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괴물영화대백과 [2]
김도훈 2006-06-24
유전자 변형의 창조물들

그것들은 실험실로부터 왔다!

<얼굴없는 악마>(Fiend without a Face, 1957) 이 괴상한 괴물영화의 주인공은 고전 SF/호러팬들이 오랫동안 열광해온 걸어다니는 뇌 덩어리다. 일군의 과학자들이 원자로를 이용해 인간의 지각을 증폭하는 기기를 만들려다 순수한 에너지 괴물을 창조한다. 괴물은 곧 도망쳐서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사람들의 뇌를 닥치는 대로 빨아먹는다. 문제는 이 괴물이 보이지 않는 순수 에너지 덩어리라는 사실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괴물로 영화를 채울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이 원자로를 차단하자 그제야 괴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뇌와 척수로 이루어진 기괴한 모습의 사념체였다. 이 노골적인 냉전 SF/호러영화는 크라이테리온에서 새롭게 DVD를 발매할 만큼 컬트팬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믹>(Mimic, 1995) 만약 바퀴벌레(를 닮은 벌레)가 지능을 갖게 된다면? 뉴욕의 아이들이 바퀴벌레가 옮기는 괴질에 시달리자 수잔 박사(미라 소비노)는 사마귀와 휜개미의 유전자를 합성해 바퀴벌레의 천적인 ‘유다’를 만들어낸다. 번식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유다는 바퀴벌레를 모조리 죽인 뒤 사라지지만, 사실 유다는 스스로를 진화시켜 몰래 번식하며 뉴욕의 지하를 점령하고 있었다. 곤충에 대한 매혹과 고딕풍의 영상 등 기예르모 델 토로의 지장이 확연히 찍혀 있는 <미믹>은 의외로 하향평가되어온 괴물영화의 수작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롭 보틴이 창조한 괴물 ‘유다’의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들. 배신자의 이름을 딴 유다는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인간의 얼굴로 진화시킨 존재다. 날개를 접고 서 있으면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처럼 보이며, 인간의 얼굴을 닮은 껍질 속에 끔찍한 속을 숨기고 있다. 2001년과 2003년에 걸쳐 두편의 졸속적인 돌연변이 속편을 번식시켰다.

<프릭스>

거미영화들 <프릭스>(Eight Legged Freaks, 2001), <거대 거미의 습격>(The Giant Spider Invasion, 1975), <아라크네의 비밀>(Arachnophobia, 1990), <거미>(Earth vs. the Spider, 2001) 거미 공포증이라는 제목을 단 영화 <아라크네의 비밀>이 나올 만큼 인류의 거미 공포증은 유별나다. 해서 거미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영화들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양을 자랑하지만 작품의 질은 그리 고르지 못하다. 가장 제대로 만들어진 거미영화는 유독폐기물로 몸집이 거대해진 돌연변이 거미들이 도시를 공격한다는 내용의 최근작 <프릭스>. 50년대 B급 괴물영화들에 대한 경쾌한 오마주와 CG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거미들로 포화를 퍼붓는다. 75년작인 <거대 거미의 습격>은 전형적으로 못 만들어진 거미영화의 대표작으로, 폴크스바겐 자동차에다 씌워놓은 거대 거미괴물의 바퀴가 종종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었던 남자가 거미의 혈청주사를 맞고 영웅을 꿈꾸지만 결국 거미괴물로 변해 비참하게 죽는다는 내용의 TV용 영화 <거미>는, 이를테면 <스파이더 맨>과 <플라이>의 잡종교배영화. 58년작 <Earth vs Spider>를 제작한 50년대 공포물의 명가 AIP(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의 자손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B급 괴물영화의 정신은 대를 이어 전이되는 법이다.

개미영화들 <그들!>(Them!, 1954)과 <4번째 단계>(Phase IV, 1974) 개미영화들은 거미영화들만큼 편수가 많지 않은 대신 완성도에서는 월등한 편이다. <뎀!>은 원폭실험으로 인해 거대화된 개미들이 LA를 습격한다는 내용의 고전. 제작진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대신 불완전하게 움직이는 기계 모형을 이용했고, 때문에 당시 관객이 느꼈을 법한 충격효과는 적지않게 사라졌다. 하지만 LA로 서서히 다가오는 개미들을 둘러싼 종말론적 이야기와 서스펜스의 공식은 이후 탄생한 괴물영화(특히 <뎀!>의 장면들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 2>)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4번째 단계>는 우주의 이상 변화로 인해 지능을 얻게 된 개미들이 주인공이다. 개미들은 기술력을 진화시켜 자신들만의 도시를 건설하고, 결국 영화는 개미로 인해 인류의 문명이 통제받는다는 다분히 충격적인 결말에 이른다. 차분한 어조와 세밀한 드라마를 통해 종말론적 세계관의 괴이한 비전으로 나아가는 괴물영화의 걸작.

<딥 블루 씨>

물속의 프랑켄슈타인들 <식인어 피라냐>(Piranha, 1978)와 <딥 블루 씨>(Deep Blue Sea, 1999) 바다의 살육자가 상어라면 민물의 살육자는 아마존의 육식물고기 피라냐일 것이다. 물론 각각의 살육어에 정신나간 과학자들을 붙여준다면 당연히 높아진 지능과 강인해진 체력을 지닌 슈퍼-살육어가 탄생할 터. 조 단테의 <식인어 피라냐>와 레니 할린의 <딥 블루 씨>는 그런 단순한 컨셉하에 만들어진 B급 취향의 괴물영화들이다. 로저 코먼이 제작한 <식인어 피라냐>는 실험실을 탈출한 돌연변이 피라냐들이 강가 휴양지를 핏물로 물들인다는 내용으로 감독 조 단테의 유머감각이 저예산 싸구려영화를 구원한 사례다. 레니 할린의 <딥 블루 씨>는 일군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능과 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진 상어들이 주인공이다. 할리우드 살생부를 배반하며 주인공들을 탐식하는 애니매트릭스 상어들의 움직임은 할리우드 기술력의 진화를 보여준다.

