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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라

5월1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룬 파로키 특별전, 전주영화제에서도 상영

모든 계급적, 성적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조화로운 환상 속으로 밀어넣고 관객에게 위안을 주는 안정된 형태의 극영화는 어쩌면 형식적으로 포르노그래피보다 더 위험한지도 모른다. 포르노는 소기의 목적을 위해 직설적인 화법과 분절된 서사를 구사하며 매우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세팅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이것은 가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 실험과 새로운 영화문법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들을 계속해온 독일 감독 하룬 파로키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전주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그의 대표작을 올해 전주영화제 ‘영화보다 낯선’ 섹션과 5월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시네마테크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룬 파로키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힘과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통일된 세계관이 얼마나 일상화된 폭력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것을 폭로해왔다. 마치 한편의 논문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들은 현대사회에서 오락적 기능만 지나치게 부각돼온 영화가 철학적, 지적 성찰의 도구이자 정치적 발화의 실천적 매체로서 얼마나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944년 체코 동부에서 출생한 그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이며, 스스로 이미지를 창작하는 동시에 이미지의 생산과 수용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에는 1960년대부터 41편이 넘는 작품을 만든 파로키 감독의 대표작 8편이 소개된다.

주로 독일권 지역에서만 알려졌던 까닭에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지의 감독”이라는 독특한 별칭이 붙은 하룬 파로키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이다. ‘당신이 네이팜탄 희생자에 대해 눈을 감고 이 화면들을 보지 않는다면 사실을 외면하고 컨텍스트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다. 그는 뉴스화면과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는 극화된 화면과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미명하에 자본과 과학기술이 담합하여 저지르고 있는 무차별적 살인을 고발한다. 무려 30년 뒤에 <파로키에게 배운 것>을 볼 수 있었던 데 분노한 미국의 갓밀로우 감독은 이 작품의 모든 숏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이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그는 파로키의 작품을 기존 장르에 포섭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현실에 대한 포르노그래피”라고 표현한다.

파로키의 작품은 대부분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설파한다. 그는 조작없는 화면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미지가 선별되어 제시될 때 조작이 개입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두 전쟁 사이에서> <혁명의 비디오그램> <세계의 이미지와 전쟁의 비명>에서 파로키 감독은 나치 정권과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그리고 전쟁 일반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드러낸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정치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의 모든 분야를 향한다. <플레이보이> 화보 촬영장을 담은 <이미지>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으로 간주되는 성적 욕망이 어떻게 이미지를 통해 조작되는지를 폭로하고, <쇼핑세계의 창조자들>은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를 최대한 자극하면서 상품 이미지를 통해 환상을 조장하고 소비패턴을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설계도면 위에서 순수하게 물량화되는 인간의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실업자, 대학면접 실패자 등 사회진입에 실패한 이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그 관문을 통과하도록 훈련받는 과정을 담은 <인터뷰>는 본래의 자기를 버리고 사회가 원하는 자아 이미지를 구축하도록 강요받는 과정에서 영상이미지와 비디오카메라가 활용되는 방식이 부각된다. 하룬 파로키는 내용적으로 자본주의와 독재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동시에 이미지란 무고한 시선에 의해 포착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이 현실의 이미지를 지배하는 모든 힘에 대해 각성하고 투쟁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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