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아시아 유망주 3인의 독특한 상상력을 경합하게 만들었던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 디지털 삼인삼색이 일곱 번째를 맞이했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그간의 작품을 모은 회고전이 열렸고, <디지털 삼인삼색 2006>은 경쟁섹션인 ‘오늘의 시네아스트’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지아장커, 차이밍량, 스와 노부히로, 바흐만 고바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등이 거쳐간 삼인삼색의 2006년을 장식한 감독은 카자흐스탄의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와 싱가포르의 에릭 쿠, 타이의 펜엑 라타나루앙이다. 한국 감독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2001년에 이어 두 번째이고, ‘여인들’이라는 부제로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꾀한 것은 처음이다.
평론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다레잔 오미르바예프는 199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의 이른바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작 <카이라트>를 비롯해서 부산영화제 초청작 <길> <킬러> 등이 매번 해외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눈길을 끌었으니 명실상부한 카자흐스탄의 대표 감독인 셈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어바웃 러브>는 그러나, 지루하고 태만한 습작에 그쳤다. 물리학과 교수 카이라트는 10년 만에 만난 대학동창 집에 초대받고, 그의 아내 토그잔에게 반한다. 카이라트와 토그잔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몇년을 흘려보낸 뒤, 짧은 키스와 포옹을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한다. 고독한 일상 속에서 삶의 부조리함과 무미건조함을 냉소하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감정의 모든 파고를 설명하는 이 영화는 연기와 촬영 등 모든 영화적 요소에서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표현할 수 없는 진심, 현대인의 보편적 고독을 표현하기 위한 포석이었겠지만, 홈비디오에 불과한 밋밋한 화면과 별다른 영화적 고민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연기는 관객과 공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야박하게 말하자면, 세 작품 중 <어바웃 러브>를 맨 처음에 배치한 것은 남은 러닝타임을 좀더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지닌 실제 인물을 중심으로 현재 싱가포르의 우울과 불안, 일말의 희망을 포착한 <내 곁에 있어줘>로 한국의 일반 관객을 만난 에릭 쿠의 <휴일없는 삶>은 유례없는 직설적 화법을 구사한다. 작은 집을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싱가포르에 건너온 인도네시아인 가정부 시티. 처음 보는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사용법, 기본적인 지시를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익히고, 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쳐 휘황찬란한 저택에 입성한다. 소개비용을 제하고 첫 아홉달 동안 받을 수 있는 돈은 한달 월급 230달러 중 10달러. 이후 그녀는 오직 영어로만 대화하는 갑부 집과 욕설을 일삼는 중국계 중산층, 병상에 누운 할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 인도계 가정을 전전한다. 1519일. 시티의 타지생활을 고집스럽게 카운트다운해나가며 암전을 거듭하는 화면은 그녀의 얼굴만을 비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수준의 명령과 욕설로 일관하는 고용인의 모습은 시티를 인간으로 대해준 마지막 집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보이지 않는다. 15만명의 싱가포르 가정부 중 6만명이 인도네시아 하층민이며, 1997년에서 2005년 사이에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가정부 학대가 660건에 달하는 현실을 향해, 감독은 말한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들어보라고, 혹은 무심코 지나친 그 얼굴을 스치는 절망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이웃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는 거기서 시작된다고. 옴니버스 디지털영화의 조건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이를 적절히 승화시킨 <휴일없는 삶>은, 사려 깊은 운문 <내 곁에 있어줘>보다는 12층 아파트 안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고찰한 만화경 같은 영화 <12층>에 좀더 가깝다. 냉정하고 건조한 보고서에 그칠 수 있었던 디지털영화에 소중하고 애틋한 꿈을 담은 내공은 물론, 변함없는 에릭 쿠의 인장이다.
베를린으로 향하는 12시간20분 동안 비행기 옆자리 여자를 향한 달뜬 감정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꿈같은 현실 혹은 현실감있는 몽상을 그린 <12시간 20분>을 가득 채운 것은 긴장어린 나른함, 그리고 환상과 실제가 얽혀드는 몽롱함이다. 보스의 아내를 사랑한 뒤 살해한 남자의 초현실적인 여행을 다룬 <보이지 않는 물결>과 너무 다른 두 남녀가 서로의 고독을 향해 손을 내밀게 되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국내에서 개봉한 펜엑 라타나루앙의 두 전작은 앙상한 플롯 사이를 인물의 내면에 대한 면밀한 묘사로 채운 영화였다. 서로 다른 소파 두개를 비행기 좌석 삼고, 사리를 입은 채 불어를 사용하는 스튜어디스와 “마음에 드는 승객이 있으면 바로 고백하세요.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라며 중국어로 방송하는 기장을 내세우며 시치미를 떼는 <12시간 20분> 역시 마찬가지다. 부유하는 듯한 수평 트래킹을 비롯한 우아한 무빙과 자꾸만 분절되어 전체를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드는 화면, 귀가 먹먹해지는 기내의 배경사운드는 짐짓 에로틱한 분위기를 더하고, 그 남자의 힘겨운 설렘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빙의된다. 비현실적이고 연극적인 공간과 상황을 극한의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라타나루앙식 영화 리얼리즘의 요약본이라 할 만하다.
전작과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길을 택한 영화와 익히 알려진 전작의 강점과 장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영화. 혹은 단호한 권유형 문장 안에 냉소와 희망을 슬쩍 끼워넣은 간결함과 CF를 연상시키는 언뜻 장황한 수사로 미세한 무드를 포착한 섬세함. <휴일없는 삶>과 <12시간 20분>은, 한 여인을 바라봄으로써 영화를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지니지 않는다. 전자는 그저 우리를 바라볼 뿐인 여인의 눈빛을 통해 스스로의 부끄러운 얼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후자는 기꺼이 응시할 만한 대상인 여인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매혹적인 마음의 풍경을 그린다. 너무 다른 두 여인, 혹은 너무 다른 두 종류의 응시는 각각 영화가 지닌 궁극적인 가능성 두 가지를 뜻할 것이다. 당연히도, 결국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될 둘 사이에서 우열을 가르려는 것은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 전주영화제가 매년 안겨주는 이 세 가지 맛 선물은 일단 기꺼이 즐기며 풀어볼 필요가 있다. 정해진 포맷과 러닝타임, 제작비 안에서, 그만큼 자유롭게 가능성을 실험한 세 감독의 심정도 그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