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나도 이게 영화가 될까 싶더라
이영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05-30

<천상고원>의 김응수 감독

<천상고원>은 우연이 빚어낸 독특한 영화다. 5년 전 히말라야 산맥의 라다크에 발을 들인 것도 우연 때문이었고, 이후 배우까지 겸하게 된 로드무비를 우여곡절 끝에 만들게 된 사연 또한 우연의 연속이다. 원하는 대로 이뤄진 것 하나 없었지만, 김응수 감독은 <천상고원>이 자신이 영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20대는 세상과 싸우느라, 30대는 세상에서 헤매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야 좀 편안해졌다”는 김응수 감독은 흡사 “육체의 소멸을 통해 정신적인 탄생을 맛보는” 영화 속 K 같았다. “저기 하늘의 쪽빛 좀 보라고!” 두 차례의 라다크 여행만으로는 갈증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일까. 5월31일 개봉하는 <천상고원>의 스탠디 포스터를 가리키며 그는 연신 흥분의 입맛을 다셨다.

-라다크를 처음 간 게 언제인가. =2002년 <욕망> 편집 끝나고서다. 허전하고, 할 일도 없고. 게다가 월드컵도 끝났다. 재충전의 기회도 필요해서 떠났다. 처음부터 라다크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현란한 색을 보고 싶어서 인도에 갔다. 미술하는 친구가 거기 가면 색에 대한 개념이 바뀐다고 해서.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너무 더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북쪽으로 가면 조금 시원해질까 싶어서 무작정 올라갔는데 그렇게 라다크를 본 거지.

-방랑은 젊었을 때 하는 거 아닌가. =기질적으로 방랑벽이 좀 있다. 러시아에서 유학할 때도 여행 중에 레이더 기지에 들어가 체포돼서 억류된 적도 있다. 무르만스크 아나? 1970년대 말에 피격당해서 KAL기가 불시착한 곳으로 유명한. 왜 박정희가 핵 기술 개발을 위해 뭔가를 들여오다가 그랬다는 설도 있잖나. 한번은 무르만스크 이야기를 써볼까 싶어 북으로, 북으로 가다가 우리로 치면 일종의 민통선 지역에 들어갔다. 군인들이 갑자기 총 들이대면서 허가증 내놓으라는데 뭐가 있어야지. 군사기밀 빼내러 온 스파이라고 생각했는지 처음엔 취조도 하고 그러던데 나중엔 제발 좀 가라고 그러더라고. 나야 그 사람들하고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그런 기질이 지금도 남아 있나. =아니. 겁 많아졌지. 시베리아를 마구 횡단하고 그랬는데. 내가 가는 마을마다 외국 사람은 눈 뜨고 처음 봤다고 하는 그런 오지였다. 여담인데, 그런 곳에 가면 사람들이 카퍼레이드를 해준다. 시장부터 경찰서까지 다 구경시켜주고. 근데 나도 나이 먹으니까 아무래도 깃발 따라다니는 편한 여행을 하게 되더라. 인도에서 돌아오지 않고 라다크에 가게 된 것도 예전처럼 한번 모험을 해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미 몸이 편한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낭만적인 방랑생활이 쉽진 않았지만.

-<천상고원>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됐다. 관객 대부분이 관람 뒤 멀미 증세를 호소했는데. (웃음) =실제 가면 더하다. 인도 북쪽으로 가다가 외국인 관광객 무리를 보고서 라다크로 가는 로컬 버스를 탔는데 평생 잊을 수 없는 나이트 메어가 됐다. 20년은 돼 보이는 버스는 언제 바퀴가 빠질지도 모르겠고. 좁은 차 안에선 닭들이 우글대지. 거의 반죽음 상태다. 이동 중에 천막 휴게소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해발 4천, 5천m 되니까 굉장히 춥다. 고산병 때문에 머릿속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 것 같고. 불타는 호박 같은 별을 보면서 밤새 구토했지. 하늘은 왜 저리 아름다울까 씨X, 하면서.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는데도 다시 가고 싶던가. =처음 갔을 때도 곧바로 다시 넘어오지 못했다. 기력을 회복해야 했으니까. 그곳에 머물면서 일제 중고 사진기 하나를 구해서 마을 사람들을 찍었다. 한국 사람을 우연히 만나서 200파운드쯤 꿨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돌려주겠다고 하고. 그곳에서 만났는데 설마 사기치겠느냐고 생각했는지 선뜻 빌려주더라. 마을 사람들에겐 나중에 사진 갖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런데 3년 동안 까먹고 있다가 <달려라 장미> 끝내고 난 뒤 생각나더라. 왜 영화 한편 끝내면 ‘센치’해지잖나. 기자도 마감하면 좀 센치해지지 않나. (웃음) 사진 보내주려고 하다가 갑자기 다시 가고 싶다, 아 내가 필요할 때 찍고서는 금세 약속을 잊었구나, 자책도 들고.

