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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영화들에 대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강연
정리 강병진 사진 이혜정 2007-02-17

“영화감독도 여러분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 살아 있다”

지난 1월26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구로사와 기요시와 관객의 만남이 있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학교’란 이름으로 마련된 이 행사에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대표적인 영화들을 관객에게 소개했고, 통역을 통해 전해진 그의 영화 이야기는 곧 그 자신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했다. 1시간30분 동안 숨죽여 들었던 구로사와 기요시의 이야기를 여기에 싣는다.

2004년에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초청해주셔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2004년에 이미 제 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해버렸어요. ‘나의 공포영화론’이란 제목이었죠. 나의 영화와 영화연출론, 그리고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강연했던 원고는 제가 가끔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도 써먹곤 합니다. (웃음) 이번에는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영화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아까부터 제가 영향을 받은 영화, 인상 깊은 영화를 생각해보니까 대부분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영화가 나와서 약간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잘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제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영화들 가운데 맨 처음 본 영화는 <모스라>라는 나방괴수가 등장하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살 수 있을지, 죽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두려움에 찬 얼굴이 절 무섭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괴수영화는 지금도 만들어지지만 예전만큼 무섭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는 <고지라>나 <모스라>에서 도망다니던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이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표정연기가 실제적인 공포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최근의 괴수영화에서는 괴물이 도쿄나 시부야 같은 번화가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옛날 괴수들은 시골이나 어촌에 상륙하곤 했었죠. 시부야 같은 곳에서는 도시가 파괴되면 사람들이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시골이나 어촌이 파괴되는 것은 곧 자기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살아남아도 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뭐가 무서운지 생각해보면 유령이나 야쿠자도 물론 무섭지만 집이 무너지는 게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한컷의 지속이 가진 매력에 사로잡혔죠

그리고 다음은 70년대를 전후한 시기입니다. 그때는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가 60년대 후반기를 거치면서 점점 사라지던 때였고, 스필버그가 <죠스>를 들고 나오기 전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기에 가장 자주 본 영화는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였습니다.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이나 <롱기스트 야드>, 그리고 셈 페킨파 감독의 <케이블 호그의 노래> 등의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40, 50년대부터 연출을 시작한 베테랑 감독들이죠. 이들이 찍었던 영화들은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인 것을 지키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 그런 것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확실한 결말을 내리지 않는 대담한 영화들이 많았죠. 예를 들어 존 휴스턴 감독이 71년에 찍은 <팻 시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한방만 맞아도 죽을지 모르는 두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고 공이 울리면서 영화가 끝납니다. 젊었을 때 주로 그런 영화를 봐서인지 영화라는 건 사람이 죽거나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저도 모르게 제 감각에 새겨진 것 같습니다. (웃음)

70년대 중반으로 오면서 유럽영화나 일본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던 영화는 주로 페데리코 펠리니나 당시는 신인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루치노 비스콘티 같은 감독들의 영화였습니다. 그중에서 펠리니의 <로마>라는 영화를 봤을 때, 거기 나오는 여러 배우 중에서 꼭 한 사람은 카메라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는 카메라를 등지고 있어도 꼭 한 사람은 카메라를 보고 있는 거예요. 이런 건 미국영화에는 거의 없는 일인데, 관객에게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죠. 그때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대학생 때는 주로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들이었죠. 이미 제가 8mm영화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의 영화에서는 한컷이 오래 지속되는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도 영화를 찍을 때면 한컷을 어디까지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곤 합니다. 사실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보지 않아도 감독이라면 때로는 한컷의 지속이 가진 매력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망치를 가지고 사람들을 때리는 장면도 긴 컷인데, 거기서도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못한 대만영화와의 만남에 충격 받았습니다

자, 이제 80년대입니다. 이 시기에 큰 영향을 받은 영화를 꼽자면 아무래도 장 뤽 고다르입니다. <열정>이라든가 <카르멘이란 이름> <탐정>에서 편집과 소리에 관해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미국영화에서는 컷과 컷이 원활하게 연결되도록 만드는데, 고다르 영화에서는 원활한 연결을 무시한다기보다는 일부러 파괴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였어요. 컷이 전환될 때 마치 가위로 자른 것처럼 소리가 끊기거나, 그런 것도 없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죠. 편집과 소리를 통해서 거친 느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앙겔로풀로스처럼 찍고 고다르처럼 편집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때는 관객이나 제작사에게 뭔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야단맞은 적도 많았습니다. (웃음)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나 고다르와는 전혀 다른 영화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죠. 이때는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에릭 로메르, 존 카사베츠 같은 감독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들 영화를 보면 공통적으로 어딘가 금욕적이고 단순한 요소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돈이 별로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거죠. 이들 스타일대로 영화를 한다면 우리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웃음) 당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흉내내는 것이었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을 흉내내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영화와의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영화, 말하자면 대만영화였죠.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같은 감독의 영화들이요. 특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카사베츠를 흉내내고 있을 때, 대만에서는 이미 고다르와 앙겔로풀로스를 완벽히 섞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저로서는 그 상황에서 과연 뭘 해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는 영화가 현대에는 성실한 영화 아닐까요

자, 이제 90년대입니다. 이때도 인상적으로 본 영화는 있었습니다. 하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양들의 침묵>입니다. 키아로스타미 영화는 이전에 제가 계속 관심을 가졌던 앙겔로풀로스, 고다르, 에드워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영상과 이야기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양들의 침묵>은 오랜만에 무서운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었죠. 한동안 무서운 영화에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걸 보고서 다시 공포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 중에 다카하시 히로시라고 <주온>과 <링>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있는데, 이 사람도 <양들의 침묵>을 보고 영화의 무서움이 무엇인지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재패니즈 호러’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이 생겼던 계기가 바로 <양들의 침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때는 주변의 친구들이 만든 영화에서 영향을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오야마 신지, 시노자키 마코토, 시오타 아키히코, 다카하시 히로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이들을 통해서 배운 게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고 해서 바로 자기 영화에 반영시키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이런 영화가 좋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습니다. 아주 비겁한 사람들이죠. 솔직한 저는 늘 손해였어요. (웃음)

최근에 본 영화를 소개하자면, 토미 리 존스의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나 스필버그의 <뮌헨>, 그리고 토미 리 존스의 영화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죠. 상황과 변화는 나오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데에서 영화가 끝납니다. 이런 영화는 현대영화 중에서 가장 성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영화의 전통을 보면 마지막에 결말을 제시하는 게 보통인데 이제는 거기에 거짓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최근에는 제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급하게 제 경험을 정리해봤습니다. 낯선 이름이 자주 나온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말씀드렸지만, 영화감독도 여러분과 똑같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그걸 또 영화에 반영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화감독도 여러분과 똑같이 영화를 보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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