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세살…그녀의 마음 깊은 곳 숨겨진 비밀하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복을 입는 나이 열세살.
수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허구한날 잔소리뿐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수아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에는 전혀 관심 없는 엄마는
수아의 가장 큰 불만이다.
그런 수아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가수 윤설영.
엄마는 숨기려 하지만, 수아는 알고 있다.
사실 수아의 진짜 엄마는 다름 아닌 윤설영이라는 것을!
지나가 버린 것 모두 그리움이 되리니...
오늘, 수아는 집을 나선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이던 엄마의 식당이 팔리고,
친구 사귀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엄마와 딸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갈 곳이 없어진 수아는 이제 서울에 있는
진짜 엄마인 가수 윤설영을 찾아가기로 결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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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수아> 칸 레지당스 선정부터 영화완성까지more
한국의 지방도시에 살고 있는 열세살 소녀가 진짜 엄마를 찾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는 수아의 이야기는 실은 멀고 먼 프랑스 파리의 어느 아파트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폴란드 영화학교 우쯔에서 연출한 단편들로 주목 받아온 김희정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낸 <열세살, 수아>의 이야기로 2005년 칸영화제가 지원하는‘칸 레지당스 인 파리’에 선정되어 반년간의 작업 끝에 장편 시나리오로 완성되었다.
칸 레지당스는 세계의 젊은 감독들이 첫번째 혹은 두번째 장편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영화화하고자 하는 내용의 트리트먼트와 이력서, 그리고 기존작품들의 심사를 통해 각 세션당 5,6명의 신인을 선발, 지원한다. 한국 최초로 칸 레지당스에 선정된 <열세살, 수아>는 국경을 초월해 어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사람 사이의 감정들이란 어느 곳에 가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오랜 기간 폴란드, 프랑스 등 타국 생활을 한 김희정 감독의 지론이다.
완성된 <열세살, 수아>의 시나리오는 곧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민규동 감독 눈에 띄었고 그가 대표로 있는 수필름의 기획/제작으로 영화 준비가 시작되었다. 국내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수입배급하고 있는 스폰지와의 만남으로 본격적인 크랭크인을 꿈꾸게 되었다.
急! 크리스마스 이브 자우림 콘서트 촬영!
<열세살, 수아>의 첫 촬영은 200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원래 크랭크 인 날짜는 2007년 1월이었지만, 자우림이 마침 예정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이용하는 것을 허락해준 덕분이었다. 자우림 콘서트로 북적거리는 연말 공연장 앞의 풍경은 <열세살, 수아>로선 간단히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촬영기회였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 없었던데다 스탭들이 아직 서로 익숙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든 약속을 팽개치고 한 마음이 된 <열세살, 수아> 팀은 결국,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콘서트장 장면을 성공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인기 1위 락그룹 자우림의 콘서트 현장을 담을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였다. 콘서트 속 ‘그린 슬리브즈’를 부르는 김윤아의 공연장면은 영화 속에서 ‘가수 김윤아’가 아닌 ‘가수 윤설영’의 콘서트 장면으로 등장하며 영화 속에 자우림의 족적을 남긴다.
세영이 못생기게 만들기 프로젝트
분장팀의 증언에 의하면 김희정 감독은 주인공 수아의 외모에 대한 몇 가지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었다. 첫번째, 머리카락은 떡이 져 있어야 한다. 하늘하늘 날리는 머리카락은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두번째, 화장은 로션과 파우더 이상은 금지. 세번째, 수아의 옷은 절대 몸에 붙지 않는다. 교복치마는 가장 다리가 못생겨 보이는 길이로 자른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은 언제나 제일 먼저 수아(세영)의 외모를 점검했고,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는 날에는 ‘빠꾸’ 먹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 ‘대장금’에 이어 <아홉살 인생>과 <여선생 여제자>에서 성인배우 뺨치는 아름다움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세영이를 볼품없는 열세살로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분장팀은 촬영현장에서 언제나 “어떻게 하면 세영이를 못생기고 평범하게 보이게 할까”를 고민해야 했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예뻐 보이느라 얇은 옷 입고 덜덜 떨 일은 없었지만, 겨울에 촬영하느라 튼 입술에 투명립글로스조차 바르지 못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했던 세영이. 한 올도 남김 없이 한 덩어리로 움직여야 하는 수아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숱 많은 세영의 머리를 온통 떡지게 만드느라 분장팀의 헤어왁스 사용량도 평균치를 넘었다는 소문이다.
