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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4] - 한국영화 外
김도훈 2006-03-02

테디 20주년 베를린 퀴어영화들과 킨더필름 부문, 그리고 작은 성과를 거둔 포럼 부문의 한국영화들

베를린에 일렁인 작은 물결들

베를린영화제는 칸이나 베니스와는 달리 기자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찾아가야 더욱 흥미로울 영화제다.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에 섞여 있는 함량미달의 작품들을 보느라 회고전, 포럼 부문과 특별상영 부문의 성찬을 놓쳐야 했던 각국 기자들의 한숨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으니 말이다. 오드리 헵번부터 더글러스 서커까지, 가슴이 떨리는 클래식들이 모여 있는 회고전은 경쟁 부문 못지않은 매진 사태를 불러일으켰지만, 특히 올해 베를린의 진짜 재미는 ‘테디 20주년 회고전’, 아동영화 부문인 ‘킨더필름’과 포럼 부문이었다.

테디 어워드와 베를린의 퀴어 시네마

<페이퍼 돌스>

<일레븐 멘 아웃>

데카당스한 기운을 지닌 진짜 베를린을 보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을 진짜로 맘껏 즐기다 간 이들은 테디의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게이-레즈비언 시상식인 테디상이 20주년을 맞아 기념파티 밎 각종 부대행사를 화끈하게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크노 음악과 드랙퀸이 넘실대는 지침없는 파티만이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다. <테디 20주년 트리뷰트> 상영관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구스 반 산트와 토드 헤인즈를 아우르는 지난 퀴어영화 걸작들을 다시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회고전이 아니더라도 모든 부문에 걸쳐 게이-레즈비언 테마를 다루는 젊은 영화들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은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다큐멘타리 <페이퍼 돌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늙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다섯명의 필리핀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담아낸 이 작품은, 성적 소수자로서,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다시 추방될 위기에 처한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슬픈 초상을 별다른 트릭없이 진솔하게 내보인다. 아이슬란드영화인 <일레븐 멘 아웃>(Eleven Men Out)은 퀴어코미디의 장르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 잘생기고 거만한 프로 축구선수가 커밍아웃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북구 코미디는 “만약 데이비드 베컴이 커밍아웃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봤을 법한 관객을 위한 영화다. 물론 잘생긴 배우들을 캐스팅해 미학적인 서투름이나(포럼 부문의 <버케이션랜드>), 미학적인 과잉(파노라마 부문의 <브로큰 스카이>)을 포장해보려는 귀여운 불성실함도 여전히 테디의 친구들이기는 했다.

작은 한국영화들의 작지 않은 성과

<피터팬의 공식> 관객과의 대화

올해 베를린 포럼 부문에서 상영된 한국(혹은 한국 관련)영화는 모두 네편. <버라이어티>가 “사려 깊고 위트있는 연출로 섹시하게만은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패셔너블하게 손질했다”고 칭찬한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는 상영관을 찾은 관객에게서 큰 반향을 얻었다. 감독과의 대화시간에서 베를린 관객은 한국에서는 병역 거부가 중죄에 속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고, 이 작품을 통해 대체복무가 마련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감독의 답변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 부산과 선댄스에서 평단의 주목을 나꿔챈 <피터팬의 공식> 역시 포럼 부문의 큰 화제작 중 하나였다. 베를린 관객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작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에 궁금증을 내보이며 조창호 감독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한편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영화제의 가장 흥미진진한 작품들은 포럼 부문 구석에 숨어 있다”고 말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재미교포 감독인 김소영의 <인 비트윈 데이즈>와 재일교포 감독 양영희의 <안녕, 평양>을 꼽았다. <인 비트윈 데이즈>와 <안녕, 평양>은 각각 국제비평가상과 넷팩(NETPAC,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했다. 올해 한국영화의 작은 물결은 베를린 포럼 부문의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로 남았다.

킨더필름 부문에서 건져낸 보석

<우리는 극복할 거야>

아동영화 섹션인 ‘킨더필름’ 부문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특히 올해는 몇몇 상영작들이 경쟁 부문에 올라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라는 평을 얻어냈다. 그중 소년 소녀 심사위원이 선정한 크리스털곰상(최우수영화상)을 획득한 덴마크영화 <우리는 극복할 거야>(We Shall Overcome)는 영화제 내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화제작이었다. 1960년대 덴마크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폭압적인 교장에게 폭행을 당한 시골소년 프리츠가 가족과 함께 권위적인 교육제도에 대항하는 과정을 다룬다. 가족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카메라가 묘사하는 권위주의 사회의 폭력은 지켜보기 꽤 고통스러운 편이다. 작은 마을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프리츠의 가족은 끊임없이 폐배하며 피폐해져가고, 영화는 프리츠의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찾아온 어떤 사회문화적 저항의 기운을 감지하며 끝난다. 마틴 루터 킹의 “나는 꿈이 있다”는 경구를 외치며 덴마크 시골마을의 벌판을 뛰어다니는 소년 프리츠. 그 순결하고 조그마한 반항아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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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지원 진화영·사진제공 R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