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개 자해하거나 자신의 아이 혹은 남자친구를 살해하지요.”
<브레이브 원>의 성실한 형사 머서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명제를 남자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가 일반 명제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항의는 일단 접어두고, 백번 양보하여 이렇게 말해보자. 적어도 조디 포스터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녀들 중 한명’이 아니었다고. (우정출연으로 영어만큼 능숙한 불어 실력을 뽐낸 영화 <인게이지먼트>를 제외하면) 포스터의 최근작 네편은 모두 스릴러물이었다. 집을 침입한 사내들을 물리치고, 비행기에서 아이를 구해내고, 웬만한 거물들은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더니, <브레이브 원>에서는 복수를 위해 총을 들었다. 스릴러는 자신과 세상의 어둠을 마주할 수 있는 몇몇 여배우에게만 허락되는 장르다. 조디 포스터는 그중에서도 드물게, 비좁은 장르의 영역을 자신의 힘으로 넓혀왔다. <양들의 침묵> 같은 완성도있는 스릴러는 논외로 치더라도, <패닉 룸>처럼 단지 장르적 쾌감에 충실하거나 <플라이트 플랜> 등 시나리오에 명백한 한계가 엿보이는 영화조차 풍부한 텍스트로 변모했다. 스릴러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잔혹동화 <인게이지먼트>에서는 욕망의 대가를 감내하는 당당한 프랑스 여인이었고, <콘택트> <넬> <애나 앤드 킹> <매버릭> <서머스비> 등의 얼핏 평범한 대중영화가 비범해지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언제나 조디 포스터였다. 니콜 키드먼(<패닉 룸> <브레이브 원>), 미셸 파이퍼(<양들의 침묵>), 멕 라이언(<매버릭>)… 일순위로 캐스팅됐으나 마지막에 물러난 덕에 포스터에게 기회를 제공한 여배우들이다. 애초에 제작진이 예상했던 영화의 모습이 훤히 예상된다. 그러나 포스터가 등장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조디 포스터의 그녀들은 자학보다는 복수를 택하고, 기다리지 않고 먼저 떠난다. 늘 그처럼 어두운 영화만을 택하는 이유에 대해 포스터는 명쾌하다. “줄리아 로버츠와 샌드라 불럭이 로맨틱코미디를 하듯 난 어두운 드라마를 한다. 그쪽으로 난 꽤 소질이 있다.”
“난 목소리죠. 얼굴이 아니잖아요.”(I’m voice, I’m not a face)
<브레이브 원>은 걷기 좋은 도시, 뉴욕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라디오쇼 진행자 에리카 베인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애초 신문사 기자로 설정된 베인의 직업을 라디오 진행자로 바꾸고 <톰과 제리>식 형사물을 존재론적 고민이 담긴 변신의 이야기로 변모시킨 것이 바로 포스터. 영화에서 TV광고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동료의 제안에 대한 에리카의 이와 같은 답변은 포스터 자신의 것이다. “감정적이고 육체적 요소가 강한 연기는 사실 자신없었다. 나는 사색적이고 언어지향적인 편이다.” <넬>에 대한 포스터의 회고다. 포스터는 생후 8개월부터 말을 했고, 3살 때부터 글을 읽었고 문학을 전공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이 그녀의 선택을 역겹게 느끼길 바란다.” “생각하고 느끼고 숨쉬는 그 어떤 인간도 총을 손에 쥐어서는 안 된다.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힌 미국인에게 총은 거대한 일부분이다. 그러나 폭력은 분명 우리를 좀먹는다. 에리카의 변신 역시 종말을 고할 것이다.” “난 정말이지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총을 들어 누군가를 쏘는 것은 용감한 게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용감한 행동이다.” 포스트 9·11 시대 미국인의 히스테리를 기이한 방식으로 옹호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영화 <브레이브 원>에 대한 포스터의 입장이다. 자신의 역할은 물론 영화 전체의 구조와 의미에 대한 그의 설명과 변호는 웬만한 감독을 능가한다. 배우에게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정치성에 대해 묻는 것은 대부분 실없지만, 포스터는 다르다. 그런 그가 <꼬마천재 테이트>를 비롯한 두편의 장편을 연출했고, 더 많은 영화를 연출하지 못함을 언제나 아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촬영 직전 러셀 크로의 어깨부상으로 좌절된 <플로라 플럼>을 비롯하여, 오랜 멘토인 로버트 드 니로와 배우와 감독으로 만날 수 있었던 <슈거랜드> 등 그의 연출 예정작들은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 중이다. 아동용 판타지물 <님스 아일랜드>에 출연 중인 그가 오랜 기간 출연작으로 눈독들이고 있는 것은 레니 리펜슈탈의 전기영화. “끔찍하게 논쟁적인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영화와 관련하여 거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일을 늘 흥미롭게 여긴다. 리펜슈탈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이 있을까? 이것은 예술가들의 영원한 질문이다. 그것이 나치 독일이든 레이건의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며 원한 적도 없다. 어머니가 재혼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우리와 함께 살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10대 소녀가 아닌,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와의 애증어린 관계는 조디 포스터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 아버지는 그가 뱃속에 있을 때 가족을 떠났고, 로션 광고로 3살 때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어린 포스터는 가족을 부양했다. 4남매를 홀로 키운 어머니는 열두살 난 딸이 창녀로 출연하는 것을 허락하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어린 딸에게 “마흔이 넘으면 배우 경력은 끝날 것. 그 이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할 정도로 현명했다. 예일대에 입학한 것조차, 지나치게 가까운 모녀관계 덕분에 집에서 멀어지길 원했던 포스터의 집요한 노력 덕분이니 어머니의 그늘은 더없이 넓다. 