한겨울에 푸른 빛을 어디 가서 찾나?
전북 고창 청보리밭 촬영
영화에서 수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 두꺼운 바지에 잠바, 새로 맞춰 입은 교복은 ‘동복’을 벗어나지 않는 <열세살, 수아>의 배경은 ‘겨울’인 것이다. 촬영 또한 학교수업에 빠질 수 없는 세영이의 사정을 고려해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안에 마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푸른 잎이 나기 시작한 밭을 지나는 버스장면을 촬영할 배경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헌팅에 헌팅을 거듭하며 고배를 마시던 제작부에게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전주영상위원회였다. 설마 하며 찾아간 전북 고창의 청보리밭은 1월 19일, 한겨울의 날씨에도 한없이 푸르렀고, 수아네의 분식 버스의 노란 색과도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최고의 촬영장소로서 본색을 드러냈다. 한 겨울 날씨에 안 추운 척 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맛있는 보리비빔밥 점심에 마냥 행복하다가, 수아가 아빠와 진짜 이별을 나눌 때는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스탭들은 이 날 하루 종일 울다 웃다 정신이 없었다.
김희정 감독 서면 인터뷰
> 드디어 장편 데뷔작을 완성했다. 소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편작업 이후(그러니까 폴란드영화학교이후) 한국에 돌아와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혼자서 작업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가까이를 혼자서 작업하다 보니 장편을 만들면서 기뻤던 점과 아쉬운 점이 다 여기서 출발한다. 기뻤던 점은 내가 방에서 혼자 고민하던 수아를 스탭 모두가 같이 고민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어떤 땐 감독방에서 듣는 스탭들 사이의 대화 “그러니까 수아는 그런 거 싫어할 거 같애” 라던가 “수아는 숫자를 몇부터 셀 까?”따위의 얘기들은 정말 수아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모두 같은 지점을 향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공동작업이라는 면에서 서로 공유해야 할 상황들을 시간을 갖고 체크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점은 스탭들과 그런 수아에 대한 소통의 시간이 기간적으로 짧았다는 점이다. 조금 더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길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 칸 레지당스에 냈던 최초의 트리트먼트와 완성된 영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왠지 칸 레지당스 출신이라고 하면, 난해한 아트 영화를 상상하게 하는데, <수아>는 상당히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어 놀라웠다.)
레지당스에 냈던 트리트먼트와 시나리오는 큰 골격에서 비슷하다. 지금 다시 찾아 읽어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이 그대로 영화에 반영되었다, 다시 말해서 첨가된 부분은 있으나 빠진 부분은 없다.
수아의 중학교 생활부분이 시나리오에선 있었는데 촬영 전 최종고에서 학교 부분을 예산과 회차 때문에 완전히 다 들어낸 것과 엄마 영주부분을 강화시킨 점이 다르다.
* 레지당스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 이야기가 무척 분명하다는 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남자 프로듀서 중 한 명은 이 시나리오를 읽고 집에 있는 자신의 딸들이 이해됐다고 말해줘서 기뻤다. 그리고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 자신의 부모가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나?
어디서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감정들은 같기 때문에 이 보편적인 정서가 세계에 통한다고 생각한다.
>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들었다. 어디까지가 자전적인 내용인가?
