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바보같이 행복하고 안전한 일본, 공허하고 지루한 일본, 졸리지만 잠 안 오는 일본.” 주인공 신(오다기리 조)은 대학 캠퍼스 잔디밭을 괴성을 지르며 가로지른다. 그의 얼굴은 질식사 직전이다. 우리에겐 <자살클럽>(2001)과 <기묘한 서커스>(2005)로 알려진 소노 시온 감독의 <헤저드>가 도입부에서 설정한 상황이다.
그의 작품들이 대항하고자 하는 적은 ‘적이 없는’ 일본의 현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안정과 규격’인 듯하다. 하지만 ‘生의 자각’을 위해 이번에 그가 사용한 방법은 공포나 엽기와는 거리가 멀다. 순진하고 유약한 전형적인 일본 젊은이가 다소 독특한(‘헤저드’한) 훈련과정을 거쳐 야심과 뚝심을 갖춘 청년으로 귀환한다는 성장영화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까. 일본에서의 삶에 질려 무작정 뉴욕에 도착한 신은 리(제이 웨스트), 다케다(후카미 모토키)와 한패가 되어 갱 놀음을 한다. 다양한 범죄 행위가 청춘의 치기어린 장난이라는 코드로 일련의 영상시처럼 전개된다. 뉴욕은 일본 현실의 뒤집힌 이미지로서 폭력, 충동, 낭만이 차고 넘치는 반면에 규율과 인과법칙은 존재하지 않는 마찰없는 환상 공간으로 묘사된다. “완전한 시나리오는 촬영이 끝나고야 나왔다”고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형식 또한 즉흥적이다. 연이은 고함과 격렬한 몸동작, 흔들리는 카메라워크도 충동 이미지를 배가한다. 작품의 문제제기 수준을 가늠할 만한 장면도 있다. 주인공들이 웨스턴 <롱 라이더스>(1980)의 복장을 하고 친구 가게에 난입하여 난사하는 신이다. 이는 작품 전체의 환유이기도 한데 연극적 긴장을 만들어봄으로써 (적을 만들기보다는) 끈끈한 동료애를 먼저 만드는 게 어떠냐는 재치있는 설득이다. 반면에 자유 갈구, 도쿄 귀환의 강박, 젊음의 창조성에 관한 알레고리는 다소 유치하다.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1983)을 좋아한 나머지 어린이 내레이션 방식을 택했다는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한국과의 관련성 하나 더. 경찰차에 주인공 세명이 정면을 보고 쫓기는 장면에서 다케다는 자신이 재일동포였다고 외친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으며 발 닿는 곳이면 다 내 땅이다’라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대단히 일본적이다. 다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뉴욕의 뒷골목 이미지가 스크린 외부에 존재하는 일본 현실의 딜레마를 묘사하는 반영 장치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