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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이 상팔자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강병진 2007-09-12

무자식이 상팔자, 돈 벌어서 저승까지

돈이 궁한 세 남자가 한방을 도모한다. 도범(강성진)은 교도소 안에서 산달을 맞이하게 된 아내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영(유해진)은 사기원정결혼으로 날려버린 어머니의 의치치료비를 위해, 그리고 도범의 처남인 종만(유건)은 얼떨결에 그들과 뜻을 모은다. 이들이 목표로 삼은 이는 “하루 판매량 3천 그릇, 월 매출액 7억5천만원”을 벌어들이는 국밥집의 사장 권순분 여사(나문희). 하지만 어렵사리 납치한 권 여사는 납치된 자로서의 두려움과 긴장은커녕 오히려 이 가련한 젊은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사연을 듣고 다그치기에 바쁘다. 게다가 몸값을 협상해야 할 권 여사의 자식들은 모두 공사다망하다는 이유로 협상을 거부한다. 겉으로는 거동이 굼뜨고 생각이 더뎌 보이는 권 여사의 진가는 이때부터 드러난다. 한평생 국밥을 말아 자식들을 건사했던 권 여사는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에 자신의 몸값을 500억원으로 불리고 자식들과 경찰, 언론을 상대로 대규모 납치사기극을 꾸민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이 3년 만에 만든 신작이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이 그의 전작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은 어울리기 힘든 사람들이 우연히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다. 새벽녘의 주유소가 깡패와 경찰, 재벌 2세, 학생들의 질펀한 놀이터였고 광복절을 앞둔 교도소가 죄수와 간수, 정치인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곳이었던 것처럼 이번 영화의 납치극 역시 노인과 젊은이가 부딪치는 계기다. 하지만 이전의 영화가 한데 모인 자리를 통해 권력의 역전을 시도했다면,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은 화해무드를 조장한다. 세대간의 화해이자 부모 자식간의 화해다. 추석 명절 영화로는 적합한 주제이지만, 덕분에 이전의 김상진 감독 영화가 가졌던 통쾌함과 전복성은 다소 누그러졌다. 권순분 여사라는 막강 캐릭터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인물들과 집단간의 관계는 균형을 잃고, 경찰과 언론이 합세해 일으키는 덩치 큰 소동 또한 큰 웃음을 주기에는 밋밋하다. 하지만 평생 국밥만 말았을 할머니가 각종 디지털 기계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한다는 점이나, 240cm의 키를 가진 여성 캐릭터 등 코미디 장르이기에 용인되는 황당한 설정은 눈에 띈다. 게다가 김상진 감독 영화의 특징적인 마무리인 ‘난장 격투신’이 없다는 점도 변화로 볼 수 있을 듯.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시작으로 <마파도>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노인코미디가 또 다른 색깔로 등장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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