2003년 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인지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동생과 이런 얘기를 하다가 어렸을 때 맞게 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아이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이런 질문들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 주인공이 열 세살에, 소녀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에선 여자 아이의 성장 영화가 드물다. 이 영화가 성장 영화에 낯선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열세살은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이 이루어지는 나이이다. 그 학교 사이의 간격만큼 정서적으로 왠지 크게 점프하는 느낌이랄까. 시각적으로는 평상복과 교복을 입는 차이로 보일 수도 있고.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첫 어색한 느낌..
한국영화에서 이 또래의 여자아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나는 이런 작은 결에 감정들이 촘촘히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리고 그게 내가 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플롯에 희생당하지 않는 이런 작은 감정들에 대한 얘기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걸 겪어낼 당시에는 그것이 결코 작은 감정들이 아닌 누구나 겪었던 그런 보편적인 감정들 말이다.
* 이런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감정들은 국적이나 문화를 초월한다. 나는 죽음을 일상 속에서 극복하는 수아의 성장을 통해서 관객의 본질적인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수아뿐만이 아닌 엄마 영주도 함께 성장하는 영화이므로 그런 의미에서도 많은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누군가의 딸이었고(아들이었거나) 누군가의 엄마(또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 앞의 질문과 비슷한 맥락인데, <열세살, 수아>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는 열세살, 사춘기가 올 무렵인 그 시기에 느끼게 되는 처음 만나는 감정들에 집중해 본다. 수아는 처음 겪게 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왠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자신만 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 속에 놓이게 된다.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이 진행되는 동안 수아는 처음으로 믿게 된 친구로부터 느끼는 배신감, 가까운 친구의 예측할 수 없는 변모 등을 보게 된다. 살면서 앞으로 계속 겪게 될 이런 감정들을 처음 만나게 될 때 예민한 소녀는 지금 현실이 아닌 다른 환상적인 상황들로 자신을 이입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환상이 깨지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소녀는 성장한다.
> 폴란드와 칸 등 유럽적인 정서가 감독님의 영화적인 토양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한국 영화계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결국 사람들 사는 거 다 똑같구나, 그리고 인간은 다 같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본질적인 질문과 그리고 패턴적인 상황(일상성이라 불러도 좋겠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악한 면은 어느 곳이나 같다. 단지 방법과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폴란드에서 7년을 살았지만 그 곳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사회적인 이슈나 딜레마를 말하기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시선과 내가 같을 순 없다. 그러나 정서적인 면, 본질적인 감정들에 대해선 나는 내 방식대로 말할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교수 중 한 분이 이런 나의 영화를 보고 무척 폴란드적이라고 기뻐했다는 것과 프랑스 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본 프랑스 비평가들은 베르히만을 떠올렸다는 거다.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아시아적이라고 한다. 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느끼니까 이런 면이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큰 재미라고 생각한다.
난 영화는 사회와 크게 밀접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생각한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수아는 한국이라는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이다. 파리 레지당스에 살면서 각기 다른 여섯 나라에서 온 감독들이 각자의 도시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듯이 어디에서 영화가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인물이 살아 움직이려면 그가 사는 곳도 생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감독이지만, 한국 스탭들과 작업하는 첫 작품인데, 폴란드에서의 작업 방식과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우선 폴란드는 영화 종사자가 전문직이다. 그러니까 프로페셔널이라는 거다. 모두 그 일만 평생을 해 온 사람들이라 여유가 있고, 노하우가 있다.
한국에서의 영화작업은 우선 내 나라말이고,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좀처럼 영화 음악을 하지 않는 자우림과 작업을 했다. 어땠는가?
and
그런데 영화에는 음악이 많이 쓰이질 않았다. 음악을 절제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떤 의도인가?
우선 자우림이 시나리오를 무척 좋아해 주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영화음악이 감정을 푸쉬하거나 오버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음악이 영화보다 먼저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주는 것도 싫은 것 중에 하나다.
