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 보인다.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 촬영 스케줄이 빡빡한가보다.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이 없어서 정신없이 찍고 있다. 진행이 빨라서 좋기는 한데, 적응이 힘들다. 요즘은 체력이 달리는 것도 같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지. 그동안 너무 안 쉬었나봐. (웃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시나리오에서는 어떤 매력을 느꼈나. =영화가 다루는 묘한 감정들이 재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기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부부로 나오는데다가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니까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남편이 싫어진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 아닌가.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는 건 실제로는 연애를 하면서 양다리를 걸친 적이 없었다는 건가. =양다리를 걸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면서 다른 남자를 괜찮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먼저 차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좀 필요했을 것 같네. (큰 소리로) 어차피 헤어질걸!! (웃음)
-서유나는 드라마 <12월의 열대야>의 오영심이나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김지수와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고, 그로 인해 항상 발버둥치며 살아야 하는 여자들이다. 특별히 그런 역할에 끌리는 이유라도 있나. =우선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니까. 유나는 집안 가장이면서 어머니, 동생과 갈등이 있는 여자다. 물론 내가 실제로 그런 갈등을 겪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오는 고단한 느낌들은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와 청순하고 가련한 여자들은 안 맞는 것 같다. 언제나 연기의 폭이 큰 캐릭터에 끌린다.
-과거에는 청순가련형 캐릭터도 하지 않았나. =언제 내가 그런 걸 한 적이 있었던가.
-옛날에 드라마 <폴리스>에서 맡은 엄지가 그런 캐릭터가 아닐까. =하하하. 그때 엄지는 내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거였다. 내가 엄지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거든. (웃음) 하지만 <부자유친> 이후로는 대부분 자신감이 넘치고 능력있는 여자를 연기했다. 물론 이상하게 항상 사랑에서만큼은 성공하지 못하는 여자였지.
-평소 여러 인터뷰에서 비쳐지는 엄정화의 이미지가 그렇다. 이제는 매우 성공한 배우이고 가수인데 항상 연애만큼은 자신이 없는 듯하더라. =내가 외롭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웃음) 그래서 이젠 그런 이야기 안 하려고 한다. 내가 너무 가여워 보이더라고. (웃음)
-지금까지 한 작품들을 보면 유독 남자랑 싸우는 장면이 많다. 단순한 말싸움도 있지만 발길질, 주먹질로 싸우는 장면도 꽤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링 위에서 싸우던데. =<오로라공주> 때도 아주 혹독하게 싸웠지. (웃음) 이번에는 돌려차기를 해야 했는데, 다리를 쫙 올리는 게 어렵더라.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친구랑 술 마시다가도 연습하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했으니까. 몸은 많이 지쳤지만 재밌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장면들을 보고 내가 태웅이를 평소 많이 때렸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러지 않았다. 그것들이 나를 많이 때렸지. (웃음) 내가 당시 별명이 곰이었는데, 형제들 사이에서 정말 많이 치이고 살았다. (웃음)
-어느 때부턴가 여성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하유미가 연기한 언니 같은 이미지랄까. =나도 연기를 통해 여자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게 재밌다. 아마도 <싱글즈>의 동미가 그런 이미지를 준 것 같다. 처음 <싱글즈>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어라? 내가 주인공이 아니네?” 이랬다. (웃음) 하지만 동미란 여자가 너무 좋더라. 내 자신에 숨어 있는 성향을 느꼈다.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끌고가면서 자기가 먼저 이야기하는 여자 아닌가. (웃음)
-덕분에 예전과는 달리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 것에 아쉬움은 없나. =난 너무 좋다. 내가 한 연기를 통해서 여성들이 함께 공감하는 게 즐겁다. 사실 예전에 노래 부를 때도 여자 팬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남자 팬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긴 그랬겠다. 섹시하니까. 하하하. (큰 소리로) 그럴 때가 있었지! (웃음)
-이번에 함께 출연한 두명의 배우가 연애설과 결혼으로 떠들썩했다. 옆에서 보기에 눈꼴신 건 없었나. =아니, 정말 예뻐 보였다. 평소에 채영씨가 회식하다 말고 일찍 가야 한다고 하면 빨리 가게 해주려 했다. 나도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아니까. 얼마나 빨리 만나고 싶겠나. 동건씨도 촬영 중간에 지혜씨가 몇번 와서 함께 만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내가 연애할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웃음)
-많은 여성 팬들은 엄정화란 배우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랄 것도 같다. 언제나 멋있는 언니로 남아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게 결혼을 하고 안 하고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런 멋진 언니로 남고 싶은 마음은 있다. 사랑에서도 더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가수, 연기자로 쭉 활동해왔다. 지치는 구석은 없나. =왜 없겠나. 내 욕심이나 의지는 여전히 똑같은 것 같지만 또 앨범을 내야지 하다가도 어느 순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도 누가 내 노래와 공연을 기다리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제일 슬프다. 또 주위에서 자꾸 내 나이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게 무섭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어떻냐고 물어보거나, 결혼은 안 하냐고 묻고 30대 중반이 넘었으면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갇혀버린다. 나는 후배 연기자나 후배 가수를 위해서도 하나의 길이 되고 싶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