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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한국 사람입니까
이영진 2007-10-02

제3회 재외동포영화제 10월3일부터 7일까지 장·단편 50편 상영

누구나 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라난다고 믿는 내성의 아이덴티티가 면역력이 없음은. 그 면역력 없음이 때론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부정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된다는 건 역사가 명증하고 있다. 바깥에서 묻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그렇다. 민족과 같은 개념이 그렇다. 이 경우, 안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깥으로 내던져진 누군가에게서부터 답이 온다. 온갖 외파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남는 무엇, 바깥의 ‘그들’에게 정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주어지면 위험하지만, 찾아가는 건 의미있다. ‘조선, 고려, 꼬레아, 코리아 소통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세 번째 재외동포영화제는 익숙한 대상을 바깥에서 묻고, 사유하는 자리다. 때만 되면 빨간 옷 입고 ‘오, 필승 코리아!’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한국 사람입니까?”

10월3일부터 7일까지 닷새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등에서 제3회 재외동포영화제가 열린다. “재외동포 감독이 연출했거나 재외동포의 삶이나 이주민을 소재로 한” 50편의 장·단편영화가 소개되는 이번 영화제는 희미한 민족 정체성을 어떻게든 자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이민 1세대들의 열정을 담은 ‘이주’, 분단으로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의 고민을 담은 ‘다음세대’, 평화란 누군가가 전해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긍정적 이념으로서의 ‘통일’, 우리란 700만 해외거주 동포들과 한국사회에 발디딘 100만 이주민들을 제하고 만들 수 없다는 ‘이웃사촌’ 등 모두 4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사할린 동포’에서 ‘코시안’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 ‘하나’로 불릴 수 있는 건 같은 피가 몸속에서 흐른다는 혈연적 유대에 앞서 자신에게 주어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그 사실로부터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

이주 섹션에서 상영되는 개막작 <강을 건너는 사람들>(감독 김덕철)은 이를 잘 보여주는 선택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가와사키 제철소에 강제 동원되었다가 파업주동자로 지목되어 한국으로 돌려보내진 뒤 평생을 합사반대운동 등 잊혀진 역사 되찾기에 바쳤던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유족회 김경석 회장, 생명과 평화만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키타 히로오 목사,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뒤늦게 한·일의 역사를 거꾸로 볼 수 있었다고 가슴을 치며 고려박물관 건립에 나선 재일한국인 2세 송부자, “조센징”이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한·일의 비뚤어진 역사를 되찾으려고 애쓰는 일본인 여고생 다카키 구미코 등 다큐멘터리 속 4명의 주인공들은 모두들 떠나고 싶어하는 가와사키에 남아 한·일, 남북 등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강을 건너려고 애쓰는 귀한 인물들을 번갈아 비춘다. 미래에도 강을 건너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선연한 작품.

폐막작 <국민회>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이전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 후손인 로베르타 장 감독의 <국민회>는 하와이로 이민을 간 뒤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을 기억하는 후일담으로 가득하다. 이번 행사에서 주목할 만한 이는 재일동포인 마쓰에 데쓰야키 감독. 히키코모리나 오타쿠와 같이 세상과 담쌓은 폐쇄적인 인물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동정>은 재외동포인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와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재일동포 AV(Adult Video) 배우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의 독특한 다큐멘터리 <적나라한>을 내놓았던 그는 재외동포의 문제를 다른 더듬이, 다른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이 밖에 “양부모의 폭력을 피해 군에 지원했으나” 이라크로 파병된 한국인 입양아 오븐의 스토리 <007 수퍼맨의 귀환>, 친어머니와 대면한 경험을 고백하는 <랑데뷰>, 이민을 택한 부모들의 무관심 아래 마약에 시달리는 세대의 고통을 담은 <선물> 등이 상영된다.

예년 영화제에 비해 올해는 부대행사가 더욱 풍성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6일에는 마쓰에 데쓰야키와 <노가다>의 김미례 감독 등이 함께 “영화 만들기와 관객과 소통하기”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이에 앞서 4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덕철, 김동원, 하진선, 박혜정 감독 등이 참여하는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네개의 시선: 한국, 재일동포, 재미동포 4인 감독의 토론’ 세미나가 열린다. 또 7일까지는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 공원에서 ‘다음섹션’에 상영되는 작품들의 스틸사진과 “해외한인학교 2, 3세의 모습을 담은” <다음세대 사진전>이 차려진다. 5일에는 한국관광공사 T2마당에서 지난해 상영작 <건국학교>의 주제가를 작사, 작곡, 노래한 재일동포 가수 김지자의 공연 및 재외동포 영화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참고로 김수용 감독의 <혈맥> 등 재외동포의 삶을 그린 고전영화들을 볼 수 있는 섹션도 마련되어 있으며, 헬렌 리 감독의 <먹이>,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은 오빠>, <마이파더>의 황동혁 감독의 단편 <기적의 도로>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www.coreanfilm.net/). (시간표는 134페이지 게시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