미지의 세계로부터 온 포식자들

그것들은 미지로부터 왔다!

<플라잉 킬러>(Q-The Winged Serpent, 1983) 원제인 <Q>는 아즈텍 문명이 숭배했던 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의미한다. 아즈텍 종교를 숭배하는 일련의 광신도들이 인간을 제물로 바쳐 케찰코아틀을 현대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에 둥지를 짓게 만든다. 재미있는 사실은 <플라잉 킬러>가 전형적인 괴물영화의 설정들을 하나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케찰코아틀의 본거지를 알아내서 한몫을 챙기려는 도둑 캐릭터 등 현실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행동들을 사실주의적인 화법으로 그려내고, 이같은 화법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창조된 케찰코아틀의 비현실적 매력과 부딪치며 기묘한 쾌감을 만들어낸다. <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가 “<괴물>의 장르적인 유연함과 정치적인 여담들, 그리고 강렬한 캐릭터의 혼합은 래리 코언의 1982년 컬트영화 <플라잉 킬러>와도 매우 비슷하다”라고 말한 연유도 거기에 있다. 컬트영화의 신전에서 영원히 내려오지 않을 것만 같은 독특한 괴물영화다.

<레릭>(Relic, 1996) 엉뚱할 정도로 구식 괴물영화의 기운을 간직한 이상한 90년대 괴물영화. 시카고의 한 자연사 박물관이 개관기념 특별전을 연다. 온갖 유명인사들을 포함한 손님들로 바글거리는 박물관. 그러나 갑자기 길이 4.5m, 체중 150파운드의 파충류가 사람들을 무차별로 찢어삼키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괴물 ‘코도가’의 정체가 아마존 탐사를 나섰던 박물관 요원의 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설명에 따르자면, 한 남미 부족은 상대 부족을 멸망시키기 위해 특별한 균이 들어 있는 나뭇잎을 사람에게 먹여 돌연변이 괴물을 만들었다고. 이를테면 ‘코도가’는 주술과 과학과 유전공학이 짬뽕된 박물관용 에일리언인 셈이다. 스탠 윈스턴이 창조한 괴물의 외양은 평범한 편이다.

<불가사리>(Tremors) 90년대의 가장 독창적인 괴물영화 중 하나. 애리조나 사막 근교의 작은 마을이 땅속을 기어다니는 거대 괴물의 습격을 받는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예상밖의 성공으로 2편의 속편을 낳았고, 미국 SCIFI 채널의 TV시리즈 <트레모스>로까지 세계를 확장시켰다. 유능한 괴물 창조가 알렉 길리스가 만들어낸 땅속괴물 ‘그라보이드’는 기다란 촌충의 형태로부터 시작해, 후속편에 이르면 뚱뚱한 괴물 닭모양으로까지 진화를 거듭한다. 2편의 후속편과 TV시리즈가 모두 괜찮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흔치 않은 시리즈물.

괴물의 창조자들

레이 해리하우젠, 스탠 윈스턴 등 괴물 디자이너와 예술가들

스탠 윈스턴 현존하는 가장 활동적인 괴물 디자이너. 미술과 조소를 전공한 윈스턴은 TV영화 <가고일>(1972)을 시작으로 괴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명함에 박아넣기 시작했고, 이후 만들어낸 창조물들로 SF와 호러영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프레데터>(1987), <레비아탄>(1989), <쥬라기 공원>(1993), <레릭>(1997) 등이 있으며, 호러영화 <펌프킨 헤드>(1988) 등 몇몇 작품을 감독하기도 했다. 제임스 카메론과 특수효과 회사 디지털 도메인을 창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롭 보틴 악몽을 던져주는 괴물의 창조자. 롭 보틴은 스탠 윈스턴과 함께 현대 미국영화의 가장 역동적인 괴물 디자이너다. 다만 윈스턴의 디자인이 메이저 영화사들의 승낙을 흔쾌히 받을 만한 세련미를 지니고 있는 데 반해 롭 보틴의 괴물들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독특하고 소름끼치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던져준다. 대표작으로는 폴 버호벤의 <로보캅>(1987), <괴물>(1982), 기예르모 델 토로의 <미믹>(1997), <딥 라이징>(1998) 등이 있으며, <프레디 vs 제이슨>(2003)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H. R. 기거 에일리언을 창조함으로써 영원히 괴물의 전당에 오른 예술가. 이름있는 미술가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것은 1976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 영화화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함께 작업한 특수효과 기술자 댄 오버논의 초청으로 <에이리언>(1979)에 참여했고, 그로 인해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미술평론가 프랑크 리날리의 표현일 것이다. “많은 영화에서 괴물들을 만들 때 기거의 작품과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거레스크’(Gigeresque)라는 새로운 단어로서 이 현상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레이 해리하우젠 스탠 윈스턴과 피터 잭슨 등 현대의 모든 괴물 창조자들이 예술적 아버지로 숭앙하는 존재. 해리하우젠은 <마이티 조 영>(1949)을 시작으로 미지의 존재들을 창조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기 시작했고, <심해에서 온 괴물>(1953) 같은 B급 괴물영화의 시대를 거쳐 <제이슨 앤 아거노츠>(1963)와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1958) 같은 신화영화들에서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이미 CG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세상을 호령하는 시대지만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괴물들은 여전히 클래식한 마력을 잃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