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윈터(힐러리 스왱크)는 종교적인 기적의 허상을 파헤치는 과학자. 한때는 그녀도 신의 부름에 영혼을 불사르는 목자였으나 선교활동 중 어린 딸과 남편이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하자 종교를 버리고 과학을 신앙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루이지애나주 시골 마을 헤이븐에서 더그 블랙웰(<원초적 본능2>의 데이비드 모리세이)이라는 근사한 사내가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현상을 조사해달라며 찾아온다. 헤이븐의 강물은 핏물처럼 검붉게 물들고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간다. 이 모든 것은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신이 유대인을 억압하는 이집트에 내렸던 10가지 재앙과 똑 닮아 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마을 주민들은 12살짜리 금발소녀 로렌(안나소피아 롭)이 사탄의 원흉이라고 믿지만, 캐서린은 모든 재앙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앙은 계속된다. 이가 들끓기 시작하고 독종(毒腫)이 사람들을 쓰러뜨리자 캐서린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리핑 10개의 재앙>은 그간 TV계에서 활동하다 호러영화 전문제작사 ‘다크캐슬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귀환한 스티븐 홉킨스의 신작이다. 프로덕션디자인은 근사하고 특수효과는 예쁘다. 장르영화 팬이라면 끈적끈적한 루이지애나주 시골에서 <프레데터2>의 LA나 <고스트 앤 다크니스>의 인도를 떠올릴 법도 하다. 하지만 영화 사상 최고로 번질거리는 메뚜기떼 공격 장면을 기가 막히게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리핑…>은 이야기의 절정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가장 큰 구멍은 모조지로 만든 캐릭터처럼 공허한 주인공 캐서린이다. 그녀는 붉게 물든 강물 샘플을 대학으로 보내 조사를 부탁하는 것으로 과학자의 임무를 마친 뒤, 남부 남자 더그 블랙웰을 향한 성적 욕망을 이글거리며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얄팍한 갈등을 거듭하는 데 소임을 다한다. 소녀를 쫓는 주민들의 컬트적 광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오컬트영화로서의 매력은 좀더 나아졌겠지만, 홉킨스에게 그만한 야심은 없었던 듯도 하다.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몰락해간 몇몇 여배우들의 역사를 거론하며 힐러리 스왱크를 애도할 필요까지야 있을까. <리핑…>은 오스카를 수상한 킴 베이싱어가 같은 해 출연했던 또 다른 오컬트영화 <블레스 더 차일드>(2000)보다 조금 낫고, 어떻게 꾸며도 남부 노동자 계급처럼 보이는 스왱크의 용모와 말투는 이스트우드의 명작만큼이나 B급 장르영화에 썩 어울린다. 적어도 <캣우먼>의 할리 베리보다야 훨 참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