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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게, 오래 오래 하고 싶다, <뷰티풀 선데이>의 박용우

걸음이 빠르다. 2006년 한해에만 <달콤, 살벌한 연인> <호로비츠를 위하여> <조용한 세상>으로 잇따라 스크린을 두드렸던 박용우가 봄기운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천형과도 같은 죄를 씻어내기 위해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또 다른 죄의 굴레에 빠져드는 남자, <뷰티풀 선데이>의 강 형사가 되기 위해 박용우는 8kg의 체중을 덜어내고, 크레인 끝에 매달려가며 징글징글한 독기를 품었다. “완전히 배설하는 듯한,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고 싶다”고 말하던 그가 비로소 자신을 녹일 만한 장소를 찾은 걸까. “요즘엔 구할 수도 없는” 10년 된 ‘레자’ 점퍼를 걸치고 털털하게 스튜디오를 찾은 그의 모습에 웃음보다 강렬한 호기심이 앞선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혈의 누> <달콤…>을 거치며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의 세례, 뒤늦은 만큼이나 호들갑스럽던 조명 속에서 정작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박용우의 재발견’이라는 낯간지러운 수식어를 뒤로한 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그를 잠시 불러 세웠다.

-완성된 영화는 보았나. =얼마 전 기술시사에서 봤다. 개인적으로는 역할이나 연기 면에서, 그동안 내가 못해봤던 색깔과 패턴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아주 날로 먹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웃음)

-대중적으로 친절한 영화는 아닌데, 어떻게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달콤…> 개봉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읽었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이라서 망설이긴 했지만, 당시에 내가 워낙 밝고 코믹한 역할만 해서 어두우면서도 에너지를 많이 발산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강 형사라는 인물은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나. =어떻게 보면 쓰레기 같은 인간인데, 너무 쓰레기라서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삶이 무너지기 직전에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 남자다. 사실 어떤 역할을 맡건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도 그렇게 출발했다.

-몸무게를 8kg나 감량했다고 들었는데. =사실 몸무게는, 설경구 선배나 다른 연기자들을 생각하면 자랑할 거리는 못된다. 캐릭터가 예민하고 남루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괴롭혀가면서 운동을 했다. 흔히 하듯이 조금 하다가 쉬고 물마시고 그런 게 아니라, 완전히 기진맥진할 때까지. 처음에는 정말 입에서 거품이 나오더라. (웃음)

-부산 감천항 촬영에서 크레인에 직접 매달리기도 했다. =촬영일이 다가와도 감독님이 계속 장소가 안 잡혔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용우야, 드디어 잡혔다, 봐라, 했는데 보니까 70m 건물 꼭대기에 크레인이 매달려 있는 거다. (웃음) 건물 높이에 크레인 높이 합하면 100m가 넘는데, 안전장치라고 매트리스 한장 깔아놨더라. 밤새 매달려서 찍었다. 아직 내가 죽을 때는 아닌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할까. (웃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나리오가 쉽게 넘어가고, 캐릭터가 바로 머릿속으로 연상된다면 나에게는 최고의 작품이다. 근데 솔직히 그런 작품은 정말 흔치 않고, 마냥 그런 작품을 기다린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현실적으로는 하나의 미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연기적으로 뭔가 보여줄 수 있거나, 작품이 재밌어서 대중적으로 기쁨을 줄 수 있거나 하는 식으로. 내 목표는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당장 1등을 꿈꾸기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당장 최고가 되고 싶고, 인기가 영원불멸하길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마음은 스스로 누르려고 한다. 잘 안 될 때도 있지만(웃음), 최대한 노력하고 싶은 거다.

-박용우 하면 <달콤…>과 <혈의 누>의 상반된 이미지가 한번에 떠오르는데, 인간 박용우는 어느 쪽에 가깝나. =나는 내 평범함이 싫어서 연기를 시작했다. 사실 초창기 때는 부드러운 느낌의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그런 연기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나의 그런 느낌이 싫어서 연기를 한 사람인데 자꾸 그런 걸 시키니까. (웃음) <달콤…>의 황대우는 사실 굉장히 선이 굵은 캐릭터다. 보통 사람들은 역할 자체가 눈을 부라리거나 그러지 않으면 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분명한 자기 테마가 있고 목적이 있으면 선이 굵은 캐릭터라고 생각하다. 그런 걸 할 때가 신나고 즐겁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연기에 많은 것을 쏟아부어서 그런가. =성격 자체가 게을러서 그렇다. 다행이다,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연기가 왜 그렇게 좋나. =말했듯이 나는 나의 평범함이 너무 싫었다. 꿈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고, 말썽쟁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 있고, 뭔가 다른 느낌의 내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 연기였다. 하지만 요새 점점 두렵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더 이거 아무나 못하는 건데라는 생각도 들고.

-지난 한해는 기쁘기도 하고, 정신없이 흘러가기도 했을 텐데,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단편적인 결과로 자신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근데 마음이 아픈 건 이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는 거다. <달콤…>은 전혀 기대도 안 한 작품인데 흥행이 되니까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다. 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작품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냐, 왜 연속으로 스릴러를 하느냐. 하지만 나는 그냥 내 중심을 지키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물론 그 과정에 판단착오나 실수는 있을 거다. 거기에 대해서 감내하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또 일어서고, 좋은 결과가 나와도 게을러지지 말고. 어쨌거나 연기자로서는 최대한 순수하고 싶다.

-배우로서 자신은 어느 정도 단계에 서 있는 것 같나. =하하하. 멀었다. 아직 멀었다. 길게 보자면 제대로 익어서 장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물론 나도 정말 스타가 되고 싶고, 많은 인기를 누리고 싶다. 그런 면에서는 몇년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연기적인 면에서는 뭐, 아직 멀었다.

-<스턴트맨>이 엎어졌을 때, 치킨집 개업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데 사실인가. =내가 워낙 치킨을 좋아해서, 아우, 만날 먹었다. (웃음) 나이는 먹고, 다른 분야는 자신이 없고 하니 그래도 연기를 해봤으니 서비스업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었다. (웃음) 근데 치킨집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닭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지금은 어떤가. 평생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나. =늙어도 자기 자존심 버리지 않으면서, 존경 받으면서 연기하고 싶다. 근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연기자는 극과 극을 오가는 것 같다. 명성과 관심을 누리지만, 그만큼 비참해질 수 있는 거다. 나에게도 분명 큰 비참함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치킨집을. (웃음) 마지막 보루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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