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의 필모그래피에 놓인 두편의 뮤지컬영화. <밤과 안개>(1955), <내 사랑 히로시마>(1959),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1961)와 같은 초기 대표작들로 알랭 레네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뮤지컬 장르인 <입술은 안돼요>(2003)와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1997)는 분명 예외적인 작품으로 느낄 것이다. 물론 대화 중간에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는 <뮤리엘>(1963)이나, 인물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는 순간에 음악으로 그 단절을 넘어서는 <집에 가고 싶어>(1989) 등을 통해 알랭 레네의 오랜 음악적 관심을 말하거나, 그것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뮤지컬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시간에 대한 영화적 실험으로 현대영화를 이끌었던 알랭 레네와 뮤지컬 장르를 조화시키는 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알랭 레네에게 뮤지컬이 낯선 장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입술은 안돼요>가 그저 그런 영화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알랭 레네의 두 번째 뮤지컬영화인 <입술은 안돼요>는, 그의 전성기 시절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혁신적인 실험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어느 봄날 서로의 귀에 구애하는 새들의 사랑 노래를 듣는 듯한 흥겨움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질베르트 발랑드레이(사빈느 아제마)는 미국인 에릭 톰슨(랑베르 윌슨)과 이혼한 경력을 숨긴 채 프랑스의 돈 많은 사업가 조르주(피에르 아르디티)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르주가 사업상 친교를 맺기 위해 초대한 인물이 에릭 톰슨으로 밝혀지면서, 발렝드레이와 여동생 아를레트(이사벨 낭티)는 비밀 사수 대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여러 인물들이 비밀을 사수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유치한 모습들이 씨줄과 날줄로 어지럽게 얽혀가지만, 레네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깔끔한 유머로 영화를 다듬어간다. 연극적 세트 위에 인물들을 풀어놓고 시치미 딱 뗀 채로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하려는 태도는 얼핏 <미국인 삼촌>(1980)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 레네가 원하는 것은 분석적 자세가 아니라 좀더 넉넉한 시선으로 사랑의 마술을 예찬하는 쪽에 가깝다. 서로에 대한 감정과 진실을 속인 채 벌이는 사랑 소동의 앙증맞은 유쾌함은 여든을 훌쩍 넘긴 알랭 레네가 감히 회춘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뻔하디 뻔한 스토리라인의 로맨틱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을 <입술은 안돼요>는 사랑의 마술적 특성을 조르주 멜리에스식의 영화적 마술을 경유하여 드러냄으로써 봄날의 생동감을 작품에 불어넣고 있다. 실제로 현관으로 달려가던 인물이 출구에 이르기도 전에 마술처럼 사라져버리고, 종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는 첫 키스의 순간에 몸이 붕 하고 허공에 떠오르는 영화적 마술이 첫사랑의 설렘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의 엔딩장면, 중국식으로 꾸며진 밀실(密室)에서의 치정(癡情)이 사랑으로 변모하며, 세 커플의 경악스러운 만남이 오히려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순간의 마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사랑과 영화, 이 둘 모두는 적당히 숨겨진 비밀과 마술 같은 신비함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않는가. 알랭 레네는 사랑의 비밀과 이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들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관객을 매혹시키는 영화의 숭고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레네의 작품이 나올 때마나 그의 유작이 되진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알랭 레네는 지난해 신작 <공공장소에서의 사적 두려움>을 발표했다. 잉마르 베리만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떠나버린 올 여름, <입술은 안돼요>는 그 계절의 끝자락에서 거장들이 떠난 허전함을 달래주는 흥겨운 위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