반면 부재하는 아버지의 그늘을 대신한 것은 어린 시절 촬영장에서, 마주한 미국 영화사의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유사 아버지. “배우라는 직업이 바보스럽게 여겨지던 때였다. 그런데 그것은 캐릭터를 충분히 쌓아올리지 않고, 좋은 배우가 되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이것이 열두살 난 소녀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 드 니로는 <택시 드라이버> 촬영장에서 이전까지 단 한번도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 포스터를 자신의 보호하에 두고 연기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 누구보다 질풍노도의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 어떤 스타보다 심각한 언론기피증을 앓았던 드 니로였으니, 사생활 보호의 확실한 노하우 역시 전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9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포스터는 아이의 아버지는 물론 임신 경위에 대해서도 밝힌 바 없다.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오랜 의혹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언급을 삼간 끝에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되었다. 유명세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미디어 노출증이 만연하고, 출산과 입양을 적극적인 이미지 메이킹의 도구로 삼는 오늘날의 셀레브리티 문화는 영원히 포스터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S#1 “당신의 마음을 얻고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레이건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 그를 암살하려 합니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1년 3월30일 존 힝클리
S#2 “자, 강간합시다”(Let’s rape) 촬영장에 나타난 조디가 말했다. “내 걱정은 말아요, 조너선. 나는 무사하지는 않겠지만, 괜찮을 겁니다.”(I won’t be all right, but I’ll be OK) -<피고인> 중 윤간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의 조디 포스터에 대한 조너선 카프란 감독의 회고
조디 포스터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 두 장면.
1981년 3월30일 존 힝클리는 레이건 대통령과 수행원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그중 한발은 레이건의 폐를 관통했다. “1980년 여름. 예일대는 그간 내가 속했던 그 어떤 곳과도 달랐고, 거기서 인정받고 싶었다. 모든 신입생 행사와 게임에 참가했고, 내가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익명을 꿈꾸던 포스터의 꿈같은 나날은 끝장났다. 포스터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빛나는 아역스타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심야 TV쇼에서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폭탄을 왜 떨어뜨렸는지 알아?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지” 따위의 농담이 오갔다. 1주일도 지나지 않아 학교 연극무대에 오르고, 힝클리를 모방한 암살 협박이 이어지는 지독한 나날.
그러나 그는 지지 않았다. 체중이 불었고 아무도 그를 먼저 찾지 않게 되었지만, 묵묵히 대학을 졸업했고, 어쨌거나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다. 자학과 자멸을 행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그의 진면모를 보여준 것은 포스터에게 생애 첫 번째 아카데미를 안겨준 <피고인>. 데미 무어와 로잔나 아퀘트가 거절한 시나리오에 달려든 포스터를 감독은 반겼지만 스튜디오는 거절했다. “강간할 만하지 않다”(not rapeable)는 것이 이유였다.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앤서니 홉킨스만 돋보이고 클라리스는 그저 말랑말랑한 여성캐릭터에 그칠 것”이라는 모두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연한 <양들의 침묵>으로 다시 한번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아주 어렸을 때를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이곳(할리우드)이 나를 집어삼킬 수 있음을 알았고,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 자신을 지킬 줄 알았던 아역배우는 이제 할리우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조디 포스터의 <브레이브 원>은 배우의 모든 경력과 인생을 다양하게 암시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영화의 안팎에서 피해자였던 그녀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모습은 위험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물론 포스터 자신이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표식이며, 한 세대에 대해 언급하는 영화”라며 무한한 애정을 표하는 <택시 드라이버>와 <브레이브 원>은 전혀 다른 뉴욕을 배경으로 하며, 두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브레이브 원>과 관련하여 조디 포스터의 개인적인 경력은 아쉬울지언정 우려스럽지는 않다. 그는 평생, 실패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에도 지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45살이 되는 그의 꿈은 “더 많은 영화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 그 영화들이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모두에게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용기있는 자’(Brave one)는 영화 속 캐릭터 베인이 아니라 포스터를 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