-다시 여행을 가는 것과 영화를 찍으러 가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나도 이게 영화가 될까 싶었다. 찍었던 사진을 다시 돌려준다는 것만으로는 너무 사적이고. 또 시나리오는 없다고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배우들이 몰입할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픽션이 필요했다. 누군가 그곳으로 떠나 있고, 누군가를 찾아 떠나는 식의 구조는 그래서 만들어진 거다.

-주인공 K는 E의 편지를 받고서 라다크로 향한다. 하지만 E의 편지는 K의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실연당한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분명 아니다. (웃음)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우리가 스스로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을 때는 이미 소진되고 갈기갈기 찢긴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뭔가 채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인데, 라다크에 가는 K도 마찬가지 상태고.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 만났고, 찍었던 사람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면. =실제 주인공은 결국 못 찾았는데, 증명사진 찍듯이 차려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보던 아이가 있었다. 이사갔다고 하는데 영화 찍으러 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만 했다. 새벽에 소에게 여물을 주던 할아버지와 손녀, 엄마가 사준 ‘아이스케키’ 빨면서 정류장에서 맴돌던 내 어릴 적 모습 같은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사진을 주면 얼싸안고 되게 좋아할 줄 알았는데, 다들 아주 무덤덤해서 놀랐다.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까 뭔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혼자 미쳐서 오버하는 장면들이 꽤 있더라. 다 잘랐지, 뭐.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관습화된 제스처가 있는데 그들에게는 그게 없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는데, 그들은 누군가가 떠나도 항상 곁에 있다고 믿는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K 역까지 직접 맡았다. 처음부터 연기할 계획은 아니었을 텐데. =원래는 김선재(<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씨가 하기로 했다.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는 식이었는데, 그랬다면 좀 감성적이었겠지. 근데 다 세팅해놓고 일주일 전에 배우가 못 가게 됐다. 그래서 여자를 남자로 바꾸고 내가 들어간 거지. 언제는 내 뜻대로 됐냐, 이게 운명이야 그러면서. (웃음) 김선재씨 본인은 아이들 돌보면서도 중간에 짬을 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대본으로 만들기도 하고 두달 동안 준비했는데 못 가게 됐으니 얼마나 또 맘이 아팠겠나. 나중에 내레이션을 부탁할 때도 굉장히 미안했다.

-<천상고원>은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영화다. 감독이 카메라 안에 들어가고, 또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내가 연출자의 자리에 있었다면, 자꾸 드라마를 만드려고 했을 것이다. 카메라를 도구로 쓰려고 했겠지. 그런데 <천상고원>에선 난 그저 한명의 인물일 뿐이다. 그러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어떤 풍경들을 카메라가 잡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물이 관계맺는 방식이나 시선이 교차하는 것이나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이 맘에 든다. 우연한 계기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정하고 뭔가 의도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스탭들은 고산병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다 했다. 박기웅 촬영감독은 거의 무아지경에서 카메라를 들이댔고. (웃음) 나중에 그러더라. 나라도 그렇게 잡고 있어야지 누가 하겠냐고.

-촬영하면서 잡아둔 흐름이 있었겠지만, 편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버전도 많았을 테고. =다 합하면 분량이 40시간 정도 된다. 몇개의 버전이 있었다. 남자주인공을 내가 아닌 (이)재원씨쪽으로 가는 것도 가능했고. 그랬으면 난 그저 사진 돌려주러 라다크로 가는 좀 이상한 성격의 인물이 되었겠지. 그보다 좀더 큰 고민은 내가 그쪽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냐, 누군가가 이곳에서 나를 밀어낸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후자는 갑자기 내가 사라지는 형태가 되어야 할 텐데 그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고. 그랬다면 내가 할 수도 없었겠지. 내 얼굴이 좀 주변부적이잖아. (웃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전반부에 등장하는 외국인 친구는 영화 중간에 갑자기 사라진다. =해리라는 친구다. 라다크 가는 도중에 만난 외국인 배낭여행객이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또 자신이 직접 영상물을 몇편 연출하기도 했고. 뉴질랜드에서 왔는데 피터 잭슨이 옆집에서 살았다고 하더라. (웃음) 근데 박기웅 촬영감독이 도중에 그 친구까지 다 찍을 수는 없겠다고 하더라고. 세명을 잡아야 하니까 숏도 복잡해지고 인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고. 그래서 떨어버리자고 하는데 나보고 악역을 맡으라고 하더라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랬지. “야, 해리야, 지금 찍고 있는 분량은 다른 인물한테 초점을 맞출 거니까 다음 마을에서 만나자” 그래놓고 안 나갔지, 뭐. 나중에 메일이 왔는데 꽤 기다렸다고 하더라. 미안하긴 한데 그 친구도 자기 스케줄 따라 갔다고 하니, 뭐. (웃음)

-오지에서도 촬영분량 모니터를 했나. =박기웅 촬영감독이 집요한 사람이다. 전기가 들락날락하는 그곳에서도 TV 빌리고, 발전기 끌어다가 어제 것 붙여봤는데 어떻냐며 의견을 구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난 “알아서 찍어. 난 몰라. 섭외하고 지프차 구하기도 빠듯해 죽겠어” 그랬다.

