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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꿈들이 태어난 그곳으로
2001-08-16

용솟음치는 심리학의 대광맥 <A.I.>

● 종종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하며 흥미로우리만치 정신분열적이고 자주 사람을 황당하게 하며 <피노키오>와 <오이디푸스>, 스탠리 큐브릭과 ‘Creation of the Humanoids’를 적절히 섞어놓은 스필버그의 <A.I.> 는 영화라기보다는 용솟음치는 심리학의 대광맥이다.

일단 제목 분석으로 시작해보자. ‘인공’은 스필버그에, ‘지능’은 큐브릭에 속한 것 아닐까? 아니면 혹시 그 반대일까? <A.I.> 는 불필요하게 복잡하면서도 뻔뻔스럽게 비이성적인 전제 위에 서 있다. 스필버그 단 한명의 이름만 크레디트된 각본은, 로봇이 꿈을 꿀 수 있는 과학적 원리나 인간이 복제될 수 있는 특수한 조건 등을 명료하게 밝히려다가 몇번이고, 에드우드식 횡설수설의 늪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성적인 물음만을 흥밋거리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울며 매달리며 비는 로봇 아이를 인간 엄마가 숲에 내팽개치는 대목은 <밤비>의 한 장면 이상으로 가슴을 저미는 것이다.

스필버그 최초의 미래파 영화인 <A.I.> 는 가족계획을 엄격히 통제하고 섹스 로봇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두루뭉수리하면서 또 상당히 동종이식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을 닮은 이 로봇들은 ‘메카’라고 불리는데, <A.I.> 는 그들의 설계자인 닥터 하비(윌리엄 허트)가 아주 새로운 발명, ‘사랑을 멈출 줄 모르는 로봇 아이’를 완성했음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발표를 듣던 동료 하나는 도덕적 이의를 표시하지만 박사는 이렇게 일축한다. “신이야말로 아담을, 신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다.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가.

꼬마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 섬뜩하기로 치자면 <식스 센스> 못지않다)은 제일 먼저, 포커스아웃 상태에서 출현한다. 그는 맑고 푸른 눈과 부드러운 얼굴을 가진 거룩한 아이, 아기 스필버그인가? 초반의 장면들은 의도된 것 이상으로 대단히 징그럽고 섬뜩하다. 언제나 미소지은 채로 거치적거리는 데이빗은 귀찮을 정도로 요구사항 많은 애완동물인 양 언제나 모니카 곁을 얼쩡거린다. 하지만 일단 그녀가 마법의 주문을 외워 그와 그녀 사이에 영원토록 꺼지지 않을 단단한 관계를 형성하자 그는 엄마를 향한 끝을 모르는 사랑과 헌신의 길로 들어선다.

“엄마, 언젠간 죽을 건가요?” 이것은 새롭게 프로그램된 데이빗의 최초의 추상적 질문이다. 이미 불안에 빠져 있는 아이는 이 늘씬하고 예쁜 여인이 언젠가 죽었을 때 그녀의 사랑스런 메카는 여전히 아이의 모습일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간에, 데이빗 스스로가 자신은 더이상 자라지 못하는 상태임을 깨닫기 전에, 코마에서 깨어난 마틴이 이 가정으로 돌아온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를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대단히 나르시스틱한 전제를 한번쯤 의심해볼 사이도 없이 스필버그는 가족의 깊은 상처에 대한 그의 제일 자신있는 재료- 동기간의 경쟁의식과 불화- 를 끄집어내 서로간의 감정이 상하고 불통돼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진짜 소년’이 되어 엄마의 사랑을 되찾고 싶다는, 버림받은 데이빗의 소망은 곧 이 영화를 끌고나가는 주된 동력이 된다. 스필버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데이빗도 <피노키오>를 자신의 텍스트로 삼는데, <피노키오>의 귀뚜라미와 마찬가지인 테디를 동행삼아 그의 소원을 이루어줄 푸른 요정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꼭두각시 피노키오와 달리, 데이빗은 감정적인 성장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는 오직 천진난만함에 초점 맞춰 프로그램돼 있을 뿐이다. 피노키오의 욕심이 스트롬볼리의 카니발에 잡히게 되는 결과를 낳는 데 반해 죄없는 데이빗은 그저 폐기물축제의 날아다니는 폭풍 같은 요원들에게 체포될 뿐이다. 의식을 갖춘 파괴행위에 맞춰진 폐기물축제는 종교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오로지 ‘인공적인 것’들만 없애는 것”이라고 이 의식의 지도자는 설명한다. 이성적인 ‘지능’은 그 다음 문제다.

곧 데이빗과 테디는 한팀을 이루고 대단히 이단적인 사이버우정을 나눈다. 못마땅하게 그려진 ‘어른’ 메카 지골로 조(주드 로)는 뻣뻣하고 황당하게 포마드칠된 로봇으로서 수상쩍은 음악플레이어를 달고다니며 옛 노래들을 틀어, 절망에 빠져 있는 고객이 모든 금기를 잊은 채 침대에 드러눕게 만드는 인물이다. <A.I.> 에서 큐브릭적인 심성을 지니고 있는 이 캐릭터 지골로 조는 데이빗을 루즈 시티(<시계테엽장치 오렌지>의 밀크 바를 차용한)로 데려가 만물박사의 퀴즈풀이를 통해 푸른 요정을 찾도록 도와준다.

<A.I.> 는 흥미롭게 나뉜 작품이다. 큐브릭 영화에서처럼 인간들은 보편타당하게 아주 헛되기 이를 데 없으며 배신을 일삼고 이기적이고 질투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잔인한 그 어떤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우리 역시 로봇 못지않게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데이빗의 생일날, 케이크를 자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나이를 규정할 수 없는 데이빗이 결국 “모든 꿈들이 태어난 그곳”으로 결국 떠나가게 될 때, 맨송맨송 마른 눈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극장 안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슬픔이 아닌 기쁨 때문에 눈이 젖을지도 모른다.(<빌리지보이스> 2001.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