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을 찾아, 파리에서 도쿄로 순간이동!
<점퍼> Jumper 감독 더그 라이먼 목소리 출연 헤이든 크리스텐슨, 제이미 벨, 레이첼 빌슨, 새뮤얼 잭슨 수입·배급 이십세기 폭스 개봉예정 12월
당신이 ‘점퍼’라면. 지구의 어디든 텔레포트(순간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대체 뭘 할 것인가. 조건이 하나 있다. 당신은 이성적인 사리사욕에 익숙한 성인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겪고 있는 십대다. 스티븐 굴드의 SF소설 <점퍼>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 사춘기 소년 데이비 라이스의 이야기였다. 그는 학대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쳐나와 오랫동안 헤어진 엄마를 찾아나선다. 가히 소년 SF다운 모험담이다.
하지만 더그 라이먼 감독의 <점퍼>는 원작보다 훨씬 매끈한 성인 취향 할리우드 공산품에 가까운 인상이다. 더그 라이먼과 할리우드의 가장 잘 팔리는 두 작가(<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사이먼 킨버그와 <배트맨 비긴즈>의 데이비드 S. 고이어)는 원작에서 ‘텔레포트’ 능력만을 똑 따와서 이야기를 재구성했고, 영화 <점퍼>는 부유한 청년 라이스(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엄마의 살인범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자친구 밀리(레이첼 빌슨)와 아슬아슬한 연애전선을 형성하던 라이스는 같은 능력을 지닌 영국 소년 그리핀(제이미 벨)을 만나게 되고, 정부요원 콕스(새뮤얼 잭슨)을 위시한 ‘점퍼 사냥꾼’들과 생존을 위한 격전을 벌여야만 한다.
감독 더그 라이먼은 “더그 라이먼 영화란 악당이 없는 영화”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려 한다. “더그 라이먼 영화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회색지대를 남겨두는 것이 훨씬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자신을 3인칭으로 일컫는 야심만만한 감독의 말과 트레일러의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점퍼>의 주인공들이 꼭 선한 영웅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점퍼들의 ‘아이덴티티’는 이집트, 중국, 파리, 도쿄, 로마를 제멋대로 오가는 점퍼들의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적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Tip. 원작 <점퍼>와 <리플렉스>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서 여피 같은 라이스의 모습에 한숨짓는 원작 팬들이 꽤 있을 것이다. 엄마 찾는 소년의 모험담을 원한다면 원작을 미리 읽어보자. 연작인 <리플렉스>(Reflex)는 정부요원으로 활동하게 된 유부남 데이비드 라이스의 모험을 다루며, 그리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 소설도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없지만 아마존(www.amazon.com)에서 구입가능하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니 부담도 없다.
흑인 대부와 백인 경찰의 대결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gster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 쿠바 구딩 주니어, 조시 브롤린 수입·배급 UPI 개봉예정 12월27일
누구나 눈치채겠지만 <아메리칸 갱스터>에 등장하는 덴젤 워싱턴의 결혼식 장면은 직접적으로 <대부>(1972)를 연상시킨다. 물론 그 역시 ‘famil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아메리칸 갱스터>는 마리오 반 피블스의 <파시>(1993)가 서부시대의 흑인 건맨들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역시 흑인들의 시선으로 써나가는 미국 갱스터의 새로운 역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갱스터 무비의 전체 계보 안에서 봐도 덴젤 워싱턴은 가장 이지적인 축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더불어 화려한 테크니션이기도 한 리들리 스콧의 갱스터 무비라는 점에서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영화는 1970년대 베트남전 당시 뉴욕의 할렘에서 헤로인 왕으로 군림했던 마약상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와 그를 쫓는 마약 전담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실존인물인 프랭크 루카스는 어려서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자랐지만, 1970년대 베트남전이라는 사회적 혼란상황을 이용해 갖가지 방법으로 베트남에서 생산된 마약을 수입하면서 할렘 최고의 마약상으로 군림한 인물이다.
올해로 데뷔 30년째인 덴젤 워싱턴은 <아메리칸 갱스터>의 핵심이다. 가장 지적인 면모의 흑인배우라 해도 틀리지 않는 그는 ‘패밀리’를 이끌어가기 위해 잔인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 흔들림없는 보스로 등장한다. 최근 토니 스콧의 <맨 온 파이어>(2004)와 <데자뷰>(2006)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사이좋게 토니 스콧의 형 리들리 스콧과 조우하게 됐다. 리들리 스콧으로서도 <어느 멋진 순간>(2006)으로 고전했던 기억을 말끔히 씻어버린 영화다. 1970년대라는 설정도 <더티 해리>(1971), <프렌치 커넥션>(1971) 등 옛 미국 하드보일드영화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배경이다. 리들리 스콧의 단짝이기도 한 러셀 크로 역시 프랭크 루카스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형사로 출연해 모처럼 터프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가 <대부>와 같은 시대에 대한 풍경화이기도 하다면, <아메리칸 갱스터>는 베트남전 시기의 혼란을 묘사하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Tip. Jay-Z(제이지)가 O.S.T를?
이미 은퇴를 선언했다 번복한 ‘비욘세 남편’ 제이지는 <아메리칸 갱스터>를 먼저 보고는 ‘필’이 꽂혀 일찌감치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영감을 얻은 장면을 정지해놓고는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화답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총 9곡이 수록될 예정인데 단독 앨범으로 낼지, O.S.T 형식으로 갈지는 협의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