식으로 휴대폰을 사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모두 20대들인 듯하다. 올해 처음 발매되는 아이폰을 사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 가운데 60대나 70대는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영화제작기술 분야에서는 지난 5~6년 사이에 DI(디지털 보정·Digital Intermediate)나 좀더 향상된 시각효과 등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들의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주류 한국영화의 신기술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HD기술이다. 기술 그 자체가 특별히 혁신적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HD기술은 이전의 디지털비디오 양식을 개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HD기술은 영화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제작환경을 열어줬다.

신기술의 활용은 일정 정도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 HD로는 35mm필름으로 찍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매우 좋은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저예산영화들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영화들에 비해 상업적 압력을 덜 받게 되고, 그것은 곧 감독들이 창작의 자유를 좀더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달콤, 살벌한 연인> 같은 영화는 저예산 HD영화도 때로는 커다란 상업적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

비용절감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HD기술이 영화와 TV산업을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차적인 HD방송으로의 전환과 고화질TV의 확산으로 HD 콘텐츠에 대한 방송사들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했고, 그 결과 주요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사들이 영화제작사와 함께 HD영화(<달콤, 살벌한 연인> 등)를 공동제작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별로 놀랍지 않은 사실이지만, HD포맷의 영화 제작에 먼저 뛰어든 것은 주로 젊은 감독들이었다. 최근 몇년 동안 HD로 촬영한 아주 흥미로운 데뷔작들이 있었는데, 이들 영화들은 종종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와 주류 상업영화 사이의 중간쯤에 자리매김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에도 <열세살, 수아>나 2006년 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세번째 이야기: D-day>가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를 만드는 젊은 세대가 계속해서 이 매체를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HD포맷이 오히려 중견 감독들에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 영화계는 1990년대 후반에 젊은 신인 감독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했는데, 이 같은 사례는 전세계적으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영화팬들 역시 젊은 층에 편중되어 있어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매우 성공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감독들조차도 오늘날의 영화제작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결과적으로, 좀더 성숙한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으며, 배창호 감독의 <길>이나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처럼 설사 제작이 되더라도 서둘러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고 만다.

영화사와 TV방송사간의 HD 공동제작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는 이들에게 좀더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영화들은 35mm로 제작하는 것보다 돈을 적게 들임으로써 극장개봉시 제작비 회수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다. 또한 이 영화가 차후에 TV에서 방영될 때는 집에서 TV를 보는 좀더 넒은 연령층의 시청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도 높을 듯하다.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난다면 진정으로 다양한 한국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HD영화는 특히 조명의 까다로움 같은 새로운 기술적인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경험 많은 감독들(특히 젊은 스탭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은 신기술을 습득하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필요한 건 한국영화의 과거 발자취를 되짚어 재능있는 이야기꾼들을 찾아내고 거기서 새로운 미래를 일궈내려는 방송사와 제작자의 좀더 적극적인 자세인지도 모른다.

번역 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