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이발관 주인인 30대 중반의 안창진(성지루). ‘깎새’라고 불리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이 남자에게 이발은 그야말로 성스러운 의식이다. 뽕짝 대신 클래식을 틀어놓고, 바리깡 대신 고급 가위로 손님을 맞이하는 안창진에게 어느 날 특별한 손님, 김양길(명계남)이 찾아들면서 예기치 못했던 고통도 뒤따른다. “너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다”며 돈을 갈취하는 김양길은 급기야 안창진의 아내 전연옥(성현아)을 유혹하고, 사채까지 빌려 쓴 안창진은 프로해결사 이장길(이선균)에게 김양길의 약점을 알아내러 뒷조사를 의뢰하면서, 네 인물은 의외의 파국을 맞게 된다.
관객은 왕이다!
오기현 감독은 10년 전 연극 <콘트라베이스> 의 ‘별난’ 관객이었다. 원작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팬이었던 그는 <초록물고기> 등에서 간간이 얼굴을 비추던 단역배우 명계남이 모노드라마를 한다는 사실에 더욱 호기심을 느껴 극장을 찾았고 “공연마다 새로움을 전해주는” 연극에 빠져들었다. 나중에는 표 파는 스탭이 초대권을 쥐어줄 정도로 단골 관객이 됐다고. 이후 미국 미주리주립대 등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동안 오 감독은 단역배우 명계남을 떠올리며 누구나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주인공이라는 내용의 시나리오 <명배우 죽이기>를 썼고, 2004년 귀국한 그는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 <손님은 왕이다>를 만들었다.
하마터면 표절?
한국에 돌아와 제작사인 조우필름에서 시나리오를 수정 중이던 오기현 감독은 이발사에게 낯선 협박자가 찾아든다는 내용의 일본 단편소설이 있음을 TV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시나리오 초고를 쓸 무렵 한 미스터리 동호회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흥미로운 설정이 실은 추리소설가로 잘 알려진 니시무라 교타로의 단편소설 <친절한 협박자>의 얼개였던 것이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침실특급 살인사건> <종착역 살인사건> 등 일본에서 잘 알려진 열차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그의 소설 <화려한 유괴>는 일본에서 <애인은 스나이퍼>(2004)로 영화화된 적도 있다. 시나리오를 보내 원작자로부터 흔쾌히 영화화 허락을 받았던 오 감독은 “하마터면 베끼기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