수아는 무엇보다도 넘치지 않고 덧붙이지 않아야 하는 영화다, 되도록 단순하고 조용히 수아 옆에 있고 수아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음악 또한 그 맥을 같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우림과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내 의도를 잘 파악해 주었고 열린 마음으로 작품에 대해 소통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이미 훌륭한 창작인으로서 좋은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그리고 그 감성이 작품에 맞아서) 좋은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 이세영, 추상미, 그리고 김윤아를 캐스팅한 이유와 작업을 마친 소감은?
세영이는 이전의 영화들에 나온 모습이 새침데기에 예쁜 아이라 수아 역에 맞을까 생각하다가 만나보고 결정했다. 만나보니 그냥 여자아이였다, 수줍어하고 그리고 친해지면 까불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결정했고 세영이가 수아를 맡아줘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수아가 거의 모든 부분에 출연하기 때문에 정말로 그 아이를 느껴주고 살아줘야 했는데 세영이는 200프로 그 몫을 했다. 어떤 씬에서는 몇몇 스탭이 눈물을 참느라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세영이는 친화력이 좋아서 스탭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전 회차에 출연하니 어떤 캐스트보다도 더욱 스탭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했다.
상미씨는 연극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이라 배역과 작품에 대한 해석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렇기에 수아에 비해 비중이 작아 보일 수 있는 영주역할도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리고 난 상미씨에게 그냥 상미씨처럼만 있어달라고 주문했는데 영주가 억세고 전형적인 싱글맘으로 보이지 않길 바래서였다. 결과적으로 전체영화에 어울리는 영주를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주가 프리지아를 부를 때 감동을 받게 하는 힘은 배우 추상미였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윤아씨는 시나리오를 읽고 무척 동화되어 주었고, 자신의 가치관과 비슷하다고 반가워해 주었다. 윤설영의 톱스타적인 이미지가 김윤아라는 가수에 의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아가 동경하는 가수인데 그런 화려함과 부러움을 느끼게 할 만한 30대의 여가수가 윤아씨가 적격이라 생각돼서 프로포즈했다.
> 더불어 친어머님과 남동생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뭐, 제작비 절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남동생은 대학 때 연극도 했었고, 엄마는 워낙에 화통한 분이고 강의도 하시는 분이라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가족들이 좀 무대체질이다. 하하..
> 관객들이 이 영화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팁을 준다면?
영화 초반부에 극에 몰입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조금 덜 친절하고 이상한(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를 해서 낯설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이다. 왜냐하면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수아의 곁에 그냥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이 수아와 친해지게 되면 영화의 마지막 즈음엔 관객들은 수아로부터 작은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Music Director_ 이선규, 김진만 서면 인터뷰
“작업하는 내내 감독도 우리도 모두 열세살이었다”
-이선규
>자우림의 멤버(이선규, 김진만)가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본격적으로 맡은 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지? 그 전엔 왜 영화작업하지 않았는지?
- 이선규 : 당시에는 바빠서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닌것 같고, 작업방식의 변화가 낯설어서인 것 같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대화해야 하는게 두려웠다.
>어떻게 음악을 맡기로 결심하게 되었는지?
- 이선규 : 잘 아는 동생 김윤아가 출연하는 영화인 데다가, 잘 아는 친구 김진만이 함께 음악을 맡게 되어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감독님을 처음 만나고 결심하게 되었다.
- 김진만 :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의 진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작업방식은 어땠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준다면?
- 이선규 : 김진만과는 십오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친구로, 서로 느끼는 바가 참 비슷하다. 큰 어려움 없이 역할을 분담했고, 웹을 통해 작업 결과물을 교환해가며 일했다.
- 김진만 : 영상을 보다보면 문득 머릿속을 지나가는 음악적인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가진 사람이 각각의 장면을 맡았구요, 섬세한 영화인지라 조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감독님이랑 친해졌다고 들었는데, 작업을 마치고 김희정 감독에 대한 첫인상과 나중 인상이 어땠나? 바뀌었나?
- 이선규 : 작업하는 내내 감독님도, 나도 열세살 수아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적당히 백수, 한량의 느낌)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음악을 맡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
- 김진만 : 큰 그릇과 섬세함을 겸비한 여장부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