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짜기 외진 마을 무도리. 주민이라곤 환갑 넘은 노인들과 정신 모자란 아이밖에 없다. 무도리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봉기(박인환), 해구(최주봉), 방연(서희승) 등은 피붙이보다 더한 또래 친구 사이. 하사관 출신으로 영어 쓰기를 좋아하며 젠체하는 봉기, 까치다방 정 마담과 신방을 차리겠다는 꿈으로 체력단련에 여념이 없는 해구, 셈은 도통 젬병이지만 바지런하고 손재주만은 뛰어난 방연. 인적없는 마을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감자 내기 윷놀이가 전부다. 오지랖 넓어 우체부 노릇과 심부름까지 대신해주는 순경 창수가 가끔 마을을 찾을 뿐, 들고 나는 이 없어 무도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던 차에 무도리에서 한 젊은이가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한다. 방연은 어수룩한 아들이 주워온 유서를 유족들에게 전달하고, 그 대가로 기대치 않았던 수백만원을 수중에 넣는다. 갑자기 굴러들어온 돈 때문에 한바탕 드잡이를 한 세 노인. 얼마 뒤 또 다른 젊은이가 무도리를 찾아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자, 세 노인은 아예 자살지원자들을 위한 민박사업에 나서게 된다. 끔찍하고 흉흉한 변고 때문에 유령마을 무도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인터넷을 통해 무도리에 있는 벼랑 도깨비골이 자살명당이란 소문이 퍼지게 되고, 자살동호회 회원들이 대거 무도리를 찾으면서, 세 노인은 사람 구경하고 돈 버는 맛에 흠뻑 취한다.
<무도리>는 젊은 사람들의 끔찍한 오지 체험 해프닝이라는 점에서 <마파도>를, 순진한 줄만 알았던 농촌 사람들이 악당처럼 등장한다는 점에서 <시실리 2km>를 떠올리게 하는 코미디다. 사업이 실패하고, 연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당첨된 로또복권을 찾으러 섬에 들어갔다가 5인방 할매들에게 걸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마파도>의 조폭과 경찰처럼 폭설로 고립된 무도리에서 3인조 할배들에게 갖은 고초를 당한다. 다이아몬드를 취하기 위해 조폭과의 한판 전쟁도 불사하는 <시실리 2km>의 농민들보다 <무도리>의 할배들은 한술 더 뜬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망설이는 젊은이들을 어떻게든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기 위해 온갖 묘책을 짜내느라 분주하다.
“어차피 죽으러온 놈들이여. 산 사람들 좀 도와주고 가면 서로 좋은 거지, 뭐.”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 젊은이들이지만, 그들에게 삶은 불필요한 잉여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지만, 그들에게 삶은 여전한 결핍이다. 죽기 위해 살아왔던 젊은이들과 살기 위해 죽이려드는 노인들이 맞닥뜨리면서, 발걸음 뜸한 무도리(無道里)는 점점 인륜없는 무도리(無道里)로 변해간다. 여기에 방송사에서 해고된 사고뭉치 방송작가 미경(서영희)이 뛰어든다. 특종을 건져 다시 복직하겠다며 무도리를 찾지만, 그녀는 인터넷 자살사이트 주축 멤버로 오인받는다. 젊은이들은 그녀를 앞세워 자살의식을 거행하려 하고, 노인들은 그녀에게서 생의 기쁨을 느낀다.
<무도리>에서 캐릭터들은 제 몫을 한다. 이야기 구성의 변곡점도 뚜렷하고 짜임새도 있다. 해프닝 끝에 서둘러 이야기를 봉합하는 여느 코미디와 다르다. 인물군(群) 사이에 세워둔 대립각이 허물어지고 역전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살려고 무도리에 왔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미경은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오가며 갖가지 소동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젊은이들과 노인들, 양편 모두 의도치 않은 촉매제 미경의 돌발행위로 인해 소중한 무엇을 깨닫는다. 젊은이들은 곁에 있었던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느끼게 되고, 노인들은 애타게 찾고 싶었던 행복을 실은 자신이 밀어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느 한편의 일방적 교화 대신 쌍방의 나눔으로 이들은 스스로를 구원한다.
<무도리>는 <달콤, 살벌한 연인>에 이어 MBC프로덕션과 싸이더스FNH가 함께 손잡고 만든 저예산 HD영화. 한때 주석 광산으로 흥했으나 지금은 폐광이 되어 주민들이 거의 없는 강원도 영월 등지를 돌며 2달 동안 28회차라는 지극히 한정된 기간 동안 찍었다. 넉넉한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올 수 있었던 건 오랫동안 다듬은 흔적이 역력한 이야기의 힘도 크지만, 배우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이형표 감독의 <서울의 지붕밑>에 등장하는 아옹다옹 세 노인들을 보는 듯 박인환, 최주봉, 서희승 등은 오랫동안 연극무대에서 주고받아온 호흡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온다. <마파도>에 이어 또다시 어르신들을 모시게 된 서영희 또한 천방지축 왈패로 등장해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다같이 사는 세상이지만 대부분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조금씩 갖고 있지 않을까.” 최종구 작가와 함께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해 <무도리>를 떠올렸다는 이형선 감독은 드라마 프로듀서 출신이다. 현재 MBC프로덕션 드라마 PD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드라마 <황금마차> <보고 싶은 얼굴> 등을 연출했다. 지옥 같은 무도리(無道里)도 무릉도원 같은 무도리(武桃里)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영화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 세대와 세대 사이의 장벽을 극단적인 설정으로 들추되, 결국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일 수 있고”,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일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소통과 대화와 조화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무도리>는 그렇게 믿고 싶게끔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