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리브스는 195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다. 1951년부터 58년까지 방영된 TV시리즈 <슈퍼맨의 모험> 하나로 리브스는 18년간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단숨에 미국 모든 서민 가정과 아이들의 꿈이자 이상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91%까지 치솟았다. 소년들의 방에는 슈퍼맨 타이츠가 하나씩 구비되어 있었다. 8년간 리브스는 다른 영화들에 출연해서는 대중과 할리우드의 인정을 좀처럼 받지 못했다. 리브스는 <슈퍼맨의 모험> 첫 방영 무렵에 이미 MGM의 사업부장 에드거 매닉스의 아내이자 8살 연상인 토니 매닉스와 연인 관계를 지속 중이었는데, 할리우드의 모든 이가 알았지만 공식화된 적은 없는 이들의 관계는 1958년 중반 리브스가 젊은 배우지망생을 사귀면서 끝났다. 이듬해 6월16일 리브스는 자신의 침실에서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힌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조지 리브스는 자살했다.
타살에 관한 의혹과 주장들에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조지 리브스의 죽음을, 영화 <할리우드 랜드>는 누아르 형식으로 풀어간다. 꼼꼼한 수사없이 자살로 귀결된 사건에 누군가가 끼어든다. 루이스 시모(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의뢰인 앞에서 적당한 아부와 꾀를 부리면서 하루 벌어 먹고사는 게으르고 무력한 사립탐정이다. 영화는 시모의 수사 과정과 리브스(벤 애플렉) 생전의 시간대를 교차시키면서 195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어느 스타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한다. MGM의 에드거 매닉스(밥 호스킨스)의 실질적 직무는 당시 스튜디오들이 소속 배우들의 사건범죄나 스캔들 관리를 위해 두었던 해결사(fixer)였다. 뉴저지 갱 출신으로 몇번의 살인혐의도 있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토니 매닉스(다이앤 레인)는 남편의 힘을 이용할 수 있고, 에드거 매닉스 그 자신이 아내와 아내 애인에게 복수를 삼았을 수도 있고, 범인은 사건 당일 함께했던 리브스의 젊은 약혼녀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아들의 죽음에 재수사를 개인 의뢰한 리브스의 생모도 수상쩍다. 사건은 파고들수록 모호해지고 진실의 이면 아래에는 또 다른 이면들이 중첩돼 있다. <할리우드 랜드>는 튼실히 구축된 캐릭터들과 두 시간대를 넘나드는 매끄러운 편집술과 스토리텔링 기술로 후더닛 무비의 긴장감을 탄탄히 진행시킨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장 복잡한 이면을 드러내는 존재는 그 시대의 할리우드다. 조지 리브스는 토니를 밧줄 삼아 메이저 스튜디오 권력의 은총을 입고 싶어했고, 스튜디오를 위협한 TV시리즈들은 싸구려 각본에 저예산인 경우가 허다했다. <슈퍼맨의 모험>도 시작은 그러했다. 앞길이 막막한 늙은 시나리오작가와도 기꺼이 결혼해 살 수 있는 여배우 지망생, 쭈그러든 육체 위에 근육을 키우기 여념없는 돈 많은 노인이 사는 할리우드에 워너브러더스의 노조 파업이 있었고 어린 시모는 워너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가 비굴하게 스튜디오에 머리 조아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1950년대 할리우드의 매력을 잘 살린 프로덕션디자인과 더불어 <할리우드 랜드>는 같은 공간의 범죄물 <LA컨피덴셜>이나 <차이나타운>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시대적인 디테일이 드러날 때는 묘하게도 르포적인 느낌을 준다. 둘 다 모두 이 영화가 데뷔작인 작가 폴 번봄과 감독 앨런 쿨터(<소프라노스> <섹스 & 시티>)는 실제 소재를 영화로 옮기면서 실명과 실제 에피소드들도 그대로 옮겨와 활용했다. <할리우드 랜드>에서 조지 리브스를 둘러싼 할리우드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러 스튜디오들의 이야기를 뒤섞은 비유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거짓이면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진실들이다.
때문에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지 리브스의 죽음이 과연 누구의 짓 또는 책임인가의 답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장르적으로는 누아르(조너선 로젠봄은 이 영화가 “<차이나타운>의 계보를 잇는 네오누아르”라고 요약했다)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해도 범죄에 대한 해답은 장르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게 된다. <할리우드 랜드>는 타살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스타의 죽음이 미국의 거대한 쇼비즈니스 세계를 지배했던 권력과 돈과 배신, 음모의 법칙들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임을 강하게 추측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그 비극을 초래한 간접적인 책임만 물을 뿐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조지 리브스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온다.
의문스러운 죽음을 소재로 한 필름누아르인 <할리우드 랜드>는 아주 훌륭한 매듭을 가진 장르물은 아닌 듯하다. 진실의 가치, 이면의 욕망들을 이야기하는 명석한 데뷔작을 감독과 작가가 내놓은 것은 분명하다. 유머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실감과 긴장감을 갖고 진지하게 그려낸 당시 쇼비즈니스계의 명암은 지금 시대에 대한 고급스러운 풍자다. 아동용 TV히어로의 이미지를 벗고 진지한 연기를 원했던 조지 리브스의 욕망과 패배감, 외로움을 표현하는 벤 애플렉의 연기는 그의 다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깊이있다. <진주만>과 <아마겟돈>으로 최고 위치에 올랐던 순간, 붉은색 데어데블 의상을 입었던 순간과 그 이후로 줄곧 잘 풀리지 않았던 커리어 등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애플렉의 연기는 매닉스 역의 밥 호스킨스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난다. 영화는 출구를 찾지 못한 리브스의 파멸에서 끝을 맺었지만 애플렉은 또 다른 시작점을 찾아 나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