-우연한 여행으로 시작했지만, 영화 완성 뒤엔 필연적으로 아쉬움이 따를 것 같다. =라다크에서 만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점을 더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과잉이 됐을까, 아니면 성취가 됐을까. 머릿속에서 계속 이어붙여 보긴 하는데. 또다시 가게 된다면, 시점을 바꿔야 하나 캐릭터를 바꿔야 하나. 아니 좀더 근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싶기도 하고.

-<천상고원2>를 찍고 싶지 않나. =상업적인 기대와 상관없이 다른 버전을 만들고 싶다. 물론 다시 갈 수도 있겠지. 라다크를, <천상고원>을 기억하는 이들을 위해 7, 8시간 정도 되는 버전으로 만들고 싶다. 편집부터 마스터 뜨는 것까지 누가 돈을 대주고 함께 해줘야 가능하지만. 가능하다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보고 싶다.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부터 시작된 궤적이 <천상고원>에서 완성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전작들을 다시 돌이켜보면 어떤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는 남의 시선 의식 않고 만든 영화라 자유로웠다. 일부러 아마추어리즘을 끌어들여서 거칠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동안 그게 좀 쑥스러웠다. 하지만 요즘 다시 보면 세련돼 보이기도 한다. <욕망>이나 <달려라 장미>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천상고원> 찍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난 누군가와 게임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런 쪽에 재주가 없구나. 아무리 게임을 해도 난 변하지 않는구나. 근데 그걸 인식하고 나니 외려 편해지더라.

-전작들은 사회파 영화, 포르노그래피, 코미디, 로드무드 하는 식의 표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두 다 일반적인 관객이 기대했던 통념을 배반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내 영화를 관념적이라고 비판하는데 난 구체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원하는 구체와 구체가 만나는 영화는 안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영화를 평하는 것은 스코어가 얼마냐,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 등의 몇 가지 기준밖에 없는데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게 필요하다. 그걸 위해서라도 난 다른 영화를 만들 거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다큐멘터리에도 배반의 요소가 있을 것 같은데. =맞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지금 편집 중이다. <쇼아>처럼 인터뷰로만 이뤄져 있다. 감추는 게 있어야 픽션도 흥미롭듯이, 다큐멘터리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보여주고 재연하는 방식은 아니다. 다큐 준비 과정에서 10시간이 다 되는 <쇼아>를 한 호흡으로 봤다. 생존한 사람들의 표정과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방식과 그것을 파고들어 가는 감독의 태도 때문에 가능했다. 끔찍한 상황을 보여주지 않지만, 정말로 리얼하게 느껴지더라.

-기존에 1980년대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어떤 형식적 차별점이 있나. =1980년대를 그리는 대부분의 다큐는 초점이 없다. 그저 풍경을 제시할 뿐이다. 노무현을 이야기해도, 이한열 열사를 말할 때도, 광주를 떠올릴 때도 똑같은 풍경들이 나온다. 뒤따라 항상 같은 음악들이 붙고. 그것이야말로 구체성이 없는 거다. 지겹더라. 모든 과거를 신화로 그리긴 싫었다. 과거라 불리는 시대가 어떻게 현재 사람들의 삶에 침투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공개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왜 80년대를 저렇게 그리느냐, ‘쟤는 아직도 저런 걸 만들어’ 하는 반응들이라면 관심 안 둘 생각이다. 그러라지, 뭐. (웃음)

-1980년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에게선 어떤 피곤함이 느껴진다. 중심에 있었으니 그 시대를 떠올리는 것 조차 피곤할 것 같기도 한데. =피곤하지. 하지만 세상과 싸우는 게 피곤한 건 아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같이한다는 게 좀 피곤했지만. 왜 이런 말 있잖나.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내게 80년대의 기억들은 피곤함을 넘어 공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모두 버리려고 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나는 술자리에서 라이터를 무의식적으로 집어간다. 이사할 때 보면 화장실 선반 위에 라이터가 100개씩 쌓여 있다. 무의식을 확인할 순 없지만, 불이 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생명을 태운 친구들을 많이 봤고.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서 나오는 불타는 장면도 뜬금없는 게 아니라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침공하면서 방화했던 유년의 기억이 올라온 것 아닌가. 전엔 몰랐는데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보면 그런 비슷한 장면이 있더라. 군복이 떠오르는 녹색 공포도 있는데 혼자서 자지러졌다가 안도하고 그런다. 그래도 그때의 시간들이 내 삶의 긴장이 된다.

-신작 준비는 어떻게 돼가나. 버지니아 울프의 원작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는데. =아버지를 죽인 아들 이야기다. 한번은 아버지를 죽여야 할 것 같다. (웃음) <등대>라고 가제를 붙여놔서 그렇지 원작으로 삼은 건 아니다. 굳이 유사한 모티브를 찾는다면 이런 거다. 소설 첫 부분에 다음날 등대에 놀러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는 아들에게 심술궂은 아버지가 “내일은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잘 묘사된 소설이다. 준비하는 영화에서 우리를 통제하는 세상이라는 아버지를 한번 깨부수고 싶다. 그래야 애증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실현 불가능한 나만의 판타지일지라도.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