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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빛을 잃은 벌레들 <무시시>
최하나 2007-09-19

원작의 빛을 잃은 벌레들, 지루한 괴담의 늪에 서식하다

무시(蟲). 문자대로 해석하면 ‘벌레’인 그것은 <무시시>의 세계에서는 정령에 가까운, 초자연적인 존재다. 인간과 함께 살아왔으되,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무시는 때론 인간의 몸에 침입해 병을 낳거나 기이한 자연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시와 인간을 중재하며, 어긋난 흐름을 되잡는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벌레 선생 ‘무시시’다. 독특한 세계관과 기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300여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우루시바라 유키의 만화 <충사>는 국내에도 8권까지 출간되며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충사>를 실사영화로 옮긴 <무시시>는 <아키라> <스팀보이> 등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오토모 가쓰히로의 손에서 탄생했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펼쳐가는 만화를 한편에 압축하면서 영화는 주인공 깅코(오다기리 조)의 사연에 초점을 맞췄다. 어린 시절 무시에 의해 기억을 잃고 무시시가 된 깅코가 자신의 과거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무시를 글자로 봉인하는 탄유(아오이 유우), 무시가 만든 무지개를 찾는 코로(오모리 나오)가 등장해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기승전결을 피하고 병렬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과거와 현재가 부유하듯 교차되는 구성에 일관성과 리듬이 결여된 탓에 서사적 긴장감은 물론 전체적으로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되고 말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두렵고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났던 만화와 달리 영화 속 무시는 그로테스크한 변종의 이미지에 그친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성 너머, 무시로 상징되는 불가해한 존재가 한데 맞물려 커다란 공생의 흐름을 구성한다는 원작의 세계관 역시 맥없이 펼쳐지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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