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고전영화를 주로 소개해온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동시대 유럽 거장전’이 6월21일부터 7월8일까지 개최된다. 영도(0°)에서 비등점까지, 미카엘 하네케에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까지의 유럽 거장들이 품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온도다. 이 압도적인 라인업에 실감이 안 날 수도 있다. 동시대 유럽 영화를 이끌어가는 대가들의 가슴 뛰는 작품들로 꽉 짜여져 있으니. 짭짤한 부산의 바닷바람 맞으며 볼 수 있는 이 특별전에는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이나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감미로운 커피, 뭐 이런 유럽은 없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로 구성되는 낯선 삶의 실존감과 무게감이 거친 화면을 통해 말 그대로 육박해올 뿐. 유럽의 거장들이 현실을 해부하는 시선은 그야말로 하드코어적이다. 카메라 앞에서 현실의 거칠고 적나라한 세부들은 숨김없이 노출되며,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외설적이다. 이 영화들에는 어떤 강요되는 윤리도 없다. 그것은 영화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을 받고 돌아가는 관객에게 무책임하게 던져진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무책임함에 자신을 맡겨도 좋지 않을까.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2003)로 판타지와 리얼리티가 뒤섞인 공간에 대한 뛰어난 창조성으로 주목받았던 알랭 기로디의 영화 세계는 <때가 되었다>로도 이어진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비타니’라는 봉건사회는 실존의 근거가 없는 완전히 상상적으로 구성된 사회이다. 이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엔 현실사회와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가 뒤섞여 있고, 뒤틀린 밴디트(산적) 무비 형식으로 된 이 영화에는 자본가와 산적, 스테인리스 스틸 냄비와 용병, 납치와 동성애가 공존한다. 한편 무성영화 시절부터 현재까지 창조적 장수를 누리고 있는 포르투갈의 전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불안>과 <편지> <나는 집으로 간다>도 만날 수 있다. 부르주아의 생활에 담긴 심리적 조화의 파괴를 연출해온 이 감독은 내년에 100살이 된다.
끓어넘칠 듯 꿈틀대는 징글징글한 재기의 감독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의 영화도 놓칠 수 없다. 데이비드 린치의 <광란의 사랑> 원작자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악마와 함께 춤을>은 서로의 야생적 본성을 간파하고 운명적으로 만난 두 남녀의 황당무계하고 무법적인 길 위를 따라간 영화다. 백인 중산층 삶에서가 아니라면 위선은 없다, 이들의 유쾌하고 능동적인 위악만 있을 뿐. 부두교 의식, 마약 거래, 백인 부르주아의 가식, 총과 칼과 피와 살인. 모든 것들이 들끓듯 융합되어 뜨거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정서적 순수함이 브레송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브루노 뒤몽의 <예수의 삶>은 그에게 장 비고 상을 안겨준 데뷔작. 오토바이를 탄 십대들이 살고 있는 작은 프랑스 변두리 마을의 일상을 단순히 보여줄 뿐인 이 영화의 감동은 그 단순함을 능가한다. 속도와 소리와 배우들의 동선과 표정 이 모든 것에 특유의 리듬감이 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 폭주하고 어느 순간 멍하니 풀밭에 앉아 있다. 그것이 10대다. 그들의 삶에서 권태를 포착하고 이를 묵묵히 따라가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 또 다른 오토바이를 탄 ‘책임감 있는’ 10대 소년 이고르의 성장을 다룬 다르덴 형제의 <약속>과 비교해서 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주로 90년대와 2000년대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이번 특별전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나는 집으로 간다>(2001),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의 범죄로드무비 <악마와 함께 춤을>(1997),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의 데뷔 장편 <파수꾼>과 <나의 성생활: 나는 어떻게 싸우는가>(1992), 다르덴 형제의 <약속>(1996)이 그것들. 더불어 은은한 입소문을 탄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와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