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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꿈꾸는 영화축제, 서울영화제 가이드 [3]
이다혜 2006-09-07

대사가 아닌 춤으로 말하다

뮤지컬영화 스페셜

<프로듀서스>

‘뮤지컬 스페셜’은 할리우드 무대 뮤지컬과 뮤지컬영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이미 무대 뮤지컬로 큰 인기를 끈 <렌트>와 <프로듀서스>의 2005년 영화판과 할리우드 뮤지컬 고전기의 전설적인 스타인 진 켈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진 켈리, 춤을 해부하다>가 상영된다. 진 켈리, 캐리 그랜트를 비롯한 미국의 예술가들을 조망한 다큐멘터리 <미국의 거장들> 시리즈의 일부인 <진 켈리, 춤을 해부하다>는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 배우로 평가받는 진 켈리의 일대기를 그렸다.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한 그의 탭댄스가 ‘미국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경력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장년의 진 켈리 인터뷰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뮤지컬과 댄스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 진 켈리가 전성기에 출연한 뮤지컬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 삽입된 것은 가장 큰 볼거리. 대사가 아니라 움직임으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반영한 그가 미국의 정치적인 상황 변동에 의해 미국을 떠나게 되는 대목에 이르면 <진 켈리, 춤을 해부하다>는 부족함없는 인물다큐로 완성된다. <렌트>는 <그리스> <구니스>의 각본가이자 <나홀로 집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감독한 크리스 콜럼버스가 만든 뮤지컬영화다. 브로드웨이에서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둔 뒤 한국 무대에도 오른 동명의 뮤지컬 <렌트>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아파트에 모여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록음악의 선율에 실어 보여준다. 무대 뮤지컬로서의 매력을 가능한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했다. 1968년에 멜 브룩스가 이미 영화로 만들었던 <프로듀서스>는 한때 잘나갔으나 퇴물로 전락한 한 뮤지컬 제작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공연을 망하게 하면 오히려 제작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최악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 제작자 맥스는 뜻밖에도 뮤지컬이 대박이라는 사실에 당황한다. 감독 수잔 스트로맨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듀서스>의 연출과 안무를 맡아 토니상 12개 부문을 휩쓴 바 있다.

발리우드 뮤지컬영화 변천사를 한눈에!

인도영화 특별전: 춤과 노래의 영화

<사랑의 춤>

일곱돌을 맞는 서울영화제에서는 ‘춤과 신체’라는 주제로 댄스필름과 뮤지컬 영화를 소개한다. 그와 더불어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빼고는 영화산업을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 인도의 영화들을 모은 특별전이 열린다. 인도영화 특별전에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4작품으로, <사랑의 열병>(1982), <야데인>(2001), <사랑의 춤>(2005)는 발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변화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랑의 열병>은 발리우드 뮤지컬이 사랑하는 주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 라즈 카푸르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인도 뮤지컬 영화의 기본을 닦은 전설적인 인물. 1950년을 배경으로 고아 출신의 가정교사가 마을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 여인을 위한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을 음악과 춤을 결합한 고전적인 발리우드 뮤지컬로 표현했다. <야데인>은 아름다운 세 딸과 살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 영국에 살다가 인도로 갓 이주한 라즈는 친구의 아들 로닛과 자신의 딸 이샤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로닛은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그리고 자본의 계급을 뛰어넘고자 하는 사랑이야기로, 인도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상영작 중 가장 최신작인 <사랑의 춤>은 인도의 사회문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여성감독 샤르다 라마나산의 영화. 1920년대를 배경으로 춤을 통한 구원을 꿈꾸지만 부자의 애인으로 살아가는 한 신전 무희의 갈등을 담고 있다. 예술의 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춤과 노래로 풀어냈다. 마지막에 추가된 상영작 <사운드 오브 발리우드>는 발리우드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 1년에 900여편이 제작되는 인도영화의 저력은 어디에 있는가, 인도 영화산업의 현실과 미래는 어떠한가 등의 문제를 인도 영화감독들과 아이쉬와라 라이 등의 유명배우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아주 특별한 성찰

데라야마 슈지 특별전

하이쿠 시인, 무대 연출가, 작사가, 경마와 복싱 비평가, 방송작가,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 모두 데라야마 슈지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다양한 그의 경력만큼 데라야마의 영화는 다채롭다. 하이쿠가 영화가 되기도 하고, 같은 이름의 연극이 완전히 다른 영화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하고, 스크린과 관객과의 벽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강렬한 색채가 사용되기도 하고, 끊임없이 음악이 사용되기도 한다. 때로는 극도로 에로틱해지고, 때로는 극도로 폭력적이 된다. 혹자는 이런 데라야마의 영화를 시각, 청각, 촉각이 모두 사용되는 특별한 영화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양함 속에서 데라야마는 이상하리만큼 ‘나란 무엇인가’라는 테마에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나’에 대한 의문은 ‘기억’에 대한 의문과 늘 나란히 존재한다. 그는 자서전적인 영화 <전원에 죽다>에서 “나의 소년 시대는 나의 거짓말이었다”라고 외친다. 그는 지나간 과거의 기억은 늘 날조되어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는 허구이며, 이런 거짓된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어머니 살해였다. 로베르카 노비엘리는, 데라야마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어머니’는 자연에서 존재하는 자웅동체처럼 아들을 그녀의 미궁 속에 가두어버리거나, 그의 동정을 빼앗고 그를 성인의 세계로 이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계는 어머니와 동일시되는 ‘집’임과 동시에 ‘지배’의 이미지이다. <전원에 죽다>에서 어머니가 자신과 아들이 각기 다른 시계를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나, <안녕 하코부네>에서 마을의 모든 시계를 묻어버리고 하나의 괘종시계만 남겨놓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데라야마는 이런 어머니를 죽이고 집을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집을 나가 어머니가 원하는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녕, 하코부네>

<토마토 케첩 황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는 가출을 권유하는 그의 첫 번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처음부터 제거되어 있고, 할머니는 상습도벽이 있으며, 전쟁범죄자인 아버지는 사회부적응자이다. 제대로 된 어른은 아무도 없다. 이런 어른과 집에 대한 미움은 주인공 사사키를 인력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꿈꾸도록 만든다.

어른에 대한 거부는 다음 영화 <토마토 케첩 황제>에서 극대화된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아이는 아버지를 죽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때까지 가정에서 억압받아오던 아이들이 일제히 봉기를 시작한다. 모든 어른들이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의 봉기는 정치적인 사회 전복을 꿈꾸지 않는다. 아이들의 봉기는 그저 유희와 놀이로서 그려진다. 이는 어쩌면 <책을 버리고 거리고 나가자>에서 주인공 사사키가 결국 아버지를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고, 집을 나가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멈춰버리는 것과 같으며, <안녕 하코부네>에서 스키치와 스에가 그들의 하나됨을 허락하지 않는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결국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과도 같다. 이는 데라야마가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풀 사이즈로 나의 윤곽 전체를 보여주는 카메라의 숙명 속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듯이, 나의 거짓 기억에서 벗어나 나를 해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렇게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내가 분명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그의 주제는 지우개가 영상을 계속해서 지워나감으로써 기억이 지워지는 것 같아도, 슬금슬금 다시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지우개>에서도 반복된다.

기억을 통한 시간과 고향이라는 장소를 통한 공간의 축을 통해 자아 찾기를 계속해온 그는 만년에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 속에서 “100년이 지나면 그 의미를 알게 돼. 100년이 지나면 돌아와”라고 외친다. 서울영화제의 데라야마 슈지 특별전에서 그의 영화 속에 나타난 시간의 의미를 찾아보길 바란다.

정수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