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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는 민심을 읽고 있는가
이영진 사진 오계옥 2006-10-25

해체론 이번엔 국감에서 제기… 이달말에 있을 조직개편에 귀추 주목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점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0월16일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 국정감사에서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이광철, 우상호 의원 등은 “영등위를 해체하고 등급서비스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국정감사는 ‘바다이야기’ 사태의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경순 영등위 위원장 사퇴 공방이 빚어져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진 못했다. 하지만 10월28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함에 따라 영등위의 조직 개편 또한 불가피해진 상황이라, ‘해체론’에 대한 영화계 안팎의 반응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광철 의원은 국감에서 “영화와 비디오는 영등위, 게임은 게임물등급위원회, 음악은 문화콘텐츠진흥원, 공연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맡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도마에 오르는 영등위 위원들의 전문성 시비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심의 업무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업무 때문에 영등위는 애초 위원을 뽑을 때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못해왔다. 이광철 의원실 관계자는 “영등위는 영화와 비디오 심의만 맡되, 영화진흥위원회 등과 긴밀한 업무 협조 등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5년 뒤에는 영등위를 해체하고 실질적인 민간자율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등위가 등급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02년,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재심 끝에 제한상영가 결정을 받은 것에 항의해 영등위 개혁포럼이 결성됐을 때도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원승환 사무국장은 “영등위는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서 “등급 부여와 관련해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해도 과제로 삼지 않는다. 관련 기관들과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출범 이후 영등위가 과거보다 발전한 것이 있다면 자구보다는 순전히 영화계 안팎의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끊이지 않는 제한상영가 등급 논란

제한상영가 등급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란은 영등위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해 말 <흔들리는 구름>을 시작으로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호스텔> <힐즈 해브 아이스> <라이 위드 미> <천국의 전쟁> 등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라이 위드 미>의 경우, 성기노출이라는 이유로 제한상영가 딱지를 받았으나 <뮌헨>은 작품 맥락상 이해할 수 있는 성기노출 장면이라며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손님은 왕이다>의 경우 “원조교제를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데 그런 이유에서라면 <투사부일체>의 15세 관람가 등급 또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위원들의 재량과 판단을 믿어달라”는 것이 영등위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논란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상 비난을 면키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반 국민정서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반국가적·반사회적·반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으면 제한상영가 등급 영화라는 모호한 기준은 매번 도마에 올랐다. 10월6일 영등위는 대사의 표현·폭력성·선정성 등으로 나눠 관련 세부 규정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입법 예고했으나 이 또한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영화인회의 유창서 사무국장은 “기존 규정을 쪼갠 것에 불과하다. 규정을 만들면서 공청회나 전문가 워크숍 등을 통한 공론화 작업을 진행했는지 의문이다. 제한상영관 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이 위헌 결정을 받은 등급보류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등급분류 기준도 문제지만 영등위의 태도가 더 큰 문제다. 제작사에 희망등급을 기재하라고 하지만 등급 결정에 대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않는다. 한 제작사 대표는 “영등위가 보내오는 등급결정서는 일방적 통보에 가깝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 마케팅 관계자 또한 “재심이라는 절차가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제스처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한다. 회의록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씨네21>은 10월10일 영등위에 광고물 유보 결정 사유를 확인하는 절차를 물었으나 “모든 자료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 기관 입장에서 이는 상식이다. 관련 규정을 찾아보긴 하겠다”는 답변만을 들었다.

<한국 검열제도의 변천 과정에 관한 연구>에서 배수경씨는 영등위 내규가 심의, 의결, 회의 진행 등에 관한 공개를 막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영등위의 심의과정, 인선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이러한 조항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그는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등급분류) 기준의 설정은 기계적 심의에 치우칠 수 있으므로, 이제라도 등급분류와 관련된 정책 기구를 마련해 해외사례 등을 연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의적 등급분류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참고로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등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 내부 정책 부서의 역할이 컸다.

영등위가 서비스 기구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청인이 원하는 대로 등급을 내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굳이 영등위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영화계 안팎에서 영등위에 주문하는 서비스는 다름 아닌 납득 가능한 기준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는 요청이다. 10월29일 영등위 조직개편과 관련하여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현재 사후관리위원회가 맡고 있는 조사, 연구 기능 및 홍보 작업을 전담하는 부서를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궁금하다. 영등위의 조직 개편은 그동안의 여론을 얼마나 수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