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별이 지면, 바다에서 영화가 뜬다. 운치있는 바닷가에서, 휴가철마다 만날 수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가 8회를 맞는다. 평소에 독립영화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없었던 지역 주민, 바닷가의 낭만과 함께 색다른 재미를 찾는 관광객,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영화인을 위한 이 행사는 8월 첫쨋주 주말 3일간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지난 한해 동안 다양한 영화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독립영화 신작 중 온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작품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것은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영상자료원과 함께 준비한 ‘특별상영-찾아가는 영화관’.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윤성호), <전쟁영화>(박동훈) 등 비교적 최근작 2편과 함께 상영될 과거의 독립영화 2편이 포진되어 있다.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았던 고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의 초기작 <우중산책> 등 전설 속의 단편영화를 모처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의 남다른 삶을 흥미롭게 묘사하는 것은 독립영화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다. 매일같이 배달되는 요구르트병이 쌓이는 것으로 말 못할 사연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무의탁 노인의 문제를 다룬 <요구르트꽃>(임희대), 만삭의 아내를 둔 택시기사의 의미심장한 하룻밤을 그린 <운수좋은 날>(이한종)이 그러한 작품들. 한편 상상 가능한 모든 악재가 겹쳐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번번이 이를 제지당하는 여자의 담담한 내레이션이 삶을 향한 굳은 의지의 다른 말이었음 밝히는 <임성옥 자살기>(류훈)는 아이러니의 유머로 가득하다. 남성성의 대명사인 수염이 얼굴 한가운데 보란 듯이 자리한 발레리나가 자신의 멋진 수염을 인정하기까지를 묘사한 <마스크속, 은밀한 자부심>(노덕)은 판타지영화의 화법을 끌어들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나간 영화, 독특한 화풍이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다양하고 까다로운 주제를 유연하게 풀어나간 다큐멘터리 등은 독립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엿보게 만든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단숨에 이름을 알린 김종관 감독의 <낙원>은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녀가 정류장에 서기까지의 한적한 동행을 다룰 뿐인 영화. 서정적이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침묵으로 가득한 영화로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려들기보다는 근원적인 감정을 이미지로 전달하는데, 휴가지에서 즐기는 낭만적인 여름밤과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3년 동안 가희를 짝사랑한 BH가 어느 날 갑자기 가희의 집에 들이닥쳐 자신이 준 모든 것들을 돌려받으려 하면서 시작하는 <가희와 BH>(신동석)는 짝사랑과 기억의 구질구질하고도 생생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초겨울 점심>을 연출한 강병화 감독의 능청스런 연기, 올해 미쟝센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은 백윤석 촬영감독의 촬영도 압권이다. 화장실이 급한 동자승이 그저 사랑스러운 <해우소>(최병환), 소설과 늑대와 여섯살 소녀의 만남을 그린 <아빠가 필요해>(장형윤) 등은 발랄함을 무기로 한 애니메이션 수작. 세대별 여성들이 지닌 가족에 대한 의미를 기록한 <쇼킹패밀리>(이경순), 부산지역 인디밴드을 기록한 <in the cold cold night>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는 작품들이다.
유머러스하고 대중적인 화법의 독립영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외에 정동진영화제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것은 시종일관 가족적이고 정겨운 분위기. 영화의 상영은 오후 8시부터이지만 낮시간에는 학교 운동장과 백사장에서 전국의 독립영화인과 초청 감독들이 한데 어울리는 행사가, 상영이 끝난 뒤에는 진솔한 뒤풀이가 줄을 잇는다. 어김없이 준비되는 감독과의 대화, 동전 한푼으로 관객이 직접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관객상 투표방식 역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올 여름, 조금 특별한 휴가를 꿈꾸는 당신. 정동진에서 소박한 만찬을 즐겨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