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와 디지털영화를 위한 축제의 장이 열린다. 올해 첫선을 보이는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ANeFF)가 11월16일부터 18일까지 CGV안산에서 개최된다. ‘넥스트’라는 이름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작품을 지향한다는 영화제의 설립취지를 드러내는 것. 각종 영화제가 범람하고 있는 만큼 신생 영화제로서 고유한 색깔을 갖는 것이 필수라는 인식하에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는 SF·디지털영화제를 표방하고 나섰다. 행사 규모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한편, 비주류 영역을 핵심으로 내세워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다.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의 또 다른 특이점은 영화제에 쇼케이스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올해 진행되는 영화제가 바로 쇼케이스 형식의 작은 영화제. 상영작의 일부를 선보이고 관객의 반응을 모니터링 한 뒤 본격적인 1회 영화제는 2007년 6월경에 열릴 예정이다.
총 14편을 선보이는 올해 쇼케이스 개막작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66년작 <화씨 451>. SF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억압적인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 제목인 화씨 451은 종이가 불에 붙기 시작하는 온도를 의미한다. 책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금지 물품으로 지정되어 소각되고, 소방관이 아닌 방화관이 활약한다는 아이러니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국내에서 상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의 작품들은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된다. ‘SF클래식’, ‘충무로 뉴 웨이브’, ‘아이 디렉터’, ‘넥스트 필름 어워즈’가 그것. ‘SF클래식’은 SF의 숨은 고전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기막히게 줄어든 사나이>(1957), <금단의 혹성>(1957)이 준비되어 있다. <기막히게 줄어든 사나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체에 노출된 뒤 매일 조금씩 몸이 줄어들게 된 남자 이야기. <아이가 줄었어요>류의 할리우드영화의 시조 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말의 반전은 모든 관습적 예측을 불허한다. <금단의 혹성>은 외계의 한 행성에 도착한 탐사대가 미지의 괴물과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영화적으로 변주한 50년대 SF 걸작으로, 인간의 감춰진 광기와 파괴적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이자 디지털 장편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섹션은 ‘넥스트 필름 어워즈’다. 올해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된 것은 총 5편. 지하철 기관사들의 고된 삶을 그린 <나비두더지>, 할아버지들의 일상을 훈훈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소풍>, 노동석 감독의 신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미 개봉해 관객 2만명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 <사이에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 등이 준비되어 있다. SF나 디지털의 카테고리에 속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감수성과 고민을 갖고 등장한 젊은 영화들을 주목하는 섹션도 있다. ‘충무로 뉴 웨이브’가 바로 그것.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 등 4편이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계 밖의 다양한 문화 인사들이 직접 만든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아이 디렉터’ 섹션도 눈길을 끈다. 올해는 만화가 이우일의 작품 <굿바이, 알라딘>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문화평론가 진중권, 소설가 신경숙, <GQ> 편집장 이충걸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됐다. 11월16일과 18일에는 각각 ‘충무로 뉴 웨이브: 새로운 영화를 위한 준비’, ‘한국 SF영화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한 포럼이 열리고, 영화제 동안 안산 중앙동과 CGV안산 일대에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영상 제작과 코스프레 거리 행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의 모든 상영작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며, 영화제 홈페이지(www.